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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블리 Nov 11. 2024

스물여덟 유학생의 1학년 회고 (희망편)

영어영문학과에서 Tourism Management로

놀랍게도, 제주 두 달 살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캐나다 정부의 ‘유학생 입국 규제 완화’ 소식이 발표되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제주 성산에서 한 업체의 마케팅 스탭으로 지냈던 나는 그 길로 제주살이를 마무리 짓고 육지로 돌아왔고, 차근차근 캐나다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해당 연재글을 첫 화부터 읽어주신 독자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내가 인생에서 두 번째로 선택한 전공은 Tourism Management, 관광경영학이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전공은? 한국에서 4년간 공부했던 영어영문학이다.


지금의 나와는 달리, 열아홉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 몰라도 한참 몰랐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나' 가 무엇을 좋아하고, 대학에 가서는 무엇을 배우고 싶으며, 혹은 내가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에 대해 물음표 투성이었기 때문에, 대학 전공을 고를 때 그렇게 애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당시 나는 아래와 같은 사고를 거쳐 진학할 학과를 도출해 냈다.


초중고를 통틀어 꾸준히 성적이 좋았던 과목이 뭐였지? 국어 또는 영어

학교 밖에서의 내가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독서


위 항목들을 조합했을 때 나오는 옵션 두 가지.


옵션 a. 국어국문학과

옵션 b. 영어영문학과


음, 나중에 취업길을 생각하면 뭔가 국어보다는 영어 쪽으로 가는 게 진로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아.

오케이 영어영문학과로 결정.

단순해 보이지만 내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민했다.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하냐는 질문에는 지금도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그럼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고민하게 된다. 나는 이상하게 공부에 있어서는 실리적인 면이 있어서 ‘과연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예를 들면, 영어라는 언어의 역사라던지 (이건 그나마 낫다.), 영어의 특정 소리를 발음할 때 내 혀의 바람직한 위치라던지 (내가 원하는 건 프리토킹 능력이지 이런 게 아닌데), 혹은 쉽게 읽히지 않는 중세 영어로 쓰인 시의 해석과 같은 것들을 배우는 날이면 (더군다나 나는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안의 실리주의자가 시끄럽게 떠들고는 했었다.

> 영문학도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그 피드백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럼에도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한 데에 후회가 없는 것은, 1) 영어 학과라는 특성상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와 같은 해외 경험을 가진 선배들의 이야기가 꾸준히 들려왔고, 2) 영어강사로써 커리어 시작을 하는데에 이 전공이 주요 디딤돌 역할이 되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이란 건 없다니까.



그럼 캐나다에서의 Tourism Management (관광경영학) 은 어땠을까? 만족하냐는 질문에 Yes, 재미있었냐는 질문에는 Definitely yes 이다.

 



보통 공부라 하면 지겨운 것, 하기 싫은 것, 미루고 싶은 것이라 ‘아, 얼른 공부하고 싶어!’ 이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들린다.


그러나 개강 전 내가 수강하게 될 과목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든 마음은 수업을 ‘얼른 듣고 싶었다’는 것이다.

처음은 아니었던 이 마음은 이전에 한국에서 1)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을 준비했을 때, 2) 여행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기 전에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공부를 앞두고 느껴지는 설렘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래서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해.

한국 사회의 룰 브레이커를 자처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는 순간.



나를 설레게 했던 바로 그 리스트


Tourism Management (관광경영학) 은 2년제 디플로마 프로그램이었다. 첫 1년은 수업 위주로 진행되었고, 2학년부터는 취업 서포트와 코업이라 불리는 실습 과정이 추가되는 커리큘럼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글은 스물여덟 유학생의 희망 편이니, 머리가 아파오는 취업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스물여덟 유학생의 One thing,
첫 1년 목표는?


나의 원씽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캠퍼스 라이프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기였다.


원씽 달성을 위해 정한 세부 계획은 아래와 같았다.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계획 수립은 J로 태어난 자의 숙명과도 같다.)


1. 모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교수님, 동기들과 좋은 관계 쌓기 > 캐나다에서는 인맥도 능력이랬다.


2. 학점은 A 이상으로 유지하기 > 최상의 결과를 위해 과제 및 시험 준비는 정해진 기한보다 3일 앞당긴 날짜에 맞춰서 준비했다. 브런치 연재도 이렇게만 하면 참 좋을 텐데. 글을 쓰는 지금 마감 하루 전.


3. 학교 클럽활동 최소 한 가지 이상 도전해 보기> 캐나다 대학교의 동아리 활동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


이렇게 보니 학점과 캠퍼스 라이프 모두 다 챙기고 싶었던 욕심쟁이가 따로 없네.



개강을 앞두고, 수업에 대한 기대도 기대지만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들었다. 나랑 마음 맞는 친구가 우리 과에 한 명은 있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첫 수업 접속. (코로나 시국이라 두 번째 학기까지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됐다.)


감사하게도, 개강 첫 주만에 마음 맞는 친구를 두 명이나 만나게 되었다. 한 명은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온 Wina, 다른 한 명은 남편과 어린아이와 함께 터키에서 캐나다로 건너온 Sermin.


알고 지낸 지 3년이 넘어가는데도 나는 아직도 설민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분명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내 뇌가 자연스럽게 흘려버린 것 같다.

인간관계에 있어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 곳은 캐나다


그렇게 우리 셋은 모두가 알아주는 소위 ‘단짝’ 이 되었고, 매 학기가 끝나면 꼭 날을 잡고 만나 한 학기 동안 수고한 우리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캐나다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Q. 언어장벽이 존재할 텐데 외국인 친구들과도 찐 우정이 가능할까요? 경험자로써 자신 있게 말하는데, 너무나도 가능합니다. 오히려 어쩔 때는 한국 친구들보다도 편하게 느껴졌다. 고국을 떠나 타국살이를 한다는 데서 오는 공감대 형성 덕분일까?

(+) 우리 셋의 MBTI는 모두 E로 시작하고 J로 끝난다는 공통점도 있다.





학점과 캠퍼스 라이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길 바랐던 욕심쟁이의 원씽 달성 여부는 어떻게 됐냐고 묻는다면, 놀랍게도 첫 일 년간 모두 해냈다.


한국에서도 받아 본 적 없는 우수한 성적을 꾸준히 받았고, 한국에서는 해본 적 없는 교내 마케팅 클럽의 멤버가 되었으며, 한국에서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만큼이나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외국인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퀘스트 깨듯 달성해 낸 1학년,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그 해 연말에 내가 성취한 것들을 회고하며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한번 더 실감했다.

꼭 종이에 손으로 적는 것을 추천한다!



부록: 스물여덟 1학년 유학생의 성취 리스트.jpg
지금 봐도 놀라운 첫 학기 성적


인생 첫 동아리 활동


마침 글을 올리는 오늘, 너희들이랑 점심 약속이 잡혔네?




오늘 내 이야기가 유학을 꿈꾸는 누군가의 마음에 한 순간의 동기부여라도 줄 수 있었다면, 글쓰기에 투자한 나의 6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참고로, 이번 글은 스물여덟 유학생의 희망 편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여러분들께 들려줄 스물아홉 유학생의 2학년 스토리(절망편) 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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