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왕이면 멋있게 삽시다
여자가 이혼 이후의 삶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아이가 있어서다. 아이가 없었다면, 여자와 남자는 가슴 아픈 이별 후에 다시 만나는 일도 연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겠지만 아이한테 만큼은 상처를 덜 주고 싶고, 주어진 상황이 아이에게 최선이 아니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알아내고 싶을 것이다. 혹시, ‘그렇게 아이를 생각한다면 이혼을 하지 말았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혼하는 부모 중 누구도 그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생각하며 죽을 만큼 힘든 고민 끝에 내리는 결정일 것이라고 말이다. 반대로, 괴롭고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을 하더라도 아이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한다면, 그것도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선택도 존중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줄곧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고, 엄마 따로 아빠 따로 보면서 살 경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까. 여자는 이혼 가정에서 자라 보지 않아서 그 느낌이 어떤 것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낸 적이 많았고 부모님이 서로 그렇게 살가운 편은 아니었지만, 돌아오면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고 부모의 존재는 언제나 바깥세상에 대한 안전한 테두리였다. 청소년이 되었을 때는 가족회의도 자리 잡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또는 아무 저녁때나) 각자 돌아가면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규칙을 정하는 등 자유롭게 의견을 조율하면서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생겨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가족’이라는 유대감이 왠지 좋았다. 여자의 아이는 그런 것을 못 갖게 될까? 한쪽 부모와도 충분히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찾지 못한 채 호주에 왔지만, 여자는 한국과는 다른 이혼 가정의 모습을 접하면서 이혼 이후 가정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열고 있다. 한국과는 반대로 이혼율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약 삼분의 일 정도가 이혼 커플인 호주에서 이혼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누가 이혼을 했다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그 사람은 구시대적 유물로 취급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느 한쪽 부모에게서만 자라야 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여자의 주변에도 엄마 아빠가 여전히 아이들과 같이 만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엄마의 생일에 아빠와 아이들과 아이 친구들, 아이 친구의 엄마 아빠 등이 한 자리에 모여서 축하해 주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남이 되면 마음이 더 너그러워지는 것일까? 여자는 여전히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의아하지만, 옆에서 마음껏 웃고 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 모습이 나쁘지 않다.
결혼한 부부의 삶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듯, 이혼한 부부의 올바른 모습을 딱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형식이나 남의 시선보다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우선으로 두면서 각자의 생활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보면, 여자와 남자가 각자의 생활을 하되, 아이를 위해 필요할 때는 자유롭게 상의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같이 있을 때보다 따로 있을 때 더 행복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헤어졌지만, 아이에게는 여전히 사랑하는 엄마 아빠이니 말이다. 그 아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아이의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헤어스타일로 바꾸고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 그 안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 된다’고 말이다. 아마도 여자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테고 삶이 늘 그렇듯이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겠지만, 오늘 이 생각 하나에 마침표를 찍고 또 전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