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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블리 2시간전

어학연수 VS 유학, 어떻게 달랐냐면요

어학연수가 설레는 연애라면, 유학은 ___다.

"국가는 캐나다로 정하셨어요? 보통 토론토나 밴쿠버로 많이들 가시는데요, 도시 느낌을 원하시면 토론토, 자연을 좋아하시면 밴쿠버를 추천드립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스물셋 버블리는, 유학원 상담직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저는 밴쿠버로 갈게요!”




2017년 3월, 인천 to 밴쿠버


캐나다 단기 어학연수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딱 두 가지였다.


1. 첫 해외살이 경험해 보기

2. 영어 울렁증 치유하기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 울렁증이다.)



외국인 울렁증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볼까? 대학생 버블리는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공통 관심사가 하나라도 있으면 계속해서 떠들 수 있을 정도로, 저 세상 친화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상하게 외국인 앞에만 서면 조용해졌다. 영어를 내뱉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누가 입술에 초강력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듯 입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이 순간만큼은 이 구역의 파워 내향형 인간이 된다. 외국인 울렁증 말기였다.


-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까지 다니며 영어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했지만, 정작 영어로 말을 못 한다. 이게 무슨 어불성설인가 싶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6개월 어학연수로 프리토킹은 바라지도 않지만,

외국인 울렁증 정도는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안고 밴쿠버행 비행기를 탔다.




살면서 자취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온실 속 캥거루족에게, 캐나다 반년살기는 도전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도 구해본 적 없는 집을 캐나다 밴쿠버 어딘가로 구해야 했고 (집이라 쓰고 방이라 읽는다), 내게 익숙한 하*은행, 국*은행이 아닌 생전 처음 들어보는 TD라는 은행에 가서 ‘지금 네 신분으로는 여기서 계좌를 열 수 없어!’ 하며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긴장한 상태로 길게 늘어선 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으며, 늘 타던 지하철 1호선이 아닌 바깥 풍경이 훤히 보이는 스카이트레인 엑스포라인을 타야 했다. 익숙한 거라곤 핸드폰에 미리 받아온 나의 플레이리스트뿐. 그 외에는 모든 게 낯설었고 새로웠다.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을 벗어나는 순간,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겁도 없이 컴포트존을 벗어난 대가라고도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오묘한 불편함이 스물넷의 나에게는 ‘오히려 좋아!’ 의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1. 이 나라 사람들,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니, 저걸 들고 다닌다고?


어느 날, 지나가는 한 남자의 가방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방이 해져서 다 뜯어져 가는데, 정작 당사자는 천하태평이다. 같은 날, 다 같이 내 눈에 띄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상태의 가방들이 연속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유행인 건가?’

급기야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기까지에 이르렀다.


밴쿠버 생활자로 좀 더 지내보면서,

아래와 같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내 물건이니 내가 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내 머리카락이니 내가 보기에 예쁜 색이면 되는 것이다.

내 몸에 걸치는 것이니 내가 입고 싶으면 입는 것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자유.

이를 깨닫는 순간,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내게는 영어보다도 가치 있는 배움이었다.



2. 영어는 존댓말이라는 개념이 없다. 흰 수염이 길게 늘어져있는 할아버지 선생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친구 모드.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에서 약 20여 년을 살아온 내게, 선생님 또는 교수님과 같은 호칭을 빼고 그들의 이름만 부르는 건 도무지 익숙하지가 않다.


나도 모르게 ‘teacher!’ 라고 부르니, 장난스러운 어조와 함께 돌아오는 대답은 ‘then I will call you STUDENT. (그럼 나도 너 학생이라고 부를게.)’


여기서는 다들 호칭이 아닌 본인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외국 특유의 수평적 관계를 교실 안에서 직접 경험했다.

반권위적인 내 성향에 아주 잘 맞았다.



3. 하루하루가 즐겁고 새롭다.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가 볼곳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이번주에는 여길 가고 다음 주에는 저길 가기 위한 계획으로 바쁜 날들이다.


컴포트존을 벗어난 대가로 불편함을 얻었지만, 바로 그 뒤편에는 새로운 환경이 선사하는 도파민 종합 선물세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식, 새로운 친구, 새로운 여행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새롭기만 하다.


온갖 새로움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지금, ‘어학연수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취업은 어디로 하지?’ 따위의 걱정은 할 여유도, 시간도, 그럴 마음도 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벨기에와 브라질에서 온 친구들과 당장 이번주에 참가할 어학원 방과 후 액티비티 목록이지, 몇 개월 뒤 취업준비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을 살게 되었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즐거운 시간들


키워드로 비교하는 어학연수 VS 유학


어학연수가 ‘즐거움’ 이라면, 유학은 ‘성장’ 이다. 

그리고 성장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동반한다.


어학연수가 ‘카르페디엠’ 이라면, 유학은 ‘무한도전’ 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삶을 즐거움으로만 꽉꽉 채웠던 어학연수때와는 달리, 현재의 내가 당장은 불편하게 느낄지라도 졸업 후의 나를 위해 크고 작은 도전을 계속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외면하고만 싶은 두려움이나 실패와 같은 것들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데,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위에 가장 먼저 적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달기만 한 어학연수 경험만 있었다면, <스물여덟, 유학 가기 좋은 나이> 라는 연재글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테니까.


어학연수가 ‘설레는 연애’ 라면, 유학은 ‘미지근한 장기연애’다. 나는 누구보다 밴쿠버를 진심으로 애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학생으로 지내는 기간이 1년 하고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밴쿠버의 단점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일 년의 절반 이상은 우중충한 날씨, 초저녁만 되어도 문 닫는 가게들, 쇼핑 욕구를 뚝 떨어지게 하는 디자인의 옷들… 모르고 온 것도 아닌데 괜히 트집을 잡게 된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초기의 설렘은 어디로 간 걸까?


열심히 공부한 시간들




해외 어학연수나 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오늘 글을 통해 잠시나마 간접 체험을 해보셨길 바란다.


그리고 어떤 경험을 하던, 그 과정에서

영어보다 값진 것을 얻어올 수 있기를.

Wishing you all the best!



Q. 여러분의 해외살이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어떤 키워드로 채워나가고 싶나요?

*커버이미지 출처 : Try Everything - Shak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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