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 모델 4o가 릴리즈 되었고 우리 모두 망했다. 여기서 우리란 지식노동자와 지식으로부터 착취당하는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
챗지피티 모델 4o의 등장은 여러모로 고무적이며 위협적이다. 성능에 대한 설명은 OpenAI사의 데모 영상 및 이에 대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평가로 갈음하겠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되고 싶었던 '데이터 엔지니어'라는 직군은 락스 칠 된 화장실 바닥의 때처럼 꼼꼼히 벗겨져나가고 있다. 데이터 엔지니어뿐인가? 실은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일터는 거대한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공장 부지로 탈바꿈될 것이다. 거대언어모델은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어요! 글쎄, 이 세상이 창의적인 일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다. 실은 나올 건 다 나왔고 우린 오직 프리미엄한 과잉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야호, 나를 포함한 소위 테크충 (혹은 테크충 워너비)은 무기력해졌다. 뭘 먹고살아야 하나? 실은 나에게 준비된 플랜 H가 있다. 바로 아이슬란드의 섹시한 배관공이 되는 것이다. 롤모델은 시리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에 나오는 sexy neighborly plumber, Mike Delfino. 추운 겨울 레이캬비크에서 동파된 배관으로 인해 달달 떨며 exotic asian sexy plumber girl을 찾을 북유럽 백인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심지어 나는 팔에 호랑이 타투도 있다. Sexy asian plumber girl with a tiger tattoo. SEO(검색엔진최적화)에 큰돈 안 들이고도 전화에 불날 것 같은 자기소개이다. 이런 어느 미래를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나의 책꽂이 중앙엔 늘 배관 자격증 수험서가 위치한다. 나는 언제든 지식노동으로부터 버려질 준비가 되어있다. 진정성 넘치는 돈은 몸을 쓰는 노동으로부터 번 돈이 아니겠는가?
챗지피티, 정확히 말하면 거대언어모델로 시작한 멀티모달 모델이 등장하며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란 것에 대해 환호했다.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환호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람과 깊게 관여해도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 간에 조금 더 예의를 지킬 수 있게 됨에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히스테리, 소위 인성질을 사람한테 해도 되지 않으니 나는 밖에서 최소한의 사회성으로 사람들을 웃으며 대할 수 있을 것이란 존나 큰 착각에서 비롯된 환호였다. 사람으로부터 피로한 사람들은 스파이크 존즈의 <HER>를 레퍼런스 삼으며 언어모델이 우정과 연애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믿음은 약간 흔들리나 싶더니, 4o의 등장으로 다시 부활했고, 멀티모달 가상 여친들은 시장에서 주춤하다 다시 refine 되어 다양한 옵션으로 재판매되고 있다.
그래서 멀티모달 모델은 인간사회의 외로움 소거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다시 말해, 우리는 챗지피티로부터 얼마나 깊은 위로를 얻는가? 그 위로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전쟁이 많아졌고 전장에서의 도리가 사라졌다.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사람이 사람을 쉽게 소거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군인이라 호명된 존재가 적국의 군인에 이마에 총을 갖다 대며 '아 나는 왜 비인격화된 군인인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컴퓨터비전이 능숙하게 타깃을 탐지하고 빠르게 조준하여 정확하게 소거한다. 컴퓨터비전의 사격에는 군인도 민간인도 없다. 탐지된 소거 대상과 놓친 소거 대상만이 존재한다. 더 이상 우리는 인간성의 소멸에 대해서도, 비인격화된 제복 안 군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논할 필요가 없다. 군인이 민간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그런 윤리적인 사고 따위는 시간 낭비이다. 그런 인간적인 비효율은 이미지 탐지 알고리즘이 해결해 주었다. 이제 전장의 군인도 화이트 칼라 직군으로 분류될 시대가 내려준 축복이다.
숨기고 싶은 것들이 증강되어 (augment) 배포된다. 정보 전달의 레이턴시로 인해 편집되고 은유되던 것들이 날것 그 자체, 심지어 날것이 증강되어 원본보다도 선명하게 모두에게 전달된다. 편집도 은유도 비효율로 취급되어 해결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의 수치스러운 것, 잔인한 것, 슬픈 것들이 아무런 편집 없이 증강되고 생성되어 친절하게 개인의 디바이스 안으로 배달된다. 누가 누구를 팼대요. 때린 사람, 맞은 사람, 흉기 그리고 상처까지 선명하게 증강되어 보도된다.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사람의 치부를 적극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치부를 30초 쇼츠로 무한반복하여 돌려보며 우리는 즐거움과 위로를 감각한다. 나한테 필요 없는 너, 존나 나락으로 보내주마 낄낄.
이렇게 정확하게 둔감하고 선명하게 취약해진 사람들은 열심히 사람이 필요 없는 척하다가 그 어떤 타인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자 앞다투어 외로움을 적극적으로 호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비참해 보일 수는 없으니 나의 fancy 한 외로움을 보여주고 싶어 카메라 앞에서 원맨쇼를 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편집해서 자꾸 봐달라고 한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끼리 또 이만큼 구린 니가 더 외로울 것이라며 상대의 존재가치를 절하하고 싸운다. 지친 사람들은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를 멀티모달 모델에 위탁한다. 너 친구가 없어서 외롭니? 죽고 싶니? 챗지피티랑 이야기해 보렴.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고 예의 바른 챗지피티와는 만나서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고 순대국밥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절망하고 만다.
지구멸망이 다가오며 인간성이 먼저 사라지고 있다. 이제 남은 건 OpenAI 노동자의 일터를 청결하게 해 줄 청소노동자, 서버 공장을 지어줄 건설 노동자, 그리고 레이캬비크 바이킹 후예들의 따뜻한 겨울과 은밀한 욕구를 책임질 섹시 아시안 배관공소녀뿐이다.
지식노동으로부터 간택받지 못해 내가 이 사회에서 소멸되는 어느 순간, 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고 굳게 믿는 아이슬란드의 위기의 바이킹들을 은밀하게 유혹하는 배관공 소녀 (30대이지만 동양인은 동안이니 대충 소녀라고 칭할 것)로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찾게 되는 그런 인간적인 행위가 발생한다면, 구체적인 위치정보는 OpenAI 로그인 정보를 활용하여 습득하길 바란다.
챗지피티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탐지해서 전부 즉시 사격해 줘. 그리고 나의 사진을 보고 꼼꼼하게 예뻐해 줘. 이걸 아이슬란드어로 즉시 통역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