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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홍 Stanley Nov 23. 2018

2018년 11월 23일 윤동주 “자화상”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외딴 우물을 혼자 찾아가

아름다게 펼쳐진 배경 속에 우두커니 선

한 사나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밉다. 부끄럽다. 어쩐지 보기 싫다.

그 외진, 외딴 우물 속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은 그 사나이가 서 있다.

다시 돌아서 가다가 가여워 돌아오고,

또 다시 미워져

다시 돌아서 가다가 그리워 돌아온다.


그래도 그가 아름다움 속에서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으로

돌아가다 돌아서고 다시 돌아가다 돌아선다.

 

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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