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스물여덟에도 방학은 여전히 사랑이야
만약 한국에 있는 가족이 나를 보러 밴쿠버로 온다고 하면, 나는 투어가이드 역할을 자처하며 오늘의 목적지인 ‘빅토리아’ 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일정표에 꼭 넣을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 거주 3년차 버블리 선정, ‘밴쿠버 근교 여행지 Best 3’ 안에 드는 빅토리아로 함께 떠나보자!
처음으로 빅토리아를 방문했던 건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7년.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캐나다에 첫 발을 들였던 때였다. 당시에는 ‘지금이 아니면 내가 캐나다를 또 언제 오겠어’ 하는 마음에 매일같이 나가 놀았다.
180일 중 집에만 박혀있었던 날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니까. (잘하면 다섯 손가락만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
특히, 어학원 수업이 없는 주말에 캐나다 공휴일까지 더해져 Long weekend가 다가오는 날이면 그날은 밴쿠버 근교로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네00에 ‘밴쿠버 근교 여행지’ 를 검색해 보면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할 다양한 여행지 포스팅을 볼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장소를 꼽자면 시애틀, 밴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빅토리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방금 언급한 도시들이 1) 밴쿠버에서 이동거리가 그리 멀지 않고,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쿠버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어 여행 기분을 내기에 충분해서인 듯하다.
180일 중 170일은 나가 놀았던 스물넷 어학연수생이, 어느새 시간이 흘러 수업과 과제에 찌든 스물여덟 유학생이 된 상황.
두 번째 학기였던 Summer Term까지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방학’ 이라는 자유시간이 왔다.
하루하루 빼곡히 채워져 있던 투두리스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기만 하다.
자유다!
두 학기를 지나오면서 열심히 달려서였을까, 나는 익숙한 곳에 가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결심했다. 이번만큼은 계획형 여행자의 모드를 끄기로.
여유와 쉼을 충분히 즐기고 밴쿠버로 돌아오는 것.
재충전이 이번 일탈의 주된 목적이었다.
장거리 비행, 액티비티, 관광객들로 바글대는 느낌이 아닌,
밴쿠버에서 어느 정도 가깝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사전 계획 없이 가도 될 만큼 어느 정도 내게 익숙한 곳...
빅토리아가 딱이네!
이번 화에서 언급하는 모든 장소는
빅토리아 다운타운을 기준으로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합니다=)
‘캐나다의 작은 유럽’ 으로 불리는 빅토리아는 밴쿠버 아일랜드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총인구는 2024년 기준 약 95,000명으로, 같은 해 인구수 68만 명인 밴쿠버와 비교했을 때 약 7배 차이가 난다.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밴쿠버 유학생을 위한 맞춤 여행지. 원한다면 하루 만에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여행 플랫폼에서 ‘빅토리아 당일치기 투어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의 유럽풍 건물들, 항구도시의 명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언제 먹어도 신선한 각종 해산물, 노을 사냥할 맛이 제대로 나는 주황빛과 분홍빛이 섞인 솜사탕 하늘.
그리고 그 하늘 아래 각자 가진 매력을 뽐내는 버스킹 공연자들.
여기서는 눈도 혀도 귀도 모두 즐겁다.
자주 묻는 질문 1. 혼자 여행 가면 숙소는 어떻게 하나요?
20대의 나는 여행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적었다.
(베드버그가 없고 화장실이 깨끗하며, 나의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라면 이 세상 어디서든 잘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간 다녔던 여정들을 돌아보면 전체의 70% 정도는 혼자 다닌 여행이었는데, 그때마다 숙소는 대부분 호스텔로 예약했던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처음에는 여행 경비를 아끼려는 목적이었으나, 몇 번의 호스텔 경험을 통해 여기로 모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와 같은 나 홀로 여행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끼리 ‘동행’을 결성해 일정을 함께 하는 새로운 즐거움도 함께 알게 됐다.
게다가 꼭 동행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맛집이나 관광지를 주제로 수다꽃을 피우는 것도 재밌었고. 혼자라서 가능했던 새 친구 만들기가 좋았던 외향형 인간이었다고 해두자.
그렇게 빅토리아 숙소도 자연스럽게 호스텔로 정해졌다. 당시 내가 묵었던 4인실의 2박 총비용은 70불(한화 약 7만원)이었는데, 호스텔에서 판매하는 일회용 샴푸가 다 떨어졌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누로 머리를 감았던 기억이 불현듯 난다. 그것만 빼면 다 괜찮았다. 진짜다.
가성비 숙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기는 하다.
이름: Ocean Island Inn Backpackers Suites - Hostel
주소: 791 Pandora Ave, Victoria, BC, V8W 1N9
빅토리아 가성비 숙소를 찾는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1인실부터 다인실까지 다양한 옵션이 있다.
첫날, 체크인을 끝내자마자 빅토리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이너하버로 달려갔다.
여름 특유의 싱그러운 초록빛을 자랑하는 나무들. 근처 벤치 아무 곳에 자리를 잡고, 밴쿠버에서부터 챙겨 온 종이책 Me before you를 펼쳤다. 안 그래도 이국적인 곳에서 원서까지 읽고 있으니 여행 느낌이 제대로 난다. 이런 여유가 얼마만이야.
Red Fish Blue Fish
1006 Wharf St, Victoria, BC, V8W 1N8
버블리의 빅토리아 또또또간집, 피시앤칩스가 시그니처 메뉴인 Red Fish Blue Fish를 소개한다. 늘 먹던 대로 Cod 한 피스에 클램챠우더, 그리고 함께 먹으면 환상의 조합인 레몬맛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한국인에게만 알려진 맛집이 아니라서, 웨이팅은 필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길을 끊을 수 없는 마성의 맛집.
아이스크림을 줄 서서 먹는 건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인데, 캐나다에서는 심심찮게 보인다. 아이스크림에 진심인 단풍국 사람들. 뭐 이번 여행의 테마는 여유와 쉼으로 정했으니, 나 역시도 느긋하게 줄을 서서 기다려보기로 한다. ‘음, 줄 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이스크림까지 해치웠다.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를 먹고 노을사냥까지 제대로 성공한 첫째 날.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기는 아쉬운 마음에 구글을 켜고 ‘Pub near me’ 를 검색. (파워 J에게 이런 일은 굉장히 드물지만, 앞서 말했듯이 빅토리아에서의 2박 3일 동안만큼은 계획형 여행자 모드를 끄고 다녔다.)
밖에서 봐도 한적해 보이는 펍을 하나 찾아서 들어갔다. 친절한 바텐더 언니가 내 입맛에 딱 맞는 술을 만들어 주는 바람에 2일 차 첫 끼는 예쁜 브런치가 아닌 매콤한 쌀국수로 시작했지만, 첫 혼술이라는 추억이 생겼으니 오히려 좋아!
2일 차의 유일한 계획은 자전거를 타는 것. 구글맵을 보고 찾아간 친절한 렌탈샵 직원이 나를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대형 맵을 펼친다. 그렇게 그의 ‘자전거 추천코스 브리핑’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갑자기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너, 빅토리아에 도착하고 나서 지금까지 뭐 먹었어?!"
그렇게 현지인에게 해산물 맛집까지 추천받고 왔다.
밴쿠버나 빅토리아나 친절한 사람들이 참 많다.
내가 캐나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Oscar & Libby’s
795 Fort St, Victoria, BC V8W 1G9
빅토리아 다운타운에 위치한 ‘마켓스퀘어’ 안에 입점해 있는 발랄한 느낌의 소품샵이다. 톡톡 튀는 귀여운 디자인의 앞치마, 디쉬타올, 머그컵, 마스킹테이프등 밴쿠버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사용 가능한 실용적인 물건들이 많았다.
마감시간이 다가오는 탓에 여유롭게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라도 건져오고 싶은 마음에 디쉬타올을 급하게 하나 사서 나왔다. 다음에는 좀 더 이른 시간에 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 또 하나의 꿀팁, 만약 이너하버에 트럭을 끌고 과일주스를 팔고 있는 상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의 근처에 과일 착즙기가 보인다면 바로 달려가 오렌지 주스를 꼭! 사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피자와 함께 먹을 오렌지주스 한 잔을 주문했는데, 열 개가 넘는 오렌지를 내 눈앞에서 그대로 착즙 하여 컵에 담아줬다. 한 모금 하자마자 오렌지의 싱그러운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정말 달고 맛있었다. 사진 속 마르게리따와 환상의 궁합. 남은 피자 두 조각은 숙소로 들고 와서 다음 날 아침으로 먹었다.
빅토리아는 밴쿠버가 속해 있는 BC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위 사진은 빅토리아의 랜드마크인 BC주 의사당 (British Columbia Parliament Buildings).
낮에 봐도 예쁘지만 밤에 보면 놀라울 정도로 예쁘다. 자전거를 타다가 멈춰서 사진을 찍었던 그곳 맞다. 잔디밭이 굉장히 넓어서, 낮에 가서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돗자리를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자주 묻는 질문 2. 나 홀로 여행, 외롭지 않나요?
외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편하다는 장점이 훨씬 크다. 일정을 짜는 것도,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도, 일방적으로 계획을 틀어버리는 것까지도 전부 내 마음대로 가능하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혼자 있기 때문에 혼자 생각할 시간이 넘쳐난다는 것. 집, 학교, 회사와 같이 익숙한 곳이나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잘 떠오르지 않던 생각들이 나 홀로 새로운 장소에 있으면 쉽게 떠오를 때가 있다.
바쁜 일상에 치여 나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는 소중한 시간. 그럴 때면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내 떠오르는 것들을 손으로 직접 적기도 하고, 또는 핸드폰 앱을 켜서 글감으로 저장해두기도 한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잠깐만, 나 이것 좀 적을게.’ 와 같은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다. 나와의 여행에서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 핸드폰, 에어팟, 읽을 책, 일기장, 그리고 삼각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10년 차 프로혼행러의 답변.
3년 전 나는, 여행에세이 한 편과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빅토리아 여행기를 글로 쓰고 있다.
‘여행과 글쓰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 으로 프로필 소개를 바꿔볼까?
2박 3일 여행으로 재충전 완료!
이제 다시 밴쿠버 유학생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