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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Jun 28. 2024

새롭고 낯선 길몽을 꾼 날

당신은 무엇을 기대했나요?

 평범한 목요일이 시작되는 아침이었다. 아무 약속도 없고 초저녁쯤에 1시간 반 정도 운동하러 다녀오면 되다.


 항상 먼저 일어나는 남편의 기척에 눈을 떴다. 꿈이 막 완결된 순간 잠이 깼는데 난생처음 꾸는 내용이었다. 길몽이다. 꿈은 잠이 깬 직후, 꿈이었구나 인식한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다.

 나는 자잘하게 꿈을 많이 꾼다. 대개는 너무 일상적인 스토리라서 꿈인지 기억인지 헷갈릴 만큼  현실적이다. 가끔자기 직전까지 본 그것이알고싶다의 범죄현장이 나오거나 전혀 예상치 못 한(심지어 별로 안 좋아하는) 인물이 나올 때도 있고, 드물게는 네이버 지식인에서 길몽이나 흉몽으로 명확히 분류되는 꿈도 꾼다.

 나의 좋은 과 나쁜 꿈은 흔한 길흉의 클리셰처럼 커다란 금덩어리를 끌어안거나 이가 빠지는 내용 같은 거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꿈은 제재도 주제도 평생 처음인 새로운 스타일의 길몽이었다.




 좋은 꿈이라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용이 특이하다 보니 확신을 위해 검색을 했다. 똑같지는 않지만 이것과 같은 소재와 행위를 한 꿈은 한결같이 '오래 고민하던 바가 해결된다', '막힌 곳이 트일이 술술 풀린다' 등의 아름다운 해석이 달려있었다.


 근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 평생 처음 보는 내의 길몽을 꿨다면 어떻게 할까?


 '그냥 있어' 하고 남편이 답했다. 내가 듣고 싶은 답은 아니었다. 로또를 살까?

 나는 2019년이 되는 1월 1일 새벽에 길몽을 꿨었는데 '완벽한 똥 모양으로 생기고 초콜릿처럼 부드러운 순금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며 감격'하는 꿈이었다. 그때도 좋은 일을 기대했지만  로또 사지 않았었다.

 그 꿈은 별다른 피드백 없이 지나갔다.


 외출준비를 하는 작은딸에게도 물었다.


 -스피또 복권을 사.

 -스피또? 로또가 아니고?


 딸에 의하면 로또는 당첨 여부를 주말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스피또 복권은 사자마자 결과를 알게 되므로 '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를 바로 깨닫고 홀가분해진단다.

 자기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인가 보다.

 맞다, 하루종일 꿈의 마력에 부풀다가 꺼지는 대신, 빨리 ''을 확인하고 성실하게 자대복귀 해야겠다.


 


 

 아무 약속이 없던 날답게 오후가 늦도록 노견은 잠을 자고 나는 파자마를 입은 채 OTT에서 드라마를 연속적으로 보았다.

 마침 드라마에서 700억이 왔다 갔다 하는 딴 세상 내용을 꽤나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었다. 70억도 아니고 700억이라니 요즘드라마 작가나 시청자들이나 배포가 장난 아니구나 하며 보았다.

 설마 이 드라마를 보려고 그런 꿈을 꾼 건 아니겠지.


 외출한 딸이 오면 같이 집 근처 복권방에 가려고(스피또를 사 본 적이 없는데 복권방 사장님에게 물어보는 것도 부끄럽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촌 시누이에게서 반가운 톡이 왔다. 작은애의 취업을 축하한다며 내친김에 큰까지 우리 자매에게 14K 목걸이를 하나씩 선물했다.

 내 것은 아니지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긴 했다.

 잠시 후에는 7월 1일부터 신입사원 교육 예정인 작은딸이 법인 배치를 잘 받았다는 가족 톡이 울렸다. 법인 배치는 신입교육 후에 받는 것으로 알고 있던 터라 기왕이면 어디 가고 싶다고 얘기를 나눴는데 딱 그 법인에 발령이 났다.

 이것도 무척 좋은 소식이긴 한데 내 소식이 아니잖아! 나의 그 엄청나고 신박한 길몽의 끝이 이럴 리가 없다.


  나는 스피또의 기적 은근히 기대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복권방 앞에서 딸을 만났다. 내가 오늘 진짜 당첨이 되면 어쩌지. 근데 스피또는 1등이 얼마인 건가?


두근두근 복권방

 

 복권방 안에는 손님 두 명이 신중하게 번호를 고르고 있었다. 나처럼 길몽을 꾸고 온 것인지, 한 주의 루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복권방도 근방에서는 당첨자가 제법 나오는 준명당이다. 

 동전지갑 안에 3천 원이 있길래 딱 천 원짜리 세 장을 샀다. 스피또는 즉석복권이라 은박지를 긁어서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첫 장의 행운번호가 7이었다. 아, 하필 행운번호가 7이라니 진짜 되는 거 아냐?




 

 장을 깔끔하게 긁는 30초도 다. 결과는 하나도 되지 않았다.

 그래,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지. 환갑도 안된 '애들'이 꾸는 꿈은 다 개꿈이라고 말이다.


 그냥 그런 하루가 흘러 밤이 되었다. 회식이 예상보다 일찍 파한 남편은 추가로(?) 마실 술을 사서 귀가했고 큰딸은 모처럼 야근하고 밤 열 시 회사셔틀을 타고 저희 집에 간다고 안부를 남겼다. 노견은 일찍 내실에 드셔서 나지막이 코를 곤다.

 이렇게 별 일 아닌 하루가 길몽의 효능인지도?.


 손에 쥔 것의 가치를 자주 망각하는 인간들에게, 이렇게 별일 없는 하루하루가 최고의 행운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려고 길몽이 찾아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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