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훈 Jun 01. 2020

김초엽 <관내분실>을 읽다.

관내(館內), 분실(紛失)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관내분실”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소설의 의미로는 반출되지 않은 채로 도서관 안에서 마인드가 분실되어 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도서관 안에는 존재하고 있지만, 그 존재를 찾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여기서 마인드란 언어화할 수 없는 상태로 저장된 한 사람의 일생에 이르는 매우 막대하고도 깊이 있는 정보의 모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시대 여성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강요받았다. 여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소설에서 지민이 배려를 가장하여 업무에서 배재당하는 것처럼, “어차피 아이를 가지면서 일을 잠시 그만두는 건, 언제나 있어온 일이었으니까”라는 팀장의 말처럼,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사회로부터 배척받게 되며 경력단절과 같은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사회적인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은하’의 진짜 삶, 가장 뒤쪽 작은 글씨, 그도 아니면 파일의 만든 사람 서명으로만 남는 형편없는 존재감으로라도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삶. 아이라는 족쇄에 아직 걸리지 않았을 때의 그녀의 삶은 세계 속에서 분실되고 마는 것이다. ‘관내분실’이라는 말은 존재하는 하고 있지만 그 존재를 찾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에 이르는 정보,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공상 과학 소설의 형식으로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도서관’이라는 장소의 의미도 더 이상 책을 보관하고 대여해주는 장소가 아니다. 책이라는 존재는 마인드라는 존재로, 책에 붙어있던 라벨은 인덱스로 대체된 미래의 세계―“엄마가 젊었을 시절만 해도 종이책을 출간하는” 이라던가 “사후 마인드 업로딩이 보편화된 것은 수 십 년 전의 일이다”라는 구절을 통해―이다.


공상 과학 소설은 독자들이 느끼기에 먼 미래 세상이라 강력히 생각하거나 허구성을 강하게 느끼는 장르이다. 현대에서도 뜨거운 감자인 이러한 여성의 이야기를 공상 과학의 소설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 사회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질감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전근대시대에 팽배했던 여성에 대한 불평등한 대우는 기술적으로 발전된 현대에서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자리 잡고 있으며 미래에 가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사실 자체는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로 말미암아 독자들은 현재의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모든 시대를 뛰어넘는 부모와 자식과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주제에 접근하기 용이하게 만들어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해진 <빛의 호위>를 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