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매사에 똑부러지는 아이다. 수업시간에 내주는 과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완성할 줄 알며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기면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표현한다. 간혹 그 의견에 비난조의 공격이 들어와도 표정변화 없이 반박해 버리는 기술도 가졌다. 모둠활동에서도 주로 리더의 역할을 하며 아이들과 놀 때에도 자기 쪽으로 놀이를 끌어올 줄 아는 기세도 지녔다.
대신 종종 주장이 세고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할 때 자기 자신이 부정당한 것처럼 무너져 엉엉 울 때가 있는데 울음이 길지 않고 또 툭툭 털고 일어나 태연하게 넘어가는 걸 보면 회복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중심성이 강해 세상을 본인 위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내가 하면 괜찮고 니가 하면 안 괜찮은' 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어 '관계 속의 나, 세계 속의 나'로 인식을 확장시켜 과도하게 비대한 자아가 되지 않게 돕는 것도 교육이니 그것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맙게도 A는 나를 잘 따라주었고 나와 크게 마찰을 빚을 일도 없었다. 영리한 아이라 그럴 일을 잘 만들지 않았다. 다만 B가 개입되면 달라졌다. A는 B를 싫어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호의 감정이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너무 무던하게 여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A는 B와 접촉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온몸으로 싫음을 표현했다. 뭐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A가 무척 깔끔하고 섬세한 아이인데 반해 B는 그렇지 못했고 그런 B가 자신의 청결기준에 불합격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같이 있으면 불쾌해서 싫다고.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더이상 이해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며칠 전 점심시간이었다. 우리 반은 22명으로 한 줄에 11명씩 앉아 서로 마주보고 식사하는 구조로 테이블을 잡는다. 그런데 먼저 앉아있던 B 앞에 A가 앉게 됐다. A는 식판을 받아 테이블로 오면서 이미 B가 자기 앞임을 확인했고 그러자마자 걸음을 멈추더니 발에 한 무더기의 돌덩이들을 묶고 걸어오듯 겨우겨우 그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의자에 세균이라도 묻은 양 발로 의자를 꺼내서는 대충 걸터앉아 식판을 휙 돌려 B와 거의 등지는 자세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B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태연하게 식사를 계속했고 A는 몇 술 뜨다가 저 멀리 있는 친한 친구에게 가서 B가 앞이라 너무 싫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전했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말로 할 수 없는 뜨거움이 묵직하게 가슴에 들어찼다. 나는 A를 불렀다.
"A야, 너 지금 B가 앞에 앉은 게 너무 싫어서 의자도 발로 겨우 빼내고 옆으로 최대한 틀어앉아 B 안보는 쪽으로 밥 먹고 친구들에게 B 험담한 거 다 봤어. 선생님이 교실에서나 지난 급식시간 때 니가 B에게 한 행동들 잊지 않고 있어. 그런데 오늘은 그냥 지켜볼 수 없어서 따로 불렀어. 이건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이건 나쁜 거야. 폭력이야 A야. 니가 온몸으로 B에게 싫음을 표현한 모든 것들은 이해될 수 없어. 니가 싫어하는 감정까지 없애라고 하는 게 아니야. 근데 마음에 품고 있는 것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은 다른 문제야. 너의 감정을 나타낸 표현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다면 그건 폭력이야. 너가 그런 행동하면서 B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봤니?"
두서없는 말을 하고 나니 A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쨌든 악역을 맡는 건 너무나도 괴로우니까. 하지만 넘길 수 없었다. 나는 A에게 내가 본 것 중 혹시 오해했거나 잘못 본 것이 있냐고 물었다. A는 다른 건 다 맞지만 자기는 원래 의자를 발로 뺀다고 했다. 그건 습관이라고.
"그것 말고는 내가 잘못 본 것이 없다는 말이네. 맞니?"
"네."
"B가 니 앞에 앉아서 불편을 준 일이 있니?"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말 시키면 밥풀을 튀기면서 말해서 식판에 튀기는 게 싫었어요."
"그래. 그랬을 수 있겠다. 그 부분은 B에게 말할게. 그리고 평소에도 불편함이 있었니?"
"요즘은 괜찮았어요."
"니가 B를 좋아해달라는 건 아니야. 억지로 그럴 수 없지. 나는 너의 감정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니가 보여준 행동에 대해 얘기하는 거야. 그건 어떤 이유로든 괜찮을 수 없으니까. 앞으로 그런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상대의 마음을 생각해줬음 좋겠다. 부탁할게."
A는 대화 내내 눈물을 흘렸지만 내 말의 요지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밥 먹기 전에 지적당한 것이 속상해 밥을 다 버리는 건 아닌가 내심 걱정했는데 자기 밥 다 먹고 한 번 더 받으러 가길래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 하는 괴로움을 짊어지고 사는 나 역시 밥은 꿀떡꿀떡 맛있게 먹었다.
교실로 돌아오니 짐을 챙기는 A가 있었다. 한동안 우리 사이에 냉기가 돌까 염려했는데 A는 다정하게 인사하고 가줬고 그게 참 고마웠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해준 것 같아서. 본인을 비난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잘못을 바로잡고 싶었다는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서.
공교롭게도 다음 날 급식시간에도 A와 B는 마주보고 앉게 됐다. 가만히 지켜보니 A는 앉기 전 잠깐 멈칫했지만 크게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진심주의자였다.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고 무엇이든 진심을 담아 표현해야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말한 진심은 긍정적 진심이었지 부정적 진심을 담고 있진 않았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을 상처주는 것도 결국 진심이었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내 진심을 그대로 꺼내놓는 것만큼 상대를 아프게 하는 일이 있을까. 좋은 건 어떻게 내어놓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나쁜 건 포장이 중요하다. 가식적인 포장력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포장의 기본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꺼내놓는 것보다 포장된 마음이 타인에게 덜 해롭다면 그 역시 배워야 할 태도라고, 그렇다면 나는 잘 하고 있냐고. 그날의 대화가 내게 거울이 되어 돌아왔다.
2019. 0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