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나선 그곳에는 새벽이 있었다.
계단을 세어보았다. 적지 않은 수. 바삐 걸어가는 사람 사이로 차근차근 어린아이 마냥 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계단, 올라오는 사람 사이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쾌감에 흥이 절로 난다.
새벽 시간이지만 지하철은 만석이었다. 그들의 표정에 어린 피곤함마저도 오늘따라 좋아 보였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댐 방류처럼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왔다. 뱃속을 채운 긴 뱀은 꾸불꾸불 지하를 달렸다. 닿아 있는 어깨. 작은 숨소리마저 들리는 적막 속에 환히에 찬 내 심장소리가 들릴까 조마조마했다.
내리는 이들을 보며 응원했다. 오늘도 힘내세요. 하루 멋지게 보내세요. 저 오늘 출근했어요. 여러 분과 같은 마음이에요. 고마워요.
한참을 지나 겨우 난 자리에 앉았다. 스마트폰들 사이로 무수한 콘텐츠가 오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스마트폰을 열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난 그곳에 있지 않았다. 빠져버린 톱늬처럼 몽니를 부렸다. 잠든 아내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래. 문자. 문자를 보내자. 얼마만 일까. 아내에게 문자를 했던 게. 모든 게 틀어진 후 더 그랬다. 알았어. 나도 알아보고 있어. 잘린 게 내 탓이야? 넌 집에서 뭐하는데? 가시돋힌 말이 쏟아졌다.
정작 그 가시들은 모두 나에게 꽂혀 있었지만.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새벽 겨우 잠든 아내 몰래 침실을 나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변변치 않은 직업이었지만 직장인은 모두 같다. 출근하고 노력하고 힘내고, 퇴근한다.
사실 안다. 현관문을 나서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아내의 시선을. 소파에 던져둔 듯 가지런했던 옷가지와 현관 앞 신발까지, 그녀의 배려였다.
가방 끈 사이 무게가 느껴졌다. 가장의 무게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버리지 못했던 예스러움이었다.
몇 마디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후 이내 창을 닫았다. 자고 있을 아내를 깨우긴 싫었다. 고맙고도 미안한 사람 같으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날 수십 번을 봤던 회사의 주소가 내비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두근거림이 커졌다. 이제 일어나 내려야 한다.
힘들겠지. 기대만큼도 아닐거고 불편한 사람도 있겠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거 아닐까. 그러나 기쁠거다. 아내를 보는 일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내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 나는 다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