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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Feb 21. 2021

쇼코의 미소 + 나의 바다 이야기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


책 리뷰라기 보다는


나의 바다 이야기




표지가 예쁜 책이다.


쇼코의 미소저자최은영출판문학동네발매2019.06.20.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작가의 단편 소설집



빨간책방 팟캐스트에서


이동진님이 이 책을 소개하면서


읽어주신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쇼코는 나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최은영 작가의 글이 좋았다면


빨간책방 김중혁의 숏컷


'최은영 작가'편을 들어보세요.


작가가 직접 낭독하는 작품도 있어요.



쇼코의 미소는 7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 쇼코의 미소


2. 씬짜오, 씬짜오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4. 한지와 영주


5. 먼 곳에서 온 노래


6. 미카엘라


7. 비밀




나를 매료시킨 문장은 어디쯤 나올까?


설레는 기분으로 '쇼코의 미소'를 펼쳤는데,


그 문장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친절하고 차가운 미소'는 어떤 미소일까?


궁금해서 거울 앞에서 친절하고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기도 했다.



책 리뷰라기 보다는 바다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서


고향 앞바다에 대한 내 얘기를 적어봤다.



어렸을 때 나는 바닷가 마을에 살아서 부모님이 싸우면


울면서 바다로 달려갔다면 신파 드라마고,


현실은 '지겹다 지겨워' 를 속으로 수 십번 되뇌이며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 큰 길을 피해


논둑길을 따라 터들터들 바닷가로 걸어갔다.



논둑길은 봄, 가을에는 걸을 만한데


여름에는 뱀이 많이 나와서 오싹오싹했다.



겨울바다는 인정사정없이 추워서 함부로 갈 데가 못 된다.


부모님 싸움을 피해 바닷가를 찾던 날은


지금쯤 밀물때였으면 하고 바랬다.


썰물이면 조개를 캐거나


어로작업을 하는 마을 어른들을 만나게 되고


나는 죄지은 것처럼 위축되었다.


이제 어른이 된 내가 나 같은 아이를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나도 예전 어른들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무심히 지나가겠지.




우리 동네 바닷가는 다양한 지형이 구역별로 나눠져 있었는데


나는 주로 석지끝이라고 불리던 옆마을과 인접한 바닷가를 좋아했다.


거기에는 길이 50 m 가량 되는 작은 모래밭이 있었다.


모래가 곱지는 않았지만 색감이 참 예뻤다.


니스 칠한 것처럼 맨들맨들한 몽돌과


오래전 죽은 이의 뼈조각 같은


새하얗게 탈색된 조개껍데기가 사방에 널러 있었다.



모래사장을 거니는 내 발 밑에는 파도가 왔다 갔다했다.


그 파도 소리가 참 좋았다.


우울한 기분을 돌리려 큰 바위가 많은 곳으로 가


당시 좋아하던 남자애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애는 키도 훤칠해졌고


제법 멋있게 자랐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가 일조한 것처럼 흐뭇했다.


그 바닷가와 바위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마을이 개발되면서 바닷가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다도해답게 마을 앞바다에는 섬이 많았다.


섬은 거대한 장애물처럼 내 앞을 막고 있었다.


벽처럼 막고 있는 섬과 바닷물로 꽉 찬 바다를


원망하며 눈이 시리도록 바라봤다.



"언젠가는 바다를 떠나서,


사방을 둘러봐도 빌딩밖에


없는 도시에 가서 살 거야."



책에서 지긋지긋한 현실 속에 있던 쇼코가


소유에게 한 말이다.


대부분 시골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자란다.


나는 바닷가에 섰을 때보다 아궁이에 군불을 때면서


이 지긋지긋한 촌구석을 탈출해야겠다고 부지깽이로 땅을 팠다.


결방없는 일일연속극마냥 매일 동네 부끄럽게 싸우는 부모님을 떠올리면


한 분이 돌아가셔야 이 지긋지긋한 상황이 끝날 거 같아서


아무나 돌아가시기를 빌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엄마가 먼저 돌아가셨다.



아차!


바닷가에서 소원을 빌 때는 영험이 있어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빌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주위가 수묵화처럼 어스름해지면


앞바다 섬에서 불빛이 하나 둘 돋아났다.


따스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저 섬에도 사람 사는 마을이 있구나.


저 섬에서 우리 마을은 어떻게 보일까?



아주 어렸을 때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까지 나간 적이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본 우리 마을은 정말 낯설었다.


익숙했던 풍경도 시선이 바뀌면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는지


그 장면만 사진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고향 땅을 떠날 기회가 찾아왔다.


친척 어른들은 홀로 되신 아버지를 돌보라며


통학이 가능한 고등학교에 가라고 권했지만


나는 기를 쓰고 마산으로 진학했다.


쇼코는 할아버지를 혼자 두지 못해 결국 도쿄로 가지 못했지만


나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두고 집을 떠나버렸다.


아버지의 일주일 반찬을 챙겨야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주말마다 

통영에 내려가야 하는 후유증을 치러야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집은 쇠마구간처럼 조용해졌다.


아버지와 나, 둘 뿐인 집은


바다 한가운데서 본 마을처럼 낯설었다.


아버지는 진정 이것을 원하셨던걸까?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통영에 띄엄띄엄 갔고


아버지도 띄엄띄엄 저 세상으로 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위독하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오빠와 통영에 갔던 날 밤


아버지는 오빠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훌쩍 돌아가셨다. 


20살 되던 해 무덥던 여름,


집마당에는 허리까지 자란 잡초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뱀


아버지의 임종보다 더 강렬하고 처참했던 


집마당이 내 마지막 고향사진이 되었다. 


우리집에서는 더 이상 사람 소리가 담장을 넘지 않았고


나도 뱀이 나오는 논둑길을 걷는 일은 없어졌다.


나는 진정 이런 그림을 원했던걸까? 


차라리 저녁이 될 때까지 바닷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에 들어오던 때가 나았을까?


두 시절을 비교해도 그 어느 쪽도 끔찍히 싫다.


어쨌거나 나는 그 시절을 잘 이겨냈다.


그럼 됐다.



<쇼코의 미소> 글처럼 그 시절 내내 내 발 밑에는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가 있었고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난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을 적셔주던


그 바다의 가장자리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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