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에 나오니 온 천지가 하얗다.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고 그 위에 지금도 눈이 내리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설경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발을 멈추고 폰카메라를 꺼낸다. 몇 컷 찍고 급히 출근길을 이어간다.
지하철역을 향해 동네 내리막길을 걸어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마주한다. 우산 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려 노란 비닐우의를 겉에 입고 있고, 눈 치우는 삽과 긴 빗자루를 하나씩 든 사람들이다. 그들 중 젊디 젊은 여성들도 함께하고 있다.
내 눈에 딱 보니 공무원들이다.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소속된 공무원들일 것이다.
왠지 고개를 약간 숙인 것 같은 자세로 무거워 보이는 긴 빗자루를 들고 말없이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그들을 보자 가슴이 먹먹해진다. 특히나 그들 속 딸 같은 젊은 공무원들을 보니 눈가까지 가려워 온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그들이 너무 고마워서일까? 그들도 요즘의 보통 청년들이란 걸 알게 돼서일까? 그들이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조금은 알아서일까? 그들이 사람들의 몇 마디에 얼마나 아파하는지, 얼마나 사람들의 칭찬에 행복해하는지를 조금은 짐작하게 되서일까?
눈이 오면 새벽에 비상이 걸리고, 공무원들은 꼭두새벽에 현장에 도착해 눈을 치우고 염화칼슘을 뿌린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알지 못하는 일을 한다.
그 일을 하는 공무원들의 다수는 여성이고 젊은 사람들이다. 내 눈에는 요즘 여자애들 요즘 청년들이다. 좋은 세상에 태어나 어려움보다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 청년들이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그들도 그런 청년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구청에서 한 이년 살다 보니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나 보다. 그들 일선의 공무원들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일들을 많이 한다. 일선의 공무원들이 하는 일은 마치 소방대원들이 하는 일처럼 생활 속 작지만 꼭 필요한 일들이 많다. 그들은 공기처럼 일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칭찬보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이 그들 일선공무원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 위에 앉아있는 늘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공직자들도 공무원이고, 그들이 대중 앞에 미디어 앞에 등장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난과 질책을 함께 받는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공무원으로 본다. 그러니 통짜로 같은 집단으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난 사람들이 일선의 그들과 다른 위치의 그들을 구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특히나 오늘처럼 폭설이나 한파가 오는 날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머리와 말로 하는 이들과 몸과 손으로 하는 이들이 구분되어 사람들에게 따로 평가를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최소한 일선의 그들이 억울해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같은 날 힘든 작업을 새벽부터 하고 나서 지친 몸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는 그들에게 나는 미안한 마음과 짠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주임님."
"늘 하는 일인데요. 괜찮아요. 공무원이 그렇죠."
"저라도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주임님."
"가끔은 이러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돌아오는 건 비난뿐일 테니까요. 아무튼 말씀 고맙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네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을 칭찬받는 사람들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그들의 숙여진 고개를 똑바로 들게 하고, 내려앉은 어깨를 높게 펴지도록 하면 어떨까?
그들이 연봉 현타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눈을 먼저 생각하고 가슴을 활짝 펴도록 하는 건 어떨까?
그들은 우리 시대 흔하디 흔한 청년들이고 동네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하는 일을 구분해서 평가해 보는 건 어떨까? 일선 공무원들의 하는 일도 소방대원들의 일처럼 내용을 세세히 알고 평가해 주면 어떨까?
우리들이 평범한 일선 공무원들을 우리 시대의 작은 히어로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러면 그들이 바뀌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우리들의 진짜 히어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