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 한 줄 써놓고 노트북 덮고 싶다.
이런 날 누구나 한 번씩 오지 않나?
아무 이유 없이 직장에 가고 싶지 않고,
별생각 하지 않고 멍하니 있고 싶고,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싶은 그런 날.
나만 그런가?
몸이 보내는 신호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 것일 수 있고,
마음이 지쳐서 그런 것일 수 있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더 큰 화를 부른다.
미친 듯이 달릴 때 있었다.
그때는 몸도 신호를 보낼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긴장이 풀리는 순간 온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자고 일어났는데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그런 날에도 꾸역꾸역 해약할 일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럴 때조차 할 일을 해내는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어쩌면 그런 날조차 억지로 할 일을 반복했기에 지금의 나가 있는 거다.
살면서 한 번은 좋아하는 일에 미치라고 말한다.
미치는 그 순간에는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는다.
지칠 틈을 주지 않는 거다.
하지만 사람이다.
기계가 아니다.
기계가 만들 수 있는 성과가 있고,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가 있다.
사람에게서 기계가 만들 성과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러다 지치고 병나고 결국 포기하고 만다.
사람은 어르고 달래야 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목표를 향해 한눈팔지 않고 달리는 건 필요하다.
중요한 건 체력 수준을 감안해야 한다.
100미터도 못 달리는 지구력으로 마라톤을 뛸 수 없다.
그러니 어느 순간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휴식이 필요하면 쉬어 주고,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먹어 주고,
일탈을 바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루쯤 쉰다고 계획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쉼 덕분에 다음 날 두 걸음 더 디딜 수 있지 않을까?
앞만 보고 달리면 주변을 볼 수 없다.
그보다 왜 달리는지 그 이유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달리는 이유가 분명하면 스스로 쉬어야 할 때도 안다.
주변도 보지 않고 쉴 줄 모르면 달리는 이유도 모를 수 있다.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에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닐까?
나는 이제까지 무작정 달리기만 한 건 아닐까?
당당하게 "아니요"라고 답해 왔다.
이유는 분명하고 목적지는 정해졌다.
다만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기에 앞만 보고 달렸다.
속도조차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한 해 두 해로 끝날 승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신념을 갖고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입해 왔다.
그러니 나는 나만의 속도로 가는 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내가 정해놓은 목적지에 닿으면 잘 산 인생이라 정의했다.
모든 과정에 완벽을 바라지 않는다.
완벽할 수조차 없다.
완벽이 아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최선조차 기준을 정하기 나름이다.
나의 최선이 누군가에겐 부족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추려고 안간힘 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그러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을 맞는다.
경쟁에서 탈락하고,
번아웃이 찾아오고,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지고 만다.
젠장 직업병인가?
몸이 신호를 보낸다면서 또 주저리주저리 쓰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횡설수설이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게 아닐까?
아주 가끔 이런 넋두리가 내 본심일 수 있으니까.
내 본심을 들켜도 괜찮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게 당연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