월요일 빼빼로 데이, 어김없이 스타벅스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은 벌써 크리스마스입니다. 매장에 흐르는 노래가 전부 캐럴입니다. 잔잔한 분위기부터 통통 튀는 비트까지 장르도 다양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마음은 이미 크리스마스를 맞은 것 같습니다. 출근은 싫지만, 음악으로나마 처진 기분을 띄워봅니다.
오늘도 모기 한 마리가 주변에서 알짱댑니다. 생김새로 보아 피를 빨아먹는 놈인 것 같습니다. 귀 옆으로 눈앞으로 목뒤로 쉼 없이 날아다닙니다. 그런 탓에 화면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네 까짓 놈에게 지지 않는다'라고 오기로라도 써 내려갈 작정입니다.
음악은 귀로 듣습니다. 눈은 모기를 쫓습니다. 입으로는 따뜻한 민트 티를 마십니다. 차향과 주변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는 계속해서 자판을 두드립니다. 글 한 편 쓰는 동안 오감이 쉴 새 없이 작동하는 중입니다. 오감이 작동하기 때문에 글도 쓰고 차도 마시고 모기와도 신경전을 벌일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까지 가는 길에 가끔 지팡이에 의지한 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아저씨를 봅니다. 지팡이 끝 촉감에 의지해 인도를 따라 걷습니다. 계단도 지팡이로 두드려 확인합니다. 지하철역 입구와 에스컬레이터 위치 또한 지팡이로 알아차립니다. 1분도 되지 않는 순간이지만 지켜보는 저는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의 불안은 기우일 수도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게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걷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입니다. 제법 긴 시간 암흑에 익숙해져 왔다면 길을 걷는 게 저만큼 익숙하고 편할 수 있습니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동원한다면 말이죠.
글감을 고민하는 사람 많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글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널린 게 글감이라고 가르치지만 막상 빈 화면을 마주하면 시작이 두렵습니다. 다행히 7년째 매일 쓴 걸 보면 글감은 어떻게든 건져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감도 한몫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장면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귀에 들리는 음악을 소재로 썼습니다. 다른 날은 코로 전해지는 향기가 주제가 되었습니다. 한날은 전날 먹은 집 밥맛을 묘사하기도 했고요. 미리 정해놓은 주제가 없을 땐 오감이 동원돼 꾸역꾸역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주제로만 글을 쓰려니 글감이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이왕이면 있어 보이고 도움이 될 내용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 시간이 더 가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매번 양질의 글을 쓸 수는 없을 겁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니까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도 변함없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그 순간에 작동하는 나의 오감입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지는 모든 게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 자체를 글감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그 모든 게 글감이라고 여기면서요. 있는 그대로 쓰면 못 쓸 게 없습니다.
매장에 다른 손님이 있어서 인지 모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귀에는 여전히 캐럴이 들립니다. 한 번 더 우려낸 민트를 홀짝이는 중입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니 냄새는 여전합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제법 가벼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도 이렇게 글 한 편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오감을 글감으로 쓰면서 말이죠.
한 주의 시작입니다. 이번 주는 오감 중 하나씩 선택해 매일 한 편씩 써보는 건 어떨까요? 각각의 감각에 집중해 보면 분명 이전과 다르게 보일 겁니다. 또 제법 근사한 글감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글쓰기, 소소한 것들로 일상이 충만해지는 더없이 근사한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