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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sory Mar 21. 2020

커피와 자유.

몇 달 전부터 평일 오후 5시 이후로는 아메리카노를 입에 대지 않았다. 저녁 약속 때 2차로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지금 먹어도 잠이 잘 와?"라는 놀라움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이런 것과 상관없이 잘 자는 사람이라며 커피 따위에 지지 않는다는 쓸데없는 우쭐함을 과시했던 나인데... 


언젠가부터 저녁 커피를 마시고 나면 밤에 심장이 더 유난스레 콩콩대는 게 곧 무슨 일이 일어날까 초조해하는 공포영화 속 주인공같은 기분이 들고, 새벽 3시가 지나도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알람시간까지 얼마나 잘 수 있지를 계속해서 수정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을 깨닫고는 재빨리 과시를 넣어두게 됐다. 

잠이 오지 않아.....


학교에서는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자고 싶은 욕망이 하늘을 뚫을 것 같을 때 빼고는 커피를 입에 대지 않는 나지만, 카페에서는 가성비를 따졌을 때 밥보다 높은 칼로리로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고 값도 제일 저렴하면서 한 번에 훅 마셔버릴 만큼 되게 맛있지도 않은 아메리카노가 늘 내 옆을 지켰다.


하지만 이젠 다른 선택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다. 요즘에 주로 먹는 것은 민트 블렌드 티나 히비스커스 티인데 티백 하나 넣은 물이 대체 왜 아메리카노보다 비싼 것인지 의문이지만 따질 처지는 못되니 넣어두도록 한다.


이렇게 아메리카노와 내외하게 되면서 뜻밖의 플렉스(?)가 생겼는데, 금요일/토요일 밤에는 몇 시가 됐든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내일 쉬니까 아무 때나 일어나면 된다며 호쾌하게 웃어제끼는 허세카드를 보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피와 멀어지고 나니 이제 커피를 들이키면 몸이 더 강렬하게 반응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정말 갈 때까지 간 마감임박의 일을 오늘 밤 당장 끝내버려야 하는 비상사태가 생기면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효과를 기대하는 수준까지 이용하게 됐다. 우리의 몸은 정말 신기해.


나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커피 애호가들은 이 원두가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섬세하게 맛을 구분하고 각자 자신만의 애정하는 카페 리스트를 갖고 있으며 여기는 아메리카노가 맛있고 저기는 라떼가 맛있다며 상대의 취향에 맞게 추천해줄 줄도 알고 심지어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정도로 커피의 모든 것을 정복할 만큼의 사랑을 보이기도 하던데, 커린이(커피 어린이)는 그저 신 커피보다는 고소한 커피가 좋고 덥고 갈증나면 아이스, 대부분의 경우엔 핫을 선호하는 정도의 선호만 있을 뿐이다.


몇 년 전엔 친구가 폴바셋 라떼는 세상 최고라며 극찬 오브 극찬을 해서 따라먹어보고는 우유의 고소함이 커피의 씁쓸함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맛이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기분까지 들어 한동안은 어딜 가나 라떼를 먹었다. 아메리카노도 막 좋아서 먹는 건 아니었으니 언제든 대체재가 생기면 마음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러다 동물복지에 조금 눈을 뜨면서 우유를 최대한 안 먹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라떼 없어 못 살 만큼 간절하진 않으니 내게 굳이 없어도 될 만큼 간절하지 않은 것을 놓았을 경우 상대가 가진 반대급부의 절박함이 좋은 쪽으로 해소될 수 있다면 고이 놓아주자는 결심이 강해지면서 라떼를 완전히 끊었다.


최근에 만난 친구는 내가 주로 티를 마신다고 하니 티백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많다며 찻잎을 띄워먹는 게 좀 더 좋은 방법이라 했다. 그리고 은혜롭게 찻잎 우려먹기 좋은 컵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니 어떡해. 바로 찻잎 검색해서 몇 종류의 차를 현명하게 소비해야만 했다. 그럼 이제 카페에서는 뭐 먹지? 또 새로운 선택지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찾아왔다.


내 몸을 더 잘 알게 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면들을 마주하면서 내 선택지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습관처럼 별 생각없이 해오던 것들을 생각해서 결정하고 행동하게 되니 자유가 줄어드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자유를 갖는다는 건 순수하게 자의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할텐데, 고려대상이 많아질수록 온전히 내 의지만으로 선택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진짜 자유를 가로막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선택지들을 조금씩 나눠갖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내게 또다른 자유이자 즐거움이다. 내 선택이 결국 나를 훼손한다면 이기적인 마음에 선택하지 않을 테니까. 좀 더 섬세하고 촘촘한 선택지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이 결국 나에게 더 의미있는 자유를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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