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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14. 2021

이웃집 고양이

점점 고양이의 별장이 되어간다

우리 집은 애완동물이 없다. 어릴 때 애완동물을 몇 번 키워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 끝마다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헤어짐이 싫어서 어느 순간 더 이상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결심하던 때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새끼 때부터 키우던 몰티즈 강아지는 거의 내 방에서 살았다. 유난히 배변훈련이 어려웠던 그 강아지는 잘하다가도 가끔씩 오줌이나 똥을 거실이나 안방에 쓱 싸고 오는 바람에 집 안에 냄새가 배어 부모님의 미움을 샀다. 나도 똥 치우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특별한 강아지였다.   


강아지가 어렸을 때 그렇게 잘 먹던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잘 먹지를 않고 노랗게 뭔가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축 쳐져서 마침내 물도 다 토해내자, 나는 걱정이 되어 강아지를 안고 동네 동물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배속에 뭔가가 걸려있어서 당장 수술을 해서 꺼내야 하며, 수술해서 살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다. 당시에 20만 원 남짓하던 수술비가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엄마는 안 그래도 맘에 안 드는 강아지가 아프기까지 한 것이 탐탁지 않으셨겠지만 그래도 죽어가는 생명을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수술비를 주셨다. 강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는 밖에서 기도를 하며 내내 울었는데, 더욱 슬프게 했던 것은 벽에 걸려있던 ‘주인님을 위한 기도문’이었다. 왜 하필 그런 걸 수술실 앞에 걸어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여라도 수술이 잘못되어 강아지가 죽을까 봐 너무 무섭고 미안한 마음에 내내 가슴졸였다.  


마침내 수술이 끝났고, 수의사 선생님은 다행히 잘 끝났다며 걸려있던 옥수숫대를 보여주었다. 주방 휴지통에 버린 걸 주워 먹다가 걸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마취가 풀리면 아플 거라며 진통제와 영양제가 들어간 링거를 꽂아주셨다. 그 가는 핏줄에 주사바늘을 넣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에 가자 마취가 풀리면서 추위가 느껴지는지 강아지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고, 나는 수건을 이불삼아 덮어주며 내 옷장 손잡이에 링거를 걸어놓고는 밤새 내 침대와 바로 옆 강아지 자리를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큰일이 있고 나서 강아지와 나는 더 각별해진 것 같았다. 내가 밖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집에 와서 침대에 앉아있는 나에게 가만히 다가와 눈을 맞추며 위로해 주었다. 또 추운 겨울에 잠을 잘 때면 어느새 잠든 내 등 뒤로 와서 기대어 따듯한 체온이 전해지곤 해서 잠결에도 느낌이 참 좋았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된 나는 춘천으로 엠티를 가게 되었는데 동생에게서 삐삐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아빠가 그 강아지를 농장이 있는 친구분에게 키우라고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위해서도 실외에서 키우는 게 낫다고 하셨지만,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는 통보인 데다 강아지를 더 이상 못 본다고 생각하니 배신감과 슬픔이 뒤섞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일주일간 부모님과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제대로 된 소식도 한번 듣지 못한 게 내내 안타까워서, 이제 더 이상 강아지는 키우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호주에 와서 넓은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개들을 보면 가끔씩 그 강아지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역시 지금은 강아지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일이 많은데, 거기에다 강아지까지 있으면 해야 할 일도 늘어나거니와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형제가 없어서 엄마에게만 놀아달라는 아들이 안쓰러워서 최근에 애완동물에 대해 다시 고려하게 되었다. 아이의 또래 친구들도 다들 애완동물을 기르는 집이 많다. 개나 고양이뿐 아니라, 햄스터, 닭, 새, 물고기, 토끼 등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자기의 Pet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지, 아이가 부쩍 Pet에 관심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는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더 좋아했다. 고양이는 먼저 덤비는 법도 없고, 몸집이 훨씬 작고 조용하기 때문에 좀 만만했나 보다.  


그러는 와중에, 옆집에 사는 고양이가 어느 날부터 우리 집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어진 베란다로 와서 저녁에만 슬쩍 보고 가더니, 그다음엔 베란다 쪽 창이 열려 있을 때 슬그머니 들어와서 집안을 스윽 훑어보고 나가는 것이다. 털이 길어서 몸집이 고양이 치고 좀 커 보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냥 가만히 두었다. 어느 날은 저녁에 외식을 하고 들어왔는데, 집에 와서 불을 켜자 뭔가가 후다닥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더운 날이라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왔는데 우리가 없는 틈을 타서 안방에서 놀다가 불이 켜지자 놀라서 베란다 쪽 창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나도 놀라고 고양이도 놀랐다. 그 이후로는 안 오면 궁금해지기도 하고, 아는 지인으로부터 고양이 비스킷을 받아서 고양이가 오면 주려고 기다리기도 한다. 새해 첫날에는 아침에 블라인드를 열었더니 얌전히 창 바로 앞에 앉아서 문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새해 인사를 하는 듯했다.  


이제는 외출할 때도 일부러 문을 살짝 열어놓고 나가기도 한다. 고양이도 심심할 텐데 그나마 하나뿐인 옆집이라도 별장삼아 들락거리면 좋을 것 같아서다. 고양이 키우는 집에 물어보니, 호주에서는 고양이들이 집 밖으로 많이들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람들이 워낙 개나 고양이에 대해서 친근하게 대해주고, 집 밖에 나가도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자기집에서 이어진 곳은 우리집 밖에 없고, 7층이라 뛰어내릴 수도 없으니 달리 갈 곳이 없을 것이다. 아이도 너무 좋아하고 나도 좋고 고양이도 좋고.. 이렇게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고도 애완 옆집 동물이라 생각하며 한 동안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ㅎㅎ 물론 엄마의 사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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