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애초에 청정구역이 아니었던 걸까?
# 필리핀에서 두 달 살기 - 일곱 번째 이야기.
이곳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확진자 3명을 유지했는데 점점 확진자가 늘어나더니 두 자리 수가 되었다. 의료 기술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입국 금지라는 강수를 두어 완벽하게 차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전하다고 생각되어 놀러 온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도 감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위기가 찾아온 듯하다. 다니고 있는 학원도 마스크 없이 출입이 금지되어 또 답답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출입 전에 열 체크도 한다. 조금 갑갑하지만 그래도 철저히 예방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니 마음이 놓이는 구석도 있다.
사실 필리핀도 마스크를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에서 마스크를 사는 게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여기 오자마자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여기저기를 방문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니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형부가 직원에게 부탁해서 겨우 마스크를 구했지만 중국산이고 본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모양도 우스꽝스럽고 30분만 써도 자국이 진하게 남지만 다른 대체품이 없다. 이마저도 한화로 2500원 가까이한다. 다들 마스크를 구하기 쉽지 않고 비싸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손수건이나 스카프 등으로 가리기도 하는데 순간 강도인 줄 알고 움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한 달 동안 변하지 않던 수치가 갑자기 올라가기 시작했을까? 이 바이러스는 열에 취약하여 여름이면 소멸될 거라는 예측도 있었으니 말이다. 전에 레벨 테스트할 때만 해도 선생님은 이곳이 청정 구역이라며 자부심이 남달랐었다. 더운 나라에서는 발병이 되지 않는다기에 싱가포르와 대만도 더운데 거기에는 바이러스가 있지 않냐고 했다. 그러자 거긴 중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렇고 여기에는 아직 필리핀 현지인 중에 확진자는 없다고 하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애초에 환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발견을 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스크 조차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과연 병원에 갈 수 있겠는가. 실제로 선생님과 얘기해 본 결과 여기는 보험 같은 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바쁜 사람들이라 병원에 가는 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생존 확률이 5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진단 키트까지 부족한 상황이었으니 제대로 검사가 되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곳은 한국처럼 동선 공개를 하지도 않고 방역도 제대로 하는지 알 수 없기에 더 불안감이 커져간다.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간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간략한 동선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혹시라도 근처에 가기라도 했으면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놀랍게도 그곳은 버젓이 영업 중이기도 하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2020년 목표는 '살아남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남의 이야기 같지는 않다. 결국 살아남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 더위에 마스크까지 쓰려니 정말 죽을 맛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도 이렇게 올스탑 되어 버렸는데 부디 한국의 여름은 마스크 없이 활기차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