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혼자인 나를 염려한다. 얘가 뭘 잘 챙겨먹고 사는지, 혼자의 삶을 잘 꾸리고 있는지. 대학생이 된 이후로 쭉 나와 살았으니 자취경력 10년이 훌쩍 넘는데도 걱정은 여전하다. 그의 염려 레이더망은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데, 나보다 자취경력도 짧고 중간중간 다시 집에 들어가 살기도 했던 동생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미미하다.
"아유 너는 늘 물가에 내놓은 애 같아. 동생은 알아서 밥도 해먹고 지 건강은 지가 척척 챙기는데." 엄마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에 나는 이 나이 먹고도 스스로 돌볼 줄 모르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고, 혼자서는 늘 그럴 것이니 옆에 든든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기승전결혼의 결론으로 급작스럽게 점프해버린다. 사실 그의 편견도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라서 "아니야. 난 혼자서도 잘 살아!!!"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무엇이든 참길 잘했다. 슬픔도 배고픔도 말도 외로움도. 발산하기 보다는 삭히는 게 편했다. 동생은 표현에 능했고 참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둘만 집에 있을 때 출출하면 나는 '배가 고프네' 하고는 가만히 있었던 반면 동생은 엄마가 꽁꽁 숨겨둔 간식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건네줬다. 워낙 간식을 좋아했던 아빠와 동생을 피해 구석구석 숨겨놓아도 보물찾기 최강자처럼 어떻게든 발견해내는 동생의 능력에 엄마도 감탄했을 정도였다.
불편한 환경에도 그저 나를 맞춰가는 게 편한 언니와 불편하면 바꿔야 편한 동생의 동거에서 언니는 동생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어 살아왔다. 참아버리거나 부족함을 채워주는 타인에게 의지하는 생활방식은 스스로를 개선하는 데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바꿀 의지도 없었지만 이렇게 살아도 삶의 결정적 부분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는 경험주의적 결과가 관성처럼 이끈 일이기도 했다.
예전에 본 사주에서 나는 물같은 사람이라 퍼져있길 좋아해 남들보다 변화가 느리게 찾아온다고 했는데, 이 관성이 사주에도 기록돼있는 것인가. 꼼꼼하지 못해 구멍도 많고 계획력도 부족한 게으른 사람. 나의 약점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지만, 부족하니 고쳐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나는 이런 거 못해'라고 선언함과 동시에 이런 나를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에 뱉은 말들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같은.
그러나 위로받는다고 다가 아닌 상황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올해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장기화되면서 학교의 모든 계획이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계획을 세웠어도 아예 엎어버리고 새로 셋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고 전에 없던 사태인 만큼 거의 대부분의 규정이 새로 만들어져야 했다. 규정은 혼자 만들 수 없으니 계속해서 협의를 거쳐야 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협업과 토의가 중요해졌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 같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나는 꽤 협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제상황을 다각도에서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이 부족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능력도 약하다는 걸 깨닫는 일이 생겨나면서 많은 타격을 입었다. 생각보다 더 못난 사람같아 속상했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옆반 동갑내기 친구 때문이었는데이 친구의 탁월하게 빛나는 꼼꼼함과 계획력, 의견제시능력이 자꾸만 나를 쭈굴쭈굴하게 만들었다. 하려고 마음먹었던 학년업무를 시작할라 치면 그가 이미 업무를 완수하고 정리해 공유했고, 무엇이든 깔끔하고 정확하게 해낼 줄 알아 내가 아무리 용써봤자 가랑이가 찢어질 뿐이었다.
내가 평균치에 도달하려 노력해도 친구의 탁월함엔 늘 못 미쳤고 그러다보니 학년에서의 기여도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 친구가 미워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이 못난 마음아! 한동안 무력감에 나를 푹 절여놓느라 회복이 어려웠는데, 이렇게 있어선 죽도 밥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름의 방안들을 고민했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다. 근데, 안되는 건 안되는 거더라. 깔끔하게 나의 부족을 인정하고 다른 것들에서 기여하려고 노력하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느 날, 다른 반 선생님께 나의 이런 못난 질투심과 모자람을 고백했더니 본인도 그에게 고마우면서도 나와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셨다. 나는 내가 그런 영역에서 이렇게나 부족했는지 올해 절실히 깨달았고, 너무 노력없이 부족함만 안고 산 건 아닌지 반성했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모두 다 같은 능력이 출중하면 좋은 건가요? 아이들도 6년동안 다양한 선생님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죠. 저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만이 줄 수 있는 탁월한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선생님(친구)의 능력에 고마운 마음이지만, 그 능력만이 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고마워만 하되, 자책하진 마세요." 하셨다.
못난 고백에 돌아온 너무도 따뜻한 위로에 눈물이 왈칵 나 훌쩍이니, "그 선생님 능력이 뛰어난 건 맞고 우리가 모두 큰 도움받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너무 답답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독촉하는 대신 자기가 먼저 해내는 거예요. 그건 그의 성향인 것이죠." 라며 덧붙이셨다.
맞다. 각자 다 잘하는 게 있는거지. 하지만 꼼꼼함과 계획력은 어디서든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탁월하게 잘할 순 없어도 잘해내면 좋은 능력이니 보완을 위한 노력은 해봐야지. '나는 못해'가 종결의 문장이 아니라 시작의 문장이 되도록, 그래서 플러스는 못돼도 마이너스인 영역은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보고 싶다.
자책이 따라와 슬픔의 늪에 빠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열등감은 늘 나의 큰 동력이었다. 위로가 된 선생님 말씀처럼 이 능력이 나를 평가하는 전부가 되진 않는다는 것만 잊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길.
2020.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