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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Feb 20. 2021

[그빵사] 에필로그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1. 하룻밤 사이에 봄이 되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너무 추워서 살을 에는 듯하더니 오늘은 베이킹을 하면서 몸에 땀이 났다. 냉장고에서 꺼내놓았던 버터가 금방 말랑말랑해져서 핸드믹서로 설탕을 넣으며 휘핑을 하는데 부드럽게 섞였다. 또한 풀어놓은 계란물을 넣어 섞는데도 온도 차이가 나지 않아 분리현상이 일어나지 않아서 무사히 스모어 쿠키 반죽을 만들어 휴지를 위해 냉장고에 넣어 두고 에필로그를 쓰고 있다. 그빵사를 쓰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베이킹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비로소 내가 원했던 지속 가능한 취미는 홈베이킹이 된 것 같다. 


#2. 엊그제는 가족들의 아침을 위해서 베이글을 무려 8개나 만들었다. 지금까지 했던 베이킹 중에서 베이글을 가장 잘 드시는 것 같다. 그리고 함께 먹을 채소 크림치즈도(Veggie Cream Cheese) 만들었다. 채소 크림치즈와 어니엔 베이글의 조합은 뉴욕에 있었을 때 아침으로 많이 사 먹었던 건데 마치 샐러드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 끼 식사로는 딱이었다. 해외 사이트를 보고 만들었는데 그 방법이 매우 간단했다. 크림치즈에 당근, 파, 양파, 파프리카 그리고 샐러리(없어서 생략)를 작게 썰어 넣고 믹서기로 돌리면 끝이다. 너무 오래 돌리면 죽이 될 수도 있으니 그냥 섞일 정도로만 아주 짧게 몇 번만 돌려야 한다. 이 맛이 얼마나 좋은지 아침은 물론 야식으로도 먹어서 8개가 금방 사라졌다. 이젠 베이글과 함께 크림치즈도 여유롭게 만들어먹고 있으니 진짜 베이킹을 하고 있는구나 싶었다.


#3. 그빵사의 마지막화를 올리고 난 후 에필로그를 쓰는 일주일 사이에 꽤나 많은 일을 했다. 그동안 썼던 100화를 정리하여 컨셉진 잡지에 출판 응모를 했고 투표가 진행 중이다. 또한 지난 화요일에는 작년부터 진행했던 중요한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이 났고, 이상적인 '리틀 포레스트' 삶을 위해 등록한 쿠킹 스튜디오에서 한식 기초 요리 수업을 두 번째 들었다. 검은 반점이 생긴 바나나가 많이 남아서 바나나 브레드를 만들었고, 베이글은 크랜베리, 블루베리, 어니언을 넣어서 3일 연속으로 굽기도 했다. 시간이 이전보다 조금 더 남는다는 것 말고는 딱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손은 빨라졌지만 여전히 레시피를 보면서 순서대로 차근차근 따라가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레시피 없이 능숙하게 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4. 인터넷으로 허브용 화분과 흙을 찾아보았다. 지난번 키우지 못했던 허브 '타임'을 다시 심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살게 많은지. 지피펠렛이라는 씨앗 파종용 흙을 사야 하는 걸까, 아님 그냥 화분에다가 바로 심어도 되는 걸까? 흙은 또 왜 두 개나 필요한지. 상토라는 것과 물 빠짐용 마사토라는 것도 깔아야 한다고 한다. 그냥 씨앗을 흙에다 심으면 안 되는 걸까? (웃음) 차라리 한 가지 종류만 있다면 고르기 편할 텐데 너무 다양하니 오히려 더 고르기 힘들다. 마치 홈베이킹 시작할 때 도구를 고르는 느낌과 흡사하다. 과연 나는 올해 허브를 길러서 베이킹을 할 수 있을 것인가!


#5. 첫 문장을 쓰고 난 뒤 마지막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스모어 쿠키가 오븐에서 나와서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다. 외출하고 돌아오신 엄마께서는 언제나 똑같이 냄새가 너무 좋다며 "오늘도 빵을 구웠니?"라고 물으셨다. "오늘은 스모어 쿠키!"라고 대답했다. 내일은 크림치즈를 1kg 나 사 뒀으니 당근 케이크를 만들어볼까, 아니면 휘핑크림이 남았으니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까, 설날에 선물로 들어온 사과가 한 박스 있으니 애플파이를 구워볼까 생각은 하지만 딱 정해놓지 않기로 했다. 


내일이 되면 내일 먹고 싶은 게 생길 테니까 말이다. (웃음)


블루베리 베이글 & 채소 크림치즈 & 드립 커피


[후기]

그동안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를 100화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연히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컨셉진에서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적어볼까 고민하다가 근 한 달 사이에 내가 가장 많이 시간과 돈을 쏟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때 당시) 얼마 전 시작한 홈베이킹이 생각이 났어요. 과연 100개의 글을 쓸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에필로그까지 무사히 쓸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답니다. 최대한 베이킹을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점점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적어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첫 장편이다 보니까 부족함이 많이 묻어난 것 같아 아쉬우면서도 지금이 아니었다면 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11월 가을 끝자락에서 시작하여 혹독한 겨울이 지나 성큼 다가온 봄 앞에서 그빵사가 끝이 나네요. 시원 섭섭한 마음입니다. 글을 쓰는 내내 정말 행복했어요. 다시 한번 그빵사를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2021. 02. 20.

백순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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