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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 Mar 17. 2019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



 

보통의 체격, 보통의 얼굴, 보통의 이름, 보통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보통'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보통으로 사는 것, 평범으로 사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어렵고도 소중하고도 필요한 일이라는 걸 여자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았다.







05. 먹고사는 이야기

<보통의 식사>  


 여자는 자신의 엄마가 아주 오랫동안 식이장애를 앓아왔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여자의 엄마는 '채식주의자'이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시피 채식주의자는 선택적으로 동물성 식단을 철저히 배제하고 식물성 식단으로 자신의 식사를 채우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그 정도의 차, 선택의 차이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한 채식주의자. 하지만 여자의 엄마는 비위가 약해서 새로운 음식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채식주의자였다. 생선이나 고기류의 냄새를 맡으면 냄새가 역하다며 헛구역질을 하기 바빴다. 아주 조금의 동물성 식단의 향만 나도 그것을 못 먹는 음식이라 치부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녀의 엄마가 먹는 것이라곤 몇몇  곡식류와 몇몇 가지의 야채 반찬뿐. 채식주의자라고 하기에 지나치게 한정된 음식을 먹었고, 지나치게 자주, 많이 먹었다.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로는 그녀의 엄마가 처음부터 채식을 한건 아니었다고 했다. 어떠한 사건에 의해, 어떠한 감정의 결과에 의해였는지는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녀의 엄마를 보고 알았다. 허기의 강도는 감정의 강도와 반비례하다는 걸. 여자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야 엄마의 보통의 식사들이 결코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렸다.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라는 내내, 여자아이의 엄마는 자신이 먹지 못하는 음식을 아이에게도 먹지 못하게 했다. 어떠한 생명윤리나 도덕적 이유에서 시작된 채식이 아닌 섭식장애로 인한 채식주의자. 여자아이는 자라는 내내 가끔 궁금했다. 다른 집 엄마들은 아이에게 무엇이든 골고루 먹으라고 권유하던데.. 왜, 대체, 우리 집 엄마는 '이것은 먹으면 안 돼.' '비위 상하게 그걸 어떻게 먹니?' ' 되도록 그런 것들은 먹지 말도록 해. 살쪄'..라는 말을 일삼는 것일까?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여자는 자신의 엄마의 기준에 맞춘 식습관을 가지고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의 첫 생리가 시작하던 무렵의 몸무게는 30kg가 갓 넘었지만, 여자아이는 20살이 되기까지 1년에 고작 1kg의 무게씩만 늘었을 뿐, 스무 살이 넘어도 40kg를 겨우 넘은 마른 몸을 가졌고,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여자아이는 동물성 식단에서는 멀어져야 했다. 계절이 바뀔 때면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짚고, 약을 지어먹곤 했다. 그때마다 한의사는 맥이 잘 집히지 않는 체질이라며 기력이 약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엄마를 닮아 신경이 예민한가 봐' , '나는 엄마를 닮아 살이 찌지 않나 봐' '나는 엄마를 닮아 소화기관이 약한가 봐.' 단정 지을 수 없었지만 아주 많은 부분을 엄마에게 영향받고 자란 여자아이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게 그 당시 여자가 생각하던 보통의 평범한 삶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보통의 삶이라 생각한다. 그것 이상의 것, 그것 이하의 것은 보통이 아닌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삶의 궤적이, 보통의 궤적이 틀렸구나! 깨닫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슬픈 일인지.. 여자는 알면서도 차마 자신의 엄마에게 '당신이 틀렸어요. 당신은 보통이 아니네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보통의 것이 아닌 것을, 보통의 기준으로 삶고 살아가는 여자에게서 자란 다는 건.. 여자는 그때를 떠올리면 그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녀는 그 여자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진짜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였나요?'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인생에 손꼽을 세 번째 연애가 끝났을 때였을까? 보통의 연애처럼 보통의 사랑을 하고, 보통의 이별을 맞이한 그녀에게 더 이상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음식의 향이 너무 짙어서, 너무 역겨워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보통의 일상을 지속해야 했기에, 다량의 카페인에 의존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감정의 강도와 허기의 강도가 비례하다는 괴로움. 삶을 잃고 싶은 만큼 식욕도 사라지고, 사랑을 잃은 만큼 먹고 싶은 욕망도 사라졌다. 너무 당연한 보통의 이별 증상이었지만, 그녀는 그 일로 인해 엄마에게 병원에 끌려가 위장장애 판정을 받고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나는 정말로 그를 사랑해서 그랬던 걸까?' 그녀는 지금도 종종 그때를 떠올려본다. 그토록 인생에 있어 아무런 의욕도 가지지 못했던 때가 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녀는 지금은 보통의 것을 먹고, 보통의 나날을 살아간다. 그 후로 보통의 연애를 몇 차례 더 했고, 보통의 남자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타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더 이상 타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가끔 슬프다가도 타오르지 않아서 사라지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그저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그것을 '보통'이라 여기기로 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먹고 싶은 것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무언가를 먹을까 고민하는 즐거움. 그녀는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모르고 지냈다. 가끔 그 고민이 너무 별 것도 아닌데 너무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지낸 시간들이 억울해서 그녀는 가끔 눈물이 났다. '보통을 살아야겠다. '그녀는 오늘도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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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퇴근했어? 

저녁에 뭐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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