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냈다.
#1.
컨셉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끝낸지도 대략 3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컨셉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컨셉진'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로 100일 동안 글을 쓰면 출판 응모권이 주어져서 응모작 중 프로젝트를 함께 한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정식 출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부지런히 글을 쓴 나에게도 기회가 닿아서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의 원고를 보냈으나 순위권도 들지 않은 채 똑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글을 쓴 100일과 비슷한 시간이 흘러갔다.
#2.
[그빵사] 연재가 끝난 후에도 놀랍게도 부지런히 홈베이킹을 이어나갔다. (모든 취미에 금방 빠졌다가 금방 싫증을 내는 성격 상 굉장한 전개이다.) 연재를 하던 만큼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브레드 박스에는 언제나 갓 구운 빵들이 가득했다. 그토록 바라던 지속 가능한 취미를 드디어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3.
연재를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있었다면 [44화. 허브 '타임' 재배 기록일지]에 나오는 허브 '타임'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일이었다. 추운 겨울날에도 잘 자라는 허브인데, 솜 발아를 하고 흙으로 급하게 옮겨 심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발아까지 했으나 나의 무지함으로 자라지 못한 허브를 보면서 아쉬움이 참 많았는데 연재가 끝나고 나서도 종종 생각이 났다.
https://brunch.co.kr/@greatlife/104
#4.
"오바야. 오바"
다시 길러볼까 말까 고민을 할 때면 '굳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빵사 연재는 끝났고 글은 책이 되지 못했다. 사 먹으면 단돈 3천 원이고 기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일을 왜 하고 싶은지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하나였다.
"그냥"
그냥 한 번 길러서 베이킹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사실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왜 하냐고 묻지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그거 뭔 이득이 있다고 하니? 하지만 나는 옛날부터 참 쓸데없는 일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언제가 버릴 색종이도, 오색빛깔의 십자수 실도 그냥 그걸 보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씨앗을 구매하기로 했다. 만반의 준비로 흙과 화분, 거름망 그리고 키우는 설명서까지 들어간 키트로 준비했다. (이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이걸로 살걸 그랬다.)
#5. 씨앗을 흙에다가 바로 심고 발아까지 매우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굉장히 많은 양의 씨앗이 발아를 했고 하늘 높이 쭉쭉 자라기 시작했다. 생명이 자라나는 건 언제 봐도 신기했다. 어쩜 이렇게도 잘 자라는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에는 키가 나의 손가락 길이보다도 더 길어졌다. 허브 타임은 어느 정도 자라면 언제든 수확이 가능하다고 해서 이쯤에서 한 번 수확을 해 보기로 했다. 엄마가 키우신 대파는 숭덩숭덩 잘도 잘랐던 내가 내 허브를 수확하려니까 가위를 든 손이 쭈뼛쭈뼛거리고 심장이 도곤도곤 뛰었다. 잘 자른 줄기를 물에 한 번 씻고 물기를 키친타월로 제거 한 뒤 말리는 사이 레몬 위크엔드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6. 레몬 위크엔드 케이크는 생각보다 잘 나와주진 않았다. 구움색은 너무 많이 났고 부풀지도 않았지만 불투명하게 꾸덕한 레몬 아이싱을 위에다가 뿌려주었더니 그럴싸해 보였다. 그리고선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자른 허브 타임을 장식으로 올려주었다. 드디어 길고 긴 염원의 시간이 찾아왔다. 작년부터 이 날을 위하여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웠구나! 허브 향이 생각보다 강해서 살짝 걱정했었는데 그보다 레몬 향이 더욱 강해서 적절하게 조화가 잘 되었다.
#7. 미련이 남아있던 일을 기어코 해내니 집착이 사라졌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 더욱더 하기가 망설여졌었는데 하고 나니까 역시나 하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