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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13. 2024

무와 고구마를 나누는 사이

M 언니와 나

 M 언니는 나보다 한 살 많다. 언니는 아들이 둘이고 나는 딸이 둘이다. 언니네 남편은 공무원이고 우리 남편은 회사원이다.

 언니네 큰아들과 우리 작은딸은 초중고 겹동창인데 걔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소와 닭이 서로를 대하듯 단지 '동창이었다'는 사실로 남 사이다.  

 애들 초등학교 앞 아파트에서 십오 년 간 이웃으로 살다가 내가 이사를 나왔고 언니는 아직도 거기 산다. 나는 백수 아니 풀타임 주부고 언니는 장에 다닌다.


 언니가 주말에 시부모님 집에 갔다가 농산물을 가져왔다며 나눠준다고 했다. 나는 신나 달려갔다.

 언니네 시아버님의 텃밭에서 갓 뽑은 무 여러 개, 고구마 한 봉지, 파 두 단 정도 그리고 홍갓 한 묶음을 얻었다. 무와 홍갓은 올겨울 김장할 때 넣으라고 준 건데 우리 집 김장은 12월 첫 주라서 무는 괜찮지만 홍갓을 그때까지 둬도 되는지 모르겠다.

 홍갓의 안전한 처치를 위한 크로스 체크로 양쪽 어머니 두 분께 전화를 했다. 두 분 다 '신문지에 싸서 김치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라는 해답을 주셨다. 답이 일치하니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추가로, 홍갓은 맛이 쓰니까 김장에는 군내 나지 말라고 조금만 넣고 따로 청갓을 사서 담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받은 홍갓의 일부는 당파(쪽파)를 넣고 겉절이를 해서 바로 먹고 나머지는 김장 양념을 할 때 넣으라고 하셨다.

 마침 저녁에 카레라이스를 하려는 참인데 반찬으로 홍갓겉절이를 곁들이면 되겠다.

 에 신문지가 없어서 키친타월로 남은 홍갓을 싸서 김치냉장고에 두었다.



  

 적당한 크기의 고구마 네 개 골라 잘 씻어서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우리 집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구울 때는 190도에서 30분간 굽는 게 가장 맛있다는 데이터가 있다. 너무 가늘지도 너무 굵지도 않은, 내 손에 가볍게 쥐어지는 굵기의 고구마 준이다.

 이번 고구마는 무뚝뚝한 밤고구마라서 달착지근하고 폭신한 호박고구마보다는 맛이 덜 하지만 구워 먹어도 되고 납작하게 썰고 부침가루 반죽을 입혀 덴뿌라(이렇게 불러야 찰짐)를 해도 좋은 가을 간식이다.

 집에 고구마가 없었는데 잘 됐다.

고구마 굽기

  

 M 언니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그것을 실행한다는 장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남들의 의견 듣기를 원해서 상대가 열심히 알아보고 내 일처럼 도움을 줘도 결국은 항상 처음에 자기가 하려던 대로 한다. 그러면서 항상 어떻게 할까 묻는다.  

 그런데 언니는 주변의 생각을 청한 문제에 있어서 경험 있는 누군가가 중지를 나눠주면 그것을 잘 따른다. 그렇게 하기가 (이 나이가 되면 더) 쉽지 않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커피나 밥을 잘 사준다. 만나면 으레 '내가 살게'라 하는 게 M 언니의 특징이라는 건 언니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인정일 것이다. 가급적이면 내 돈을 안 쓰려는 표정과 제스처가 읽히는 사람보다는 예쁘고 고맙지만 나는 '뭘 맨날 언니가 사, 각자 먹은 거 냅시다'라고 나서서 정리를 한다. 

 




 M 언니와 나는 가끔 둘이 만나기도 하지만 애들 초등학교 때부터 이웃에 살던 몇 명이 함께 만난다.

 언니는 직장 동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하고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언니 이야기를 한다.

 언니가 내 친구들과 우연히 만났을 때 내 친구가 만약 '아, 얘기 많이 들었어요'라고 하면 그건 진실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세 단계만 거치면 다 아는 사이가 된다는 건가.


 언니는 작년에 다 함께 다녀온 하루 강릉 나들이가 무척 좋았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언니는 그때 강릉이 처음이었다는데 나중에 남편과 다시 강릉에 가서 우리가 갔던 그 해변에 들렀다고 했다. 역시나 내가 추천한 곳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와줬다. 

 언니는 그때 마신 강릉 수제맥주를 좋아하는데 언니의 아들은 가끔 강릉 수제맥주를 사들고 집에 온다.

(강릉이 아닌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 팔 때도 있다. 비싸서 그렇지)


 가끔 두 아들이 데면데면하게 대한다고 섭섭해하면 나는 일부러 흘려듣는다. 엄마가 좋아한다고 강릉 수제 맥주를 슬쩍 사 오는 아들인데 뭘 그러냐고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켜봐 온 그 집 형제는 군대를 다녀와 대학에 복학한 지금까지 적당히 반듯하고 적당히 독립적으로 자라고 있다.

 앞으로 언니네 아들들이 졸업하고 취업하는 소식을 듣고, 누구 집이 됐든 애들이 결혼한다는 청첩장도 나누고, 그래서 혼주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사진도 찍고, 그러다가 남편들이 퇴직해서 달라진 현실을 시작한다는,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살게 될 것이다.


 서로에게 밥을 사고 커피를 사고 가끔은 무와 고구마를 나누면서 인생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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