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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sory Sep 29. 2020

열혈 이벤트인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기쁨을 가장 요란하게 표현하는 이였다. 자신의 일이든 타인의 일이든 상관없었다. 기쁜 일은 아이같이 흠뻑 기뻐했고 기뻐해줬다. 학창시절 중간/기말고사 날이면 그는 꼭 5개짜리 미니쉘을 건넸다. 비닐포장지에 네임펜으로 시험 잘 보라는 문구를 적어서. 발렌타인 데이나 빼빼로 데이도 잊지 않고 챙겼는데 세 모녀에게 달달한 간식을 선물로 안겨주고는 흐뭇하게 웃으며 본인이 더 좋아했다. 가족의 생일날에는 생일 당일의 시작부터 종료까지 그만 했으면 좋겠다 바랄 만큼 생일축하멘트를 해줬다. 곁들여 우스꽝스러운 춤도 췄는데 그의 귀여움에 피식피식 웃다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엄마는 아빠와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과도한 감정표현을 좋아하지 않아 아빠의 기쁨표출을 부담스러워 하곤 했다. 다행히(?) 아빠는 그런 것에 절대 시무룩해지지 않는 사람이라 일관되게 요란했다. 학창시절에는 나 역시 엄마의 반응에 가까웠다. 사실 지금도 내가 축하받는 자리는 익숙하지 않아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어색하고 쑥스럽다. 너무 감동적이고 고맙긴 한데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영 적응되지 않는 마음? 이런 무뚝뚝하고 감정표현 부족한 세 모녀 때문에 아빠의 갈증은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지만, 조용한 우리집에서 가장 조용하지 않았던 사람 덕분에 나는 기쁨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자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내게 직접적으로 가르쳤던 것들보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생각하며 행동했는지를 보고 자라며 간접적으로 접한 것들이 무서우리만치 내 안에 깊숙히 박혀있다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이 내가 갖길 원치 않았을 것들까지도. 하지만 함께 산다는 건 서로가 겹쳐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환경이니 내 안에 그들이 함께 한다는 걸 인정하고 나의 것을 꾸려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아빠에게 받은 수많은 것 중 열혈축하인의 길을 걷게 된 것도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요란스러움 싫어하는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기념일은 한껏 열심히 꾸며주고 싶어 노력하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 보면 내가 더 행복한 그 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아빠딸이라는 이유가 가장 강력하다. 


겉으로는 틱틱대고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지만 은연중에 알았을 것이다. 그가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이것으로 표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마음이 담긴 실체를 전달받는 기쁨이란 참 괜찮은 것임을. 언젠가 한 친구가 말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잘 베풀 줄 아는데 너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모님께 원했던 사랑의 형태는 다른 모양이었는데 학창시절 내내 그게 충족되지 않아 무척 힘들었었으니까. 그러나 서로의 형태가 다르다고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니 어떤 면에서는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란 것도 맞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자라 아빠의 마음을 타인에게 이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마음 표현하는 일에 소홀하고 싶지 않다. 최선을 다해 한껏 표현하고 싶다. 게으름뱅이에 미루기 대장인 나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밍기적밍기적 미루지만 이런 나에게도 절대 미루거나 게으르고 싶지 않은 영역들이 분명 존재한다. 왜 그건 그렇게 열심히 부지런 떠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것들이기 때문이라 답할 수 있겠다. 마음 전달에는 타이밍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할 때나 내가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빠에게 배웠듯 좋은 것은 최대한 크고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어 노력한 덕분에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벤트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내게 이벤트맨이 되어주는데 이 따뜻한 선순환이 삶에 얼마나 큰 선물같은지. 소중한 마음을 한껏 받은 날이면 그 에너지로 한동안은 열심히 삶을 굴려간다. 나는 이 역할이 참 좋다. 앞으로 더더욱 잘 연마하여 최강이벤트맨이 되고 싶다. 아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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