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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때로, 존재의 가장 진실한 목소리다.

by 권사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같이 산다는 말이 늘 함께 있다는 뜻은 아니며, 매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로 서로의 내면에 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함이 분명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내는 것을 미덕이라 배워왔지만, 그 ‘분명함’이라는 윤리는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의 간절한 갈구와 진심을 외면하는 블라인드 역할체로 작동하기도 한다.

삶이 바쁘고, 피곤하고, 감정은 후순위로 밀리고,
육체는 점점 더 말라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건넨 수많은 신호들 — 눈빛, 스침, 요청, 고백 — 그것들이 아무리 간절했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부터 말하지 않게 되는 침묵의 씨앗이 심어진다.

누구나 욕망한다.
그 욕망은 단지 성적 충동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여전히 원해도 되는 존재라는 느낌, 서로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상태에서만 피어나는 감정, 다시 말해, 살아 있다는 느낌 자체다.

그러나 반복되는 무반응 속에서 그 욕망은 점차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입을 다물고, 감정을 접고, 욕망을 덮고, ‘이제는 말해도 소용없다’는 결론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욕망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포기하게 된다.

그 포기는 눈에 띄지 않는다. 싸움도 없고, 결별도 없고, 눈물도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작별이 일어났다. 이별이란 늘 물리적 거리로만 오는 게 아니다. 때로는 서로 곁에 앉아 있으면서도 더 이상 닿고자 하지 않을 때, 그 관계는 이미 다른 차원의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종 그가 상대방의 진심을 듣지 않게 만드는 장막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불만이냐’는 생각이 정작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를 가장 먼저 묵살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침묵은 점점 축적되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단 한 줌도 공유하지 않는, 건조한 동거만이 남아 있게 된다.

욕망은 때로, 존재의 가장 진실한 목소리다. 욕망을 말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존재는 점점 지워지며, 관계는 점점 투명해진다. 말하지 않게 된다는 건, 이제는 이해받고 싶다는 기대조차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사랑은 느리게 사라진다.

이 문제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다. 누가 더 피곤했고, 누가 더 외면했고,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문제도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침묵 속에서 살아있는 채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욕망이 결국, 지켜지지 못한 사랑의 잔해를 끌어안은 채 홀로 고요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물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욕망을 듣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욕망은, 아직 살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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