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ike green.

by 승민

“넌 무슨 색을 좋아하니?” 어려서부터 참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지? 이 말을 들으면 흰색, 파란색, 검은색 등등 여러 가지 색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결국은 흰색이 입 밖으로 나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흰색이 가장 무난하고 좋을 것 같았나 보다 그 당시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우유부단하여 상대방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이나 해야 할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딱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부탁이나 거절의 말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 상대방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님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고등학생 시절. 모처럼 집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주말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야 동대문 같이 가지 않을래?” 수원에 살고 있는 나에게 동대문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게다가 그때의 시간은 오후 3시 정도로 정말 애매한 시간이었다. 머릿속에선 이미 ‘집에서 쉴 거야’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응. 알겠어. 있다 보자.”였다. 그렇게 난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던 동대문을 친구와 함께 억지로 동행하였다.

또 하나의 일화다. 처음 단편영화에 입문했을 때의 감독님에게 새로운 단편 영화를 제작하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로 현재 생활하고 있는 내 방에서 찍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들뜬 마음에 흔쾌하게 승낙을 했고 시간이 지나 시나리오까지 완성하였다. 시나리오를 보신 감독님은 이야기가 너무 정직하고 착하다며 다른 방향으로 써보길 권유했고, 감독님의 자극적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난 한동안 감독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화가 감독님은 처신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어른답지 못한 나의 행동을 꾸짖으셨고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씁쓸하게 정리되었다. 참으로 바보 같다. 말 한마디면 될 것을. 그저 피하고만 싶었나 보다. 피하면 자연스레 해결이 되겠지라며 회피하기 급급했다. 그때의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며 바보 같은 나의 행동 때문에 결국 사람을 잃었다.


그 이후. 선택의 순간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말들을 솔직히 하고 있는 편이다. 상대방은 순간 기분 나쁘겠지만 길게 본다면 차라리 당시에 해결하는 편이 백 번 낫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닥칠 책임지지 못할 폭풍우와 자책으로 괴로워하느니 말이다.

그에 더해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고려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잘 살피고 예를 갖추는 마음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누군가 나에게 “넌 무슨 색을 좋아하니?”라고 물었을 때 내 대답은 녹색이다.


그 이유는 어느 날 무심코 옷장을 열어보니 옷장 안의 옷들이 거의 녹색 계통임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거의 모든 옷들이 녹색 계열이니 매칭이 쉽진 않아 다른 컬러의 옷을 사리라 마음먹고 매장을 찾지만, 나올 때 내 손에 들려있는 건 온통 녹색 계통의 옷들뿐이다.

하지만 어떤가. ‘내가 좋아하니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한다. ‘말’도 이같이 내 의지로 책임질 수 있는 소신이 깃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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