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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Apr 29. 2024

내 마음속의 소란에게

사라지는 것까지 바라진 않아

 두 도시의 계에 걸쳐진 지하철 구간에는 현재 추가 역 신설 공사 중이다. 정차  없이 3km가 넘는 주행 구간에서 전동차들은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며 앞뒤 차와의 간격을 맞춘다.

 내가 탄 전동차가 속도를 한껏 높인다. 레일과 터널의 궤도를 빠르게 스치는 람소리가 세지고 경을 자극하는 소음도 점점 커진다.


 주머니 안에서 상상 속의 걱정 인형을  쥔다. 비행기가 흔들릴 때 승무원들 무심한 표정을 보면 안심이 되는 것처럼 열차 안의 승객들며시 다. 다들 무심하게 폰을 보고 있다.

 이 정도의 진동과 소음은 늘 있는 일인가 보다 싶어 마음이 놓인다.

 철을 타고 가다 무슨 일이 생기면 깊은 땅속에서 도망칠 일 더 캄캄다. 구름 위의 비행기도 물 위의 배도 그래서 불안하긴 마찬가지. 우리는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를 목도했는데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사고가 난다고 치자.

 매일 이 시간에 이 칸을 타고 다니던 어떤 이는 오늘따라 다음 열차를 타느라 불행을 피했고 몇 년 만에 하필 이 지하철을 탄 누군가 불운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멀쩡히 외출을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무고하게 잘 다녀올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양의 가능성은 반반이다.  


 그래서 살고 죽는 것은  그저 운명인가 보다.

점점 복잡해지는 지하철 노선도




 작년 초에 열서너 시간장거리 비행기를 처음 탔. 까마득한 하늘에서 낮과 밤을 보내는 동안 몇 번이나 난기류 때문에 무서웠다.

 비행기가 좌우로 흔들리는 정도를 넘어, 자동차가 속방지턱을 넘듯이 래로 러섰다 올라오는 통에 객들이 동시에 짤막한 비명을 지른 적도 었다.

 정수리와 치가 동시에 오싹하는 순간이 또 언제 올지 몰라서 조마조마했다.

 십 평생 첫 유럽 여행인데 런던에도 못 가 보고 죽는 건 아니겠지?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사망보험금이 나오겠지. 생명보험에서도 나오고 항공사에서도 줄 테니 합치면 될 거야. 그래. 어차피 한번 죽을 거, 내 마음을 거금으로 남기고 가는 것도 아주 나쁘진 않아.

 

 당시의 상황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인정했더니 한결 편해졌다. 엄마한테 등짝을 두어 대 맞을 법한 방정맞은 생각이 공포감누그러뜨렸다.

 

 

 최근 며칠 동안 정신병동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에 몰입해서 완결까지 다 보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왔다.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 세상 착하고 성실한 사람, 심지어 밝고 다정한, 정신병동 간호사인 주인공까지 마음의 병을 피할 수 없었다. 

 드라마는 강박, 조울, 망상, 불안 등 현대인의 심리와 맞닿아 있는 흔한 증세들을 현실적으로 다뤘다. 

 등장인물들은 손 쓸 수 없이 위기에 처해버린 마음 때문에 어려워졌을 뿐 평소의 우리와 똑같았다. 버스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고 마트 계산대 앞에 얌전히 줄을 서고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잡아주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오늘 내가 느낀 불안 증세들-지하철 소음에 빨리 뛰는 심장 박동, 집에 혼자 있는 노견이 뭘 집어먹 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공공장소에서 남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짜증 등-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보다 조금 더 짙어진다면 나도 똑같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진다.

 그들과 나는 한 뼘 차이인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은 소란하다.

 우리 마음은 항상 파도가 치는 바다와 같다. 바다를 뒤엎을 듯 성난 해일이 지나가면 언제 미치도록 바람이 불었냐는 듯 잔한 파도가 찰랑거린다. 바다처럼 사람의 마음은 내내 살아 움직인다. 

 나는 불쑥불쑥 일어나는 마음속 소란에게, 사라지는 것까지 바라진 않을 테니 거기 그대로 잘 있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사람의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픈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불안한 것은 당연하니까. 




 

 나는 별 일없이 지하철에서 내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얼굴이 후끈하도록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왔다.


 노견이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자다가 부스스 일어나 몸을 털더니 꼬리를 친다. 나를 반긴다기보다 먹을것을 원하는 거빈 집에서 잘 기다려준 것을 칭찬하며 간식을 줬다.

 

 진실로, 이런 별일 없는 일상이 로또 당첨보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지천명의 나이가 확실합니다.

그건 니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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