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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 치어리더 Jul 06. 2015

양삭, 젠장할 

중국 계림, 소매치기의 추억

한 손을 주먹쥔 내 빈손에 올려봐. 다시 걷어봐. 
그가 주먹쥔 손을 폈다.
오늘밤 나와 같이 가지 않겠어? 
그의 손바닥에는 하룻밤에 이만원이면 묵을 수 있을 것 같은, 투박한 나무막대기가 달려있는 여관키가 올려져 있다.
웃으며 고개를 젓자 그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열쇠가 사라졌다. 우리의 밤도 사라졌다.


그는 카드 다발을 내민다.
카드를 한 장 뽑아봐. 
그리고 내 옆에 앉아있던 일본 남자에게도 카드를 한 장 주며 말한다. 뒷면에 연봉을 적고 응 보너스까지. 다시 나를 보며는, 숙녀분은 뒷면에 전화번호를 적고. 그는 카드를 뒤섞으며 물었다. 한 잔 하겠나? 일본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냉장고에서 닫혀있는 유리 물병을 꺼내 그에게 건내었다. 그 안에는 내 번호가 적인 카드가 들어있다.
감쪽같은 마술만큼이나 뻔뻔한 말투와 유머를 즐겼었다. 그는 로버트슨키의 갤러리호텔 바에서 일하는 일본 마술사였다. 

방금전까지 주머니에 있었던 지갑이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뜬금없이 오년전 바에 걸터 앉아 보았던 그의 마술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사람들이 지나쳤고, 혹은 나를 바라보았고, 이끝에서 저끝으로 뛰며 마음속으로는 이미 소용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인파를 헤치며 동동거리는 내모습에 나 조차 길을 잃었다. 


본격적인 양삭의 관광이 시작되는 서가의 초입이었다. 한 손에는 방금간 망고쥬스를 들고, 양쪽 주머니에 아까 샀던 따듯한 고구마, 핸드폰과 지갑이 묵직하게 들어간 점퍼를 입고 중국어를 못하는 친구를 대신해서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찰나였다. 지갑이 없다는 것을 느낀 것, 양쪽 주머니를 뒤져 고구마와 핸드폰밖에 없다는 것을 안 것, 방금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망고쥬스와 함께 지갑을 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이것이 꿈이기를 바래본 것까지, 몇 분상간에 나는 들뜬 관광객에서 지갑이 털린 얼뜨기 거지가 되었다. 이것이 꿈이기를, 방금전 뗏목을 저어 지나치며 바라보았던 리강의 절경이 비현실적이었던것 처럼 진정 현실이 아니기를 바래보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여행의 첫 날, 도착하던 꼴로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더욱이 은행 카드와 출입증을 잃어버려 쌩난리를 친 것이 불과 며칠전, 왜, 왜 이러는거야 도대체.


소매치기를 당한 바로, 그곳 


아까 흥정을 하던 길거리 기념품 가게의 청년이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지갑을 도둑맞았어요." 라는 말은, 타이베이에서 중국어를 배울때 여러 번 연습했었다. 그 말을 실제로 내 입으로 내 뱉는 순간, 왠지 순간 이동하여 타이베이 중국어 학교의 교실에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나는 또 한 번 바래보았다. 이것이 진짜가 아닌 연습이기를. 

청년은 110으로 전화를 걸라고 했다. 이미 정신나간 표정을 하고 그 주변을 여러번 오르내렸다. 경찰에게 무슨말을 할지도 정하지 않은채 전화를 걸었다. 지갑을 도둑맞았어요. 네 서가에 있어요, 네 은행 맞은 편 쓰레기통 옆에 있어요. 5분후에 오신다고요? 알겠어요.

경찰은 오지 않았고 또 다시 전화를 건 나에게, 수화기 저 편의 경찰은 '또 너냐' 라는 말투로 출동했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20분이 지났다. 사십분 후면 이번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예모감독 연출의 Impression- 인상 유삼저(印像 劉三姐)를 보러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친구가 상기시켜주었다. 호텔에 전화를 걸어 내일로 연기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대답은 부정적이었고, 지갑을 털리면서 정신까지 한꺼번에 털려버린 이 순간 공연이 걱정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나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지갑이 없어졌다고해서, 이쇼를, 이 여행을 망쳐서는 안되는거다. 


그때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십니까? 못찾겠어요. 

짧은 중국어를 탓하며 아까의 청년에게 수화기를 내밀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설명 좀 해줘요. 그는 아직도 너 여기있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소매치기는 소매치기야, 뭘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그는 퉁명스럽게 수화기에대고 위치를 외쳤다. 다시 수화기를 내귀에 대자 그가 나에게 말했다. "I will be right there." 명확한 영국 억양이었다.

맙소사, 영어 할 줄 아세요? 

네 아까 중국어로 이야기하면서 신고자분이 위치를 잘 못 알려주셨어요. 시간이 좀 더 걸릴 겁니다. 

나는 이제 백인의 영국경찰이 내 앞에 나타난다해도 놀라지 않을터였다.


또 다시 이십분이 흘렀다. 열쇠가 없어졌으니 상해에 돌아가는대로 열쇠를 복사해달라고 집주인의 중개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갑을 털렸다는 중국어를 이렇게 많이 쓸 줄 모르고 배워두었다. 도대체, 내 생활의 토픽은 왜 병원과 경찰서 단원에서 멈춘 것인지 이것이 불행이라 해야 할지 다행이라해야 할지 몰랐다. 일곱시 사십 분, 이제 30분 앞으로 다가온 쇼를 포기할 수 없다는 초조함에 쓰레기통 옆 가로등 사이로 한 번 더 목을 길게 빼었을때, 두 명의 경찰관이 내 앞에 나타났다. 


지갑을 도둑맞았어요, 정확히 여기에서 여기로 움직이는 동안이예요. 아니, 아무것도 못느꼈는데 지갑이 없어요, 저기에서 쥬스값을 내고 여기로 옮겼어요. 그게 한 시간 전이고, 정확히 없어진 5 분후에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고, 지금 한 시간이 흘렀어요. 내 지갑은 찾을 수 없겠죠? 

지갑에 뭐가 들어 있었습니까?

은행카드하고, 현금, 보험카드, 호텔카드키 같은것들이요.

일단 경찰서로 저와 함께 가서 신고를 하시죠. 

저 그런데 말이죠. 

그가 내 얼굴 바라보았고 나는 조그맣지만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다. 

쇼를 보러가야 하거든요. 

아 쇼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일단 호텔로 저희와 가셔서 호텔룸을 점검하고 쇼를 보러가시죠. 그리고나서 쇼가 끝난후에 경찰서로 오셔서 신고를 하시면 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양삭의 라이트-장예모의 쇼. 계림의 산과 강을 무대로 펼쳐지는, 낮에는 학업과 생업에 종사하며 밤에는 쇼를 하는 계림 예술 학교 학생들과 지역 주민 680명이 출연하는 인상 쇼. 그는 내가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나보다 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소매치기 당한 이와중에 쇼는 무슨 쇼냐며 미친여자 취급을 당해도 놀랍지 않은 마당에, 경찰의 진지한 제안을 듣고 있는 이 상황은 진정 코메디였다. 

지금 본부에 전화해서 경찰차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두 분이서 경찰차 없이 걸어오셨나요? 

아 실은 저쪽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저희차가 거기 가있거든요. 그래서 신고자분을 모셔다 드리려면 다른 차를 불러야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살인사건. 

저자거리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정도로 경찰서에 수통의 전화를 건 일을 상기하자,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살인사건과 소매치기 사건에 두 대의 차를 배정하는 그의 말투에 머리가 띵해졌다. 


저쪽 호텔 앞에 파출소가 있습니다 2분만 저와 같이 걸어가시죠. 

나는 그와 나란히, 내 친구는 다른 한 명의 경찰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고맙습니다. 영어를 하는 경찰관이 있을 줄 몰랐어요.

여기선 다 합니다. 외국인이 하도 많아서요.

아네, 저 그런데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도둑을 잡을 수는 없을거고, 전 왜 신고를 하러가는 거죠?

일단 신고를 하시고요, 보험든게 있으면 배상 받으세요.

아 정말 아무것도 못느꼈어요. 어떻게 이렇게 잘 빼갈 수 있죠? 저 같은 사람 많아요?

90% 사람들이 신고자분 같은 케이스입니다. 그냥 주머니에 지갑 넣고 물건사다가 없어진걸 알게 되죠. 이런 관광지, 다 그런동네인거 아시잖아요. 

그의 말투는 흡사 '여름엔 모기가 있잖아요, 물리는 거죠' 라고 말하는 듯 덤덤했다.


어느나라 사람입니까?
한국이요.
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파출소가 보였을때 그는 나를 향해 몸을틀며 여전한 톤으로 말했다.
저, 정말 궁금한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물어도 됩니까?

네 그러세요.

한국 여자들은 다 성형을 한다는게 정말입니까?
파출소의 문을 열고 있는 그에게 나는 황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 상황 이 타이밍에 이런 질문) 진심이세요? 
네 
그의 표정에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고, 뒤따라오던 내친구는 뜨악했고, 동행하던 다른 경찰은 내 입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파출소 앞 길 한복판에서 미친듯 웃기 시작했다. 
이 소매치기 코메디의 대미를 장식할만한 강적이다 이 경찰. 길바닥에서 허리를 꺾으며 웃고 있는 내게 그는 예의 침착함으로 경찰서장을 소개시켜주었다. 
서장님이 호텔까지 데려다 주실겁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드릴테니 쇼가 끝나면 신고를 하러 오십시오. 

차문을 여는 그에게 말했다.
모두는 아니예요. 그렇지만 네,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고마웠어요.
아 수술을 하는군요. 

영어를 못하시는 서장님은 영문을 모른채 우리를 호텔로 운전해가 쇼에 늦지 않도록 내려주었고, 빈털터리가 되어 호텔에 돌아온 나는 어떤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중국 사람들이 가득한 봉고차에 몸을 싣었다.

그날 밤, 인상유삼저.
나는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무대와 공연을 보았다. 

계림산수천하갑 이라는 그 '갑'의 장소


이놈의 젠장할 양삭. 뺨때리고 황홀하게 키스하고 하루사이에 날 들었다 놓았다.
전날 밤을 새고 이런 하루를 보낸 나는, 더 이상 뺏길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 나는, 여느때보다도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산, 그리고 물  그 가운데 뗏목과, 어제 소매치기 당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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