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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로미 Jun 01. 2020

외국의 스케일이란?! 난데없는 바퀴벌레 공부

#필리핀에서 두 달 살기- 여섯 번째 이야기.

언니에게 조기 귀국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언니는 다행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운전기사는 나중에 다시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급여 인상을 요구하는 걸 보니 내가 퇴직의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아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녁을 먹고 나름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모, 저기 엄청 큰 벌레가 있어!"

조카의 한 마디에 언니도 나도 얼어붙어버렸다.


사실 나는 벌레를 끔찍이 싫어한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모기도 싫어서 휴지로 잡을 정도이니 큰 벌레는 당연히 잡을 리가 없다. 심지어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내가 거의 모든 것을 준비하니까 미안한 마음에 친구가 난 뭘 하면 되냐고 물으면 그냥 벌레를 잡아달라고 할 정도이다.


여행을 하면서 외국의 벌레 스케일은 익히 경험해 봤기 때문에 더 두려움이 커졌다. 조심스럽게 안방 방문을 열었는데. OMG...... 정말 중지 손가락 정도의 바퀴벌레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날개도 있었다. 의자 위에 걸쳐둔 수건에 붙어 있었는데 저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조카는 어서 잡아달라고 난리인데 온몸에 소름이 끼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강하니까 언니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언니도 나만큼 벌레를 싫어해서 발을 동동 굴릴 뿐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저 아이가 날개가 있어서 우리에게 날아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가서 약을 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을 하는 사이 바퀴벌레는 수건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럼 바로 날아들지는 못할 것 같아서 언니와 나는 비오킬과 스프레이형 알코올을 손에 들고 발사했다. 어렸을 때 물총 싸움할 때처럼 사정없이 총알을 날렸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수건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이니 죽었거나 최소 치명상을 입었길 간절히 바랐다. 사체를 확인할 용기는 나지 않아 어느 정도 거리 유지를 하며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바퀴벌레, 필리핀 바퀴벌레, 바퀴벌레 죽이는 법, 바퀴벌레가 생기는 이유, 바퀴벌레 방역까지.......

검색을 해 보니 실제로 고온다습한 이 지역은 바퀴벌레가 살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생명력도 엄청나서 쉽게 죽지도 않고 약을 뿌려도 죽은 척하는 경우도 많다기에 아직 우리 집에 있는 아이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하지만 의문점은 그날 도우미가 와서 4시간 동안 반짝반짝 집을 청소했는데 이렇게 깨끗한 곳에 더러운 곳에만 사는 저 아이가 어떻게 들어왔냐는 것이다. 블로그를 보니까 외부와 연결된 싱크대나 화장실 하수구를 통해 들어올 수 있다고 하는데 아까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활짝 열어두었던 배수구가 생각이 났다. 가장 유력한 유입 경로였다. 또 밖에서 숨어있다가 현관문을 열 때 사람과 같이 들어온다고 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우린 문을 잡아주지 말고 최대한 빨리 문을 닫아버리는 걸로 룰을 정했다.


그렇게 번갈아가며 검색을 하고 있는데 빼꼼 고개를 내미는 바퀴벌레. 아직 안 죽었구나. 조심스럽게 무기를 들고 다시 접근하는데 이럴 수가 아주 빠른 속도로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저히 침대 밑을 뒤져서 찾아낼 용기는 없었다. 마침 형부의 퇴근 시간도 다가오고 있어 전화를 미친 듯이 할 뿐이었다. 그 사이에 이 친구는 또 기어 나와서 안방 화장실로 질주했다. 이렇게 강한 생명력이라니! 이제 그냥 안방을 봉쇄하는 방법만 남았다. 안방 문을 닫고 혹시 모를 구멍으로 나올까 봐 문틈도 막아두었다.


결국 늦은 시간에 귀가한 형부가 해결해주었다. 다행히 바퀴벌레는 안방 화장실에 기절해 있었다고 한다. 찝찝한 마음에 그날 안방에서 자기는 글렀고 언니와 형부는 조카 방에 그리고 조카는 내 방에서 함께 잤다.


다음날 아침은 당연히 대청소로 시작했다. 다행히 코로나 대비용으로 알코올을 잔뜩 사다 두어서 여기저기 알코올을 쏟으면서 방역 아닌 방역을 했다. 사실 알코올은 쓸 만큼 걸레에 묻혀서 사용하는 것인데 한 통을 다 썼으니 냄새가 정말 지독했다. 근처 카페에 한동안 피신했는데도 냄새가 빠지지 않아 3일 정도는 안방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 이후로 바퀴벌레를 보진 못했지만 쪼그라든 심장 때문에 작고 검은 것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바닥에 떨어진 카누 봉지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이니! 그래도 언니가 혼자였으면 더 무서웠을 텐데 함께여서 다행이었다고 한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이지만 전우애가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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