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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 Feb 13. 2019

선택적 가족관계.

나의 고양이 이야기




'딸아이가 일곱 살이 되어도 둘째가 생기지 않는다면,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워볼까?' 하고 막연하지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었다. 워낙 이른 결혼이었고, 2010년 첫아이를 출산하고 2012년 유산을 한번 했다. 당시엔 그 충격으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때문에 한창 사랑받아야 할 내 딸이 영문 모르고 방치되는 것이 더 괴로웠던 나는 생각보다 더 빨리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둘째는 의무나 명분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만 가진 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잠들기 전 하나의 의식행사 마냥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빠르게 스마트폰 화면의 스크롤바를 올리며 웹서치를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뉴스거리, 연예 기사, 쇼핑 핫 딜, 블로그 게시글들을 보다 우연히 무언가에 홀린 듯 열중하며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유기묘 구조 소식과 입양에 관한 어떤 카페의 게시글이었다. 2016년. 길에서 구조된 하얗고 동글동글한 페르시안 고양이에 대한 글이었는데, 길 위를 떠돌던 고양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소위 품종묘라는 걸 잊게 할 만큼 온몸이 더러워져있고 털이 덕지덕지 뭉쳐 눈에는 눈곱이 가득 붙어있던 사진 한 장이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마음 좋은 어떤 이는 그 아이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임시 보호하게 되었고, 그 아이가 임신 중인 어미 고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진과 소식들이 마음 쓰여서 계속해서 그 고양이의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첫번째 사진 속 고양이의 현재모습(하트의 엄마)


'고양이를 키워볼까..?' 마음 한구석에 귀여운 고양이와 내 딸아이의 깜찍한 장면들이 상상처럼 연출되긴 했지만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그것도 생명체! 고양이라는 생명체? 내가 과연 책임질 수 있을까? 고민만 할 뿐 결심은 없었다. 그러다 그 어미 고양이가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출산했고, 처음 보는 아기 고양이의 꼬물꼬물 귀여운 소식에 미소 짓던 나와 남편은 결국 고양이를 한 마리 입양하겠다고 신청서를 보냈다. 그게 현재 우리 집에서 살고 있는 ‘말 안 듣는 3세 고양이 아들 하트’이다. 고양이와 아이를 같이 키운 다는 것. 세상 가장 신비로운 생명체들을, 세상 가장 자기중심적인 생명체들을 키운 다는 것은 재밌고도 피곤한 일이었다. 정말로 아기가 한 명 더 생긴 느낌이랄까? 어미젖을 떼고 이유식을 마치고 이제 막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에 입양을 온 하트는 아기답게 나에게 의지했고, 밤새 놀아달라 보채기도 일수였고, 낮잠을 잘 때면 아기처럼 내 팔을 베고 잤다. 어딜 가든 내가 엄마라는 걸 아는 듯 졸졸 쫓아다니기 바빴다.

 


눈뜬지 얼마 안된 하트의 사진


하트는 페르시안 품종묘인 어미와 코리안 숏헤어(한국 길고양이) 사이에 태어난 수컷 고양이었는데, 하트의 어미가 처음 유기묘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 사진을 봐서일까? 가끔은 어떤 이유에서든 길을 떠돌게 된 하트의 엄마 고양이가 길에서 아주 크고 멋진 수컷 고양이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 건 아닐까?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자신의 영역에 다른 고양이가 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수컷 고양이가 자기의 영역에 하트의 엄마를 받아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준 것은 아닐까? 그러다 그 사랑의 결실로 아기를 갖게 되고 그렇게 길 생활에 어떻게든 적응하고 있는데, 우연히 사람들의 눈에 띄어, 품종묘였기에 시보호소로 잡혀(?) 온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고양이들의 네버엔딩 러브스토리를 상상해보곤 했었다. 하트의 엄마는 3kg을 조금 넘는 작은 페르시안 품종묘였지만 현재 하트는 7kg에 육박하는 제법 큰 거구의 수컷 고양이로 자랐기 때문에 종종 하트의 아빠 고양이는 꽤나 건장한 길고양이였을 거란 추측을 해보곤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처음부터 길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어떠한 이유로 주인에게 버려졌던, 길을 잃었던, 낯선 길 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거란 걸. 그리고 다시 따뜻한 집과 안락한 보살핌을 제공해줄 인간 주인을 만나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고양이처럼 자연발생 종이 아닌 인간이 인위로 만들어낸 품종묘들, 품종견들이 어떤 식으로 교배가 되어 세상에 태어나고 팔려가고 주인을 만나게 되는지, 가끔은 그 과정들이 너무 끔찍해서 알면서도 더 알고 싶지 않았고, 알면서도 더 모른 채 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고양이의 어린 시절은 인간 아이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빨리,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린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엔 딸과 남편 말고도 내가 키워야 할 생명체가 한 마리 더 늘었고, 자연스레 그 모든 과정들은 우리의 생활과 삶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고양이는 그 녀석 한 마리로 끝 일 줄 알았다. 일 년 뒤, 평소처럼 잠들기 전 스마트폰 의식행사를 마치느라 인터넷 게시글들을 훑어보기 하다 온몸이 까맣고 동그랗고 노란 눈을 가진 작은 고양이 한 마리 사진이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하트를 입양하면서 유기묘 보호소나 동물 보호단체 몇 곳의 소식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고, 1년도 넘게 유기견이나 유기묘 입양 글들을 접했었는데, 그날 갑자기 왜 그렇게 멈칫하고 놀랐을까? 인간 어른 손에 억지로 붙잡혀 보호소에 공고 번호를 이름으로 쓰게 된 검은 고양이 사진 속, 그 동그란 눈이  ‘어서 나를 데려가 줘’라고 꼭 나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운명처럼.



유기동물 어플 '포인핸드'에 올라온 루나의 사진



그래서 아주 늦은 저녁, 임시 보호자에게 연락을 했고, 그 주 주말에 우리 집으로 입양 전제 임시보호를 하기로 결정했다. 3개월간 임시보호를 거쳐 3개월 후에는 온 가족의 동의하에 입양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둘째 아이도, 둘째 고양이에도 무반응이던 남편은 예상외로 흔쾌히 입양을 수락했다. 그리고 주말 오전, 검은 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왔다. 철제문이 달린 이동장에서 노란색 동그란 눈만 깜빡 깜빡이며, 바들바들 떨고 있던 아이. 얼굴이 납작해서인지 아니면 낯선 우리 집이 무서웠던 건지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인 고양이를 딸아이는 '루나'라고 이름 붙여줬다. 만화 세일러문에 나오는 귀여운 고양이와 닮았다는 이유였다. '세일러문에 나오는 루나'라 길에서 우연히 고양이 루나를 구해주면서 세라는 마법의 힘을 얻게 되고 '기적의 세일러문'이 되는 그 장면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루나는 우리 집의 셋째가 되었다.



루나는 금새 우리집에 적응했다.



첫째는 인간 딸, 둘째는 고양이 아들, 그리고 셋째는 고양이 딸. 작고 연약해 보이는 아이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가족으로 맞이하기 위해 하트와 격리 작전을 펼쳤다. 하트가 자신의 영역에 과연 루나를 받아줄 것인가, 그것은 그 한 주 동안 우리 가족의 가장 큰 해결과제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합사가 진행되었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나, 남편, 딸,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루나는 유기묘 보호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버림받는데 어울리는 동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말이 되진 않지만 루나는 유별나게 사람을 잘 따르고, 안겨있기 좋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과 나는 루나를 아기처럼 안고 있곤 했다. 목소리도 상상 이상으로  너무 작아서 '야옹야옹' 소리가 아닌 '삐약삐약' 병아리 소리 같았다. 도도함의 상징 고양이답지 않게 애교도 무척 많아 눈만 마주치면 특유의 부엉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요리조리 비비기 바빴다. 하트와는 또 다른 느낌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가진 녀석이었다.





아마도 원래의 주인이 펫샵에서 품종묘인 루나를 사서는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겐 불필요한 산책을 데리고 나갔거나, 어떠한 이유로 이 아이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펫샵에서 태어나 어미의 젖도 물어보지 못한 채 몸집이 커지면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케이지 한편에 방치되었다가 팔 수 있는 개월 수를 넘겨버려 버려진 걸까? 아니야. 버렸을 리 없어. 버려졌을 리가 없어! 말도 안 되게 너무 사랑스럽잖아! 하고 매일 밤 루나를 보며 생각하곤 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검은색 고양이는 불길하다며 기피한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이 우스울 만큼 루나는 귀여움으로 중무장을 한 녀석이었다. 딸아이가 붙인 이름 '루나'처럼 루나는 조용하던 우리 집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마법 같은 고양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말투도 행동도 조금씩 아이 티를 벗기 시작한 딸, 성묘가 되면서 전보다 나에게 덜 의지하는 고양이 아들, 항상 소년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편, 그 사이에 루나는 다시금 나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커다랗고 노란 눈망울과 보드랍고 검은 털을 가진 막내딸이었다. 내가 집안 어디를 가든 쪼르르 다가와 그르렁그르렁 노래를 부르고, 아침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 얼굴 맡에 앞발을 모으고 가지런히 앉아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곤 했다. 얼핏 보면 검은 먼지 같은 존재. 그런데 자세히, 가까이서 보면 눈도, 코도, 입도 너무 예뻐서 계속 보고 있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고양이. 어느 날 밤, 남편과 딸에게도 고백했지만 나는 사실 하트보다 루나에게 마음이 더 쓰인다. 하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양이 엄마에게 사랑도 받았고, 형제자매들과 젖먹이 시간도 보냈고, 따뜻한 가정에서 태어나 영역 독립의 순간 우리 집으로 와 온몸으로 사랑을 받고 지낸 고양이 아이 었지만, 루나는 항상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누구에게서, 태어났을까? 루나의 엄마, 아빠도 루나처럼 검은 털을 가졌을까?'

가끔 하트가 서열 싸움을 한답시고 루나를 괴롭히는 걸 보면, 루나는 사람에게만 예쁘게 생긴 고양이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고양이 세계에선 루나처럼 얼굴이 납작하고 다리가 짧은 아이는 조금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고. 순전히 사람들 눈에 귀여우라고 만든 품종이니 말이다.






언젠가는 루나를 주인공으로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 동물 보호소에 영문도 모른 채, 이름 대신 공고 번호가 붙어 기한 내에 입양자나 원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먼지처럼 세상에서 사라졌을 아이. 검은 먼지였던 아이가 우리에게 와서 이름을 갖고 마법 같은 시간을 선물해주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나는 루나에게서 아주 묘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엔 고양이가 산다. 한 마리는 하얀 털에 이마엔 회색 앞머리 코트를 지닌 하트. 그리고 검은 털에 코도 입도 발바닥 젤리조차 검은색인 올블랙 루나.




나는 이 두 고양이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다. 인간은 가끔 자신이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둘째 아이 대신 고양이를 키워볼까? 하고 생각했고 내가 두 마리의 고양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만 끊임없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나는 고양이의 그 자기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사랑을 주는 받는 방식이 너무 좋다.


가족이라는 건 뭘까? 피가 섞이고, 한 집에 살고, 같은 성을 쓰고, 사랑을 하고, 상처를 주고, 때로는 가족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참견을 하고, 관심을 쏟고, 사랑과 미움, 기쁨과 상처, 극과 극의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속해있던, 선택권 없이 너무나 당연히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의 배경이 되었던 것. 나는 그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두 마리의 고양이에게 선택받고 난 후 나는 종종, 아니 많은 순간을 고양이처럼 살고 싶고 살아가려 한다. 자기다움을 유지한 채 사랑할 것.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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