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궁상도 활력이 된다

마흔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 - 지지리 궁상

by 김형준

“부산 갔었어?”
“어! 내가?”
“아빠 딱지가 왔데. 아빠 차 사진이 찍혀있어. 이걸로 딱지 만들어줘.”
“과속 딱지 끊으셨네요. 그것도 부산에서. 평일 낮에.”
“부산에 갔었는데 딱지 끊긴 줄 몰랐네.”
“그 시간에 왜 부산에 계셨을까?”
“잠수 타러 갔었지. 일도 안 되고 사람들이랑 부딪히는 게 싫어서 잠깐 바람 쐬러 갔었어. 안 그러면 못 버틸 것 같아서.”
그랬었다.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평일 낮 시간이라 아내에게 말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마음이 진정 되면 다시 돌아올 길이라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이 날 아침부터 일이 꼬였다. 작업자 들은 불만을 털어 놓았다. 나에게도 불가항력 이라는 게 있다. 모든 상황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런 걸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당장의 불편함만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런 그들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마주하고 있으면 폭발할 것 같아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도로 위에 올라섰다. 무작정 달렸다. 전화도 안 받고 앞만 보고 달렸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한 시간을 달리고 나니 부산에 들어섰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온 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가다보니 눈에 익숙한 곳이 나왔고 그 길을 좇아 계속 운전했다. 부산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나와 차를 세운 곳이 청사포 였다. 큰 형이 남겨 놓은 사진으로 봤던 곳이라 눈에 익숙했다. 날은 맑았지만 바람은 거칠었다. 여유롭게 바다를 따라 걸으려 했지만 모양 빠졌다. 달달한 게 땡겼다. 가끔 기분이 별로일 땐 단맛이 효과가 있다. 아메리카노와 케익 한 조각을 앞에 두고 바다고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공간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기는 내 모습은 처량 맞았다. 뭐하는 짓인지. 아무도 보지 않지만 최대한 여유를 즐기는 척 해본다. 지지리 궁상이다.


나이 들수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어딜 가도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다. 타인은 나를 의식하지 않지만 내가 그들을 의식하고 있다. 내가 그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가끔은 궁상도 떨어줘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365일 정해진 틀 속에서만 살면 나를 잃게 된다. 나를 찾는 건 이런 일탈이 아닐까 싶다. 선을 넘지 않는 일탈은 삶의 활력을 준다. 일탈을 통해 자유로움을 느낄 때 다시 제자리 돌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쥐를 잡기 위해 궁지로 몰다 보면 되려 상대를 향해 공격하게 된다. 그럴 땐 도망 갈 길을 터주며 유인하는 게 상책이다. 일과 관계로 인해 삶이 팍팍해 질 때 한 번 쯤 도망갈 궁리를 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숨통이 트이고 다시 힘 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일탈이 없다면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것이고 자신의 미래가 뻔히 보이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그럼 삶에서는 윤기가 사라지고 맙니다. 어차피 결론이 나 있는 인생, 더 살아야 뭐 하나 하는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현실이 어떻든 우리는 매 순간 일탈을 꿈꾸어야 합니다. 일탈을 꿈꾸고 그것을 향해 몸을 던질 수 없다면 제대로 산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마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김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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