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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소영 Mar 08. 2021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210308

2월27일 총회를 기점으로 11년 8개월의 시간에 매듭이 지어졌다. ‘퇴사’라는 일반의 언어로 정리해버리면 좀 아쉬움이 있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새로운 영감과 도전을 독려했으므로 그 곳으로 출근을 하지 않을 뿐 삶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는 비공식적으로 계속 출근했다. 회원들에게는 2월에 미리 그만둔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후원회원들에겐 아직 다 알리지 못해서 하루 종일 전화 통화를 하거나 메신저를 주고 받고, 마지막 인사 문자를 보냈다. 써야했던 사업신청서도 하나 남아 있었고, 2월에 할 엄두가 도저히 안 나서 3월초로 잡아뒀던 강연, 행사 준비를 하는데에는 아직 사무실이 더 수월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사무실에 나갔다가 어제(일요일) 비로소 책상 정리를 했다. 문서를 파쇄하고,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나눠주고, 남은 건 작은 박스 몇 개에 나누어 담았다. 후배들이 도와줘서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빈 책상을 보니 ‘이제 진짜 끝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감정은 아닌데 뭔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일렁였다.

그리고 오늘, 이제 진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첫 날이다. 사무실 아래층 요가원을 다니고 있어서 오전에 사무실 건물에 가긴 하지만 요가가 끝나면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는 아직은 낯선 패턴... 3월은 오랫동안 못봤던 사람들과의 약속을 잔뜩 잡아놔서 점심, 저녁이 꽉 차 있다. 후배를 만나 점심을 먹고, 차도 한잔 마시고, 한의원에도 다녀왔다. 5시가 되기 전에 집에 오다니, 집에 왔는데 아직 밝다니... 빨래를 돌리고, 분리수거 쓰레기들을 들고 나와 버리고, 산책을 했다. 동거인이 보면 놀랄지도 모른다  매일 밤 열두시가 다 되가는 시간에 들어와 겨우 잠만 자던 나였으니. 아직 저녁 7시다. 아 이 낯선 시간들~ 곧 적응이 되겠지. 늘 긴장된 상태로 숨가쁘게 일을 헤치우듯 보냈던 날들은 가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되는 급할 것 없는 시간을 맞이했다. 올해말까지는 새로운 일에 대한 구상과 준비를 하면서 보낼 계획이다. 사실 돈 안 벌고 1년을 버틸 수 있을지와 내년엔 과연 돈을 벌 수 있을지 두 가지가 다 고민이다. 호기롭게 ‘자발적 불안정함’을 선택했는데 이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니 가볼 수 밖에.

시간의 여유를 마음의 여유로 만드는 시간을 보내자. 요가쌤이 힘 쓰는 동작을 하려면 충분히 이완부터 해줘야 한다고 했는데 올해는 나에게 ‘이완의 해’로. 시간이 생겨서 하게 되는 생각들, 여러 경험들을 차곡차곡 잘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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