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3일간 수련회를 다녀왔다. 3월부터 D-○○을 세어가며 손꼽아 기다렸던 행사인 만큼 제발 날씨가 좋았음 했는데, 야속하게도 둘째날 아침부터 사정없이 퍼붓는 비 때문에 아이들이 그토록 기대하던 카약 타기와 야외 활동이 모두 무산됐다. 결국 실내활동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는데, 시무룩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밝은 친구들이라 오후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즐기는 듯 하여 내심 다행이라 여겼는데 문제는 저녁식사 후 있었던 '명랑운동회'였다.
100명의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눠 각 종목을 희망자를 받아 진행하는 형식이었는데, 우선 종목 자체가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없는 방식이라 나머지 아이들은 쭉 방청객 모드로 있어야 했다. 그리고 종목마다 겹치지 않게 인원을 뽑으라 했으나 의무사항이 아니라서 적극적인 아이들만 몇 번씩 나가 게임을 즐겼고 소극적인 아이들은 또다시 방청객이 되었다. 또한 반별 협동심을 다지기 보다는 알아서 퍼져 앉는 구조라 각자 친한 친구들끼리만 뭉쳐 앉다 보니 소외되는 아이들도 발생했고 서로간에 더욱 분리되는 느낌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가장 문제는 그런 상황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진행하는 사회자에게 있었다. 진행도 무척 미숙했고 분위기를 띄우는 능력도 아쉬웠다. 중간에는 자신도 어려웠는지 게임 중에 룰을 갑자기 바꾸거나 버벅대는 모습을 보였다. 속상했다. 가뜩이나 아쉬움에 가득찬 아이들의 하루 마무리가 이런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걸 보는 게 힘들어 결국 중간에 나와버렸다.
그날 밤 속상함을 선생님들과 이야기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상황을 들어보니 우리 학교 말고도 다른 두 학교가 와 있는데 그 학교들은 수련회의 꽃 레크레이션&장기자랑이 잡혀 있어서 노련한 진행자 두 분이 거기 가 계시는 바람에 남아있는 분 중 한 명이 우리의 진행을 맡으신 거였다.
상황을 듣고 생각했다. 속상한 마음 어쩔 수 없지만, 우리 모두에겐 늘 미숙한 순간이 있지 않은가? 아직까지도 부끄러운 초임 시절의 나에게도 그 누군가에게도, 시간과 경험이 다듬어줄 수밖에 없는 '초보'의 순간들. 하지만 그 미숙함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그 미숙함 때문에 내가 투자한 시간이 아쉬움으로 가득 차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개개인으로 본다면 그 행동 하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름이지만, 인생에서 그 한 번으로 내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순간들은 무척 많다. 특히나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소비자가 있을 경우엔 더더욱 그 순간의 책임감이 막중해진다.
순간의 기회를 멋짐으로 만드는가, 구림으로 만드는가는 결국 나의 몫일 수밖에. 물론 누군가의 미숙함을 좀 더 너그러이 봐줄 수 있는 포용의 미덕은 정말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초보잖아'로 자신의 부족함을 포장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는 경계할 것. 언젠가 맞이할 처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둘 것. 이건 나에게 하는 이야기.
2018 . 0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