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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블리 Nov 04. 2024

코로나19로 닫혀버린 캐나다 국경

오히려 좋아, 제주도 두 달 살기 시작!

인생의 위기를 기회로 만든 순간이 있다면?


이번 4화에서는, 파워 계획형(J) 유학준비생이 본인에게 닥친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버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예솔님, **유학원 000 팀장입니다. 바로 어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겠다는 캐나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9월 학기 입학을 그대로 진행하시게 되면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들으셔야 하는 점 미리 안내드립니다!”


나의 감정 변화는 아래와 같았다.

1단계: 현실 부정 > 뭐? 온라인 수업? 외국 대학 캠퍼스 로망에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 한국<->캐나다 시차 17시간은 어쩌고?


2단계: 분노> 아니, 한 달 동안 죽어라 공부해서 아이엘츠 성적 만들어놨더니 이제는 정체불명의 전염병 따위가 내 유학길을 막는다고? 진짜 미친 거 아닌가?


3단계: 현실 수용>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 듣는 건 아닌 것 같아요ㅠㅠ 학교 입학을 내년 1월로 미룰 수 있을까요? 추가 비용 발생하나요?”


그렇게 나는 눈물을 머금고 9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입학을 다음 해 1월로 미뤘다. 이렇게 학기 시작일을 미룬다 하더라도 캐나다 국경이 언제 다시 열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순 없었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듣는 온라인 수업만큼은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감정선의 변화는 아래와 같이 계속되었다.


4단계: 정신승리> 일이 이렇게 되어가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좋게 생각하자. 어떤 상황이든 내게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하게 되어있는 걸 알잖아. (돌이켜보면, 바로 이 4단계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 중요했고 지금도 여전히 나에겐 그렇다.)


5단계: 긍정회로를 곁들인 이성적 사고> 1월에는 나간다고 치면, 12월은 출국 준비로 잡아야겠고.

그래도 4개월이 뜨네. 그동안 뭐 하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주도로 가자.

가서 질릴 때까지 있어보자.


본능적으로, 지금이 바로 그동안 내 버킷리스트에 꾸준히 자리 잡고 있던 ‘제주살이’ 를 시작할 적기라는 직감이 들었다. 불현듯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상황이 [20대가 가기 전에 제주살이까지 해보고 캐나다로 넘어가 봐라~] 라는 신의 계시 비슷하게 느껴졌다. 비록 난 무교지만.


그렇게 나는 캐나다 밴쿠버 대신, 제주도 애월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한 달치 짐을 싸들고 떠나게 되었다.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시작한 제주 한 달 살이





제주도 서쪽에서의 루틴은 심플했다. 아침 7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 졸린 눈을 비비며 1층 화장실로 내려가 양치와 고양이 세수를 하고, 게스트들을 위한 조식 준비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조식 배치에 가깝다. 냉장고에서 샐러드와 계란 한 판, 식빵을 꺼내고 그 옆에는 프라이팬과 식용유, 몇 가지 조리도구들을 가지런히 올려둔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이것저것 테이블에 올려놓는 사이, 잠에서 막 깬 사람들이 하나 둘 공용공간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술안주와 함께 왁자지껄 떠들던 지난밤과는 다르게, 지금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 조용하기만 하다.


조식시간은 오전 8시부터 10시. 스탭으로 일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아침을 챙겨 먹는 게 습관이 됐다. 아빠가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하실 텐데. 9시쯤 되면, 은색 집게와 검은색 비닐봉지를 챙겨서 마당으로 나간다. 매일매일 주워도 매일매일 생기는 담배꽁초를 줍기 위함이다. 그렇게 담배꽁초 사냥꾼 모드로 마당을 한 바퀴 돌면, 오전 일과는 끝이 난다. (이것도 좋아하실진 모르겠네.)


내가 근무했던 게스트하우스는 청소 스탭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청소나 빨래는 내 일이 아니었다. 몸 쓰는 일을 기피하는 나라서, 청소와 빨래는 할 필요가 없다는 공고 내용을 보자마자 빛의 속도로 지원했었다.


그럼 무슨 일을 했냐고? 다시 루틴으로 돌아가보자.


마당청소가 끝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개인 휴식 시간으로, 이땐 주로 낮잠을 자거나 제주도 맛집 탐방 또는 일기장과 읽을 책을 챙겨 들고 카페 투어를 다녔다.


5시부터는 체크인이 시작되기 때문에, 숙소를 꼭 지켜야 했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제일 좋아했던 외향형 인간의 주 업무는 여행객들의 체크인 진행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저녁 파티 참석이었다. 별생각 없이 가 본 제주도에 가서 천직을 찾을 줄이야.


저녁 파티는 열한 시쯤 마무리되어야 했고, 자정이 되면 전체 소등을 했다. 때때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면 다 같이 숙소 근처 술집으로 가서 2차 파티를 즐기기도 했고.



그렇게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단기 여행자로 제주도를 방문한 그들은, 내가 이곳에서 일을 하며 지내는 스탭이라는 걸 알게 되면 99% 하나같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1%의 반응은 글 말미에 적겠다.)


“제주살이 너무 부러워요, 어때요 좋아요?”

내 대답은? “ 진짜 좋아요!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제주도의 푸른 바다


3박 4일, 4박 5일이 아닌, 30박 31일 은 늘어난 숫자만큼이나 내 마음에 여유를 주었다. 시간에 쫓기며 서둘러하는 도장 깨기식 여행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돼.

-이번주는 날씨가 별로네, 다음 주에 가보지 뭐.



이처럼 한 달 살기 특유의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숙소에서 5분만 걸어가면 초록색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으며, 무엇보다 이 섬에서만큼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 살갗으로 그대로 느껴졌다. 어쩌다 제주 특유의 아름다운 일몰을 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행복감이 밀려왔다.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제주도 장기 체류자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고, 그와 동시에 캐나다 출국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희미해져 감을 느꼈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빌어봤자 이민부 장관이 “캐나다 오늘부터 외국인 입국 허용!” 라고 발표할 리 없잖아?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말고, 남은 기간 동안 지금처럼 즐겁게 지내면서 기다려보자.‘


현재의 삶에 진정으로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심각한 상황도 문제가 되지 못한다는 걸

제주살이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1% 의 반응


“여기서 일하면 월급은 받아요?”

“음 월급은 아니고 용돈정도요. 거의 숙식만 제공이라고 보면 돼요ㅎㅎㅎ”

“그럼 왜 여기서 일하는거에요..? 회사 다니면서 고정적인 월급 받으면서 제주도는 휴가로 오는 게 더 좋지 않아요? 진짜 이해가 안 가서요“




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

생글생글 웃으며 맑은 눈의 광인이 되기로 결심.


“저는 이게 더 좋아요!”


그리고 정말로 이게 더 좋았던 스물일곱의 나는, 제주도 서쪽에서 8월 한 달을 꽉 채우고 육지로 돌아와 아래 지원서를 제출했다.



동쪽살기도 재밌겠다!




그때의 젊음과 패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제주살이 스토리를 적어놓고 보니, 정말 나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몇 개의 룰을 깼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 룰 브레이커가 따로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떤 이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제주도에서의 두 달간의 경험으로 나는 한층 더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합 60박의 제주살이를 끝내고 육지로 돌아가는 날, 이전 캐나다 어학연수를 끝내고 돌아올 때 느꼈던 충만함이 그대로 들었다. 이러한 감정의 원천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앞으로의 생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졌던 것은 확실하다.  


그 찰나의 희망을 이유로 나는 지금까지도 삶의 중간중간에 ‘의도적 쉼표’ 를 설치하고 있다.


2020.9.5 제주도 달리책방에서



여러분의 삶에도 ‘의도적 쉼표’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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