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두 달 살기
누군가 내게 인생 여행지를 물어보면, 내 대답은 오랫동안 정해져 있었다. 뉴욕ㅡ프라하ㅡ퀘벡. 이 트리오를 이길 만한 곳은 아무리 다녀도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2024년 1월, 나는 파리의 한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두 달 살기를 시작했다. 과연 파리는 나의 새로운 인생 여행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갔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때 다녀온 포르투가 퀘벡을 밀어내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럼 나는, '가장 감명 깊었던 여행'에 왜 파리를 적었을까?
Self Q&A : 나 사용 설명서 18화는, 내게 가장 의미 있었던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2024.1.3
결국 밤을 새우고 출국했다. 두 달치 짐을 하루 만에 싸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다시 설레기 시작했고, 비행기 안에서도 설렘은 계속됐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여행에 뛰는 심장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게 어딘가 안심이 됐다.
2024.1.4
첫 외출! 파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껴보고 싶어서 에어팟도 빼고 걸었다. 어떨 때는 뉴욕, 어떨 때는 샌프란, 어떨 때는 체코, 동네 마트에서는 밴쿠버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전부 혼자 했던 여행이었네.
생각해 보면 겁도 없이 파리살기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혼자 여행 이력서가 빼곡히 채워진 덕이 아닌가 싶다.
2024.1.5
많은 생각이 드는 인수인계 첫날. 역시 몸 쓰는 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 밴쿠버에서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날, 침대커버 하나도 제대로 못 끼워 남자친구에게 SOS를 쳤던 나다. 심지어 여기 있는 건 전부 이층침대다. 이번 스탭 일, 쉽지 않을 것 같다.
잘 지내다 갈 수 있을까?
2024.1.8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조용히 닳아가던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랑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파리에서 자유로운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
2024.1.9
오늘은 혼자서 재즈클럽에 다녀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를 보는데,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밖으로만 나오면 꼭 한 번씩 깨닫는 점이다.
2024.1.17
벨기에 가는 날. 룸메와 한껏 신나서 출발하는 그림을 기대했지만, 전날의 숙취로 정 반대였다. 이 여행을 수락한 내가 원망스러울 만큼 몸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설을 뚫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이게 맞는 거냐며 깔깔대던 우리, 눈길 위로 간신히 캐리어를 끌고 고생 끝에 도착한 숙소에서 그래도 뷰 하나는 인정이라며 신난 우리, 이게 여행인지 고행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숨 넘어갈 듯 웃는 우리의 모습이 좋았다. 빗 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러 온 듯하다.
2024.1.28
이상하게 파리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밴쿠버에 더 가고 싶어 진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은 너무 좋지만, 여기는 어딜 가도 불어가 적혀있고 불어가 들려서 나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다.
영어가 편한 거였다니...
캐나다 취업비자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2024.1.31
무급으로 하는 일에서 내가 너무 의미를 찾고 있는 건가? 분명한 건 여긴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 빛날 수는 있었지만 내 마음이 힘들었던 한국, 마음은 편하지만 빛날 수도 없던 파리. 이 모든 시간을 지나 캐나다로 가서 나에게 딱 맞는 완벽한 포지션을 찾게 될 거라 믿는다.
2024.2.17
파리에서 살면서 느낀 것들로 인해 밴쿠버에서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오게 된 이유를 도착 46일 차에 깨달았다.
2024.3.11
캐나다 취업비자를 받아놓고 갑자기 프랑스로 방향을 틀어버린 데에는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완벽하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음 챕터를 열 준비가 됐다.
이처럼 파리는 내게 여행지 그 이상이었다. 캐나다 유학생에서 캐나다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기 직전, 내 마음에 남아있던 마지막 의심과 미련을 지워준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의문도 없이 밴쿠버로 돌아갈 준비가 된 상태. 이게 파리 두 달 살기의 역할이었다.
오늘의 질문
Q1. 나의 인생 여행지는? 그 이유는?
Q2.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다면,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어디인가요?
Q3. 내가 한 모든 여행 중,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면?
P.S: 그래서 나는, 캐나다에 도착하고 나에게 딱 맞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올해 초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으로 대답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