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0 뭐라도 쓰는 하루
미뤄둔 2020년의 일을 하기 위해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다녀 왔다.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에도 출근을 한 게 아니라 미루고 미뤘던 일을 더 이상을 미룰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12월에 했으면 넉넉하게 끝냈을 일을 하지 않았고, 연말연초 휴가때 해야지 했다가 안했다. 외근과 워크숍으로 주중엔 시간이 안나 이번 주말엔 기필코 끝내야지 했는데 어제도 그냥 집에 있었다. 뭘 믿고 그동안 나는 그리 태평했던가.
아픈 다리가 계속해서 낫지 않고 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긴장하면서 몸에 힘을 줘서 균형이 깨지고 순환이 안 되는거라고. 아... 그렇다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상 내 다리는 나을 수가 없겠구나 생각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택하고, 살고 있지만 아주 더디게 변할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 만들어낸 스트레스라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뤄둔 이 일 때문에 읽고 싶은 책, 꼼꼼히 보고 싶은 기사, 몰아볼 드라마들을 계속 안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하지는 않고 유튜브를 배회하는 나날들이었다. 오늘 마저 안 나가면 진짜 안 될 것 같아 꾸역꾸역 나갔다. 중간에 저녁 먹는 시간을 빼고는 7시간 동안 내내 키보드를 두드렸다. 해야할 일의 절반 정도를 마쳤다. 내일 마저 마무리하면 그래도 넘길 수 있겠다. 월요일까지 자료를 넘기기로 했는데 하루가 24시간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월요일이 끝나기 전에는 보낼 수 있겠지.
저녁 요기꺼리를 사러 나갔다가 포장을 기다리면서 설연휴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설연휴엔 안 올꺼지?'라고 물었다. 나는 제주에 가는 걸, 집에 가는 걸, 엄마를 보는 걸 좋아하지만 친척집에 가는 걸, 친척들이 우리집에 오는 걸 싫어한다. '이번엔 코로나로 다 따로 지내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섭섭함이 묻어났다. 스무살에 제주에서 올라온 이후로 방학이나 연휴에 거의 안 내려갔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설, 추석, 제사 이렇게 세 번은 꼬박 챙기다가 몇년 전부터 설, 추석 연휴는 가끔씩 패스했었다. 친척들을 안 만나도 되니까, 간 김에 <복자에게>의 배경이 되었던 가파도에도 다시 한번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예매했다. 엄마에게 제안할 프로젝트도 있고.
차를 놔두고 걸어서 퇴근했다. 새해 들어 다짐한 만보를 채우기 위해서. 신호 몇 개만 건너면 화정천이 나온다. 천변을 따라 걸으면 집에 도착한다. 이런 출퇴근길이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걷는 경우가 드물긴 했지만 올해는 자주 걸을 예정이다.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으면 딱 4천보가 나온다. 집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7000보가 되는 지점에서 턴해서 다시 내려왔다. 만보를 채우고 집에 들어왔다. 영하의 찬 공기는 춥다기보단 상쾌한 느낌을 줬다. 어쩌면 다 돌고 집에 왔으니까 드는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걷길 잘했다.
사실 늘 그렇지 않나. 하기 전에는 '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하기 싫다'의 귀찮음으로 망설이다가 시작하고 나면 '왜 한다고 했을까', '괜히 했어' 원망과 자책을 하고, 다 마무리 되고 나서야 '하길 잘했어'라고 생각하는거. 오늘도 집을 나서기 전 그냥 내일 빡세게 할까 몇번을 생각했고, 퇴근하면서 엘레베이터 앞에서 차 타고 갈까를 내내 생각했다.
사회생활 초창기의 나는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으로 시작하지 못하는 시간을 꽤 오래 보낸 편이다. 평생 그럴 수는 없으니 괴로움을 견디고 해내기 시작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하는 동안도 내내 귀찮음, 괴로움, 두려움 등과 싸우지만 결국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나니 그래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미리미리는 잘 안 된다. 마감에 의탁해 쫓기듯 살면서 기획안, 보고서, 성명서, 평가서 등 각종 서류들을 만들고 있지만 미리 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 보단 하기로 한 때에 끝낸 것에 칭찬하는 편을 택했다. 그래야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일에 부담이 적고 적응이 빠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길 잘했어'라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 어느 시점부터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시작이다. 덧붙여 추운 날 걸어서 콧물이 계속 나는 오늘 같은 날 '아 역시 이런 날은 걷는 게 아니야'가 아니라 '다음엔 휴지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어른의 징표다. 하는 편을 택하고, 방법을 찾는 것.
오늘의 '하길 잘했어' 세가지
- 출근해서 미뤄둔 일의 절반을 한 것
- 설연휴에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매한 것
- 춥고 오래 걸렸지만 만보를 걸은 것
오늘 일기 끝.
(열두시가 되기 전에 글을 다 썼는데 갑자기 와이파이가 먹통이 되면서 글을 날렸다. 이 글을 다시 쓴 것도 '하길 잘했어' 목록에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