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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Mar 03. 2021

나와 큰언니

5남매 이야기



새학기가 되면 학교에 제출하는 가정환경조사서가 

아동기초조사서로 바뀌었나보네요.


저는 5남매 중 막내입니다. 

우리 집은 아들을 더 보기 위해 다섯 명까지 만들어진 케이스입니다. 

엄마는 큰 딸, 둘째 딸에 이어 셋째는 아들을 낳았는데 또 아들 욕심에 

막내언니를 낳고 또 저를 낳았습니다. 

저를 갑작스레 가지신 늙은 엄마는 

뱃속 아기를 몸 밖으로 떼어내기 위해 병원에 가셨는데

그때 간호사가 제법 불룩한 뱃속 아기가 가여웠던지 

배를 보니 이번에는 아들 같다는 말을 했고 

엄마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발길을 돌렸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남아 선호 사상의 수혜자인 셈입니다. 

당시 시골에서 5남매는 흔한 형제자매 숫자였지만, 

장녀로 태어난 제 친구들은 한두 명의 동생으로 단출했습니다. 

간혹 우리 집보다 형제 수가 많은 경우도 더러 있긴 했습니다.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제 친구는 자신의 형제 많음을 자랑스럽게 얘기해서 

저는 그 친구를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70년대 정부 출산 정책에도 

우리 마을은 꿋꿋하고 줄기차게 집집마다 아이 머릿수를 채워나갔습니다.

정부의 1가구 2자녀 출산 정책이 이 벽지에서는 통하지 않았나봅니다. 

고향에서 자라는 동안 우리 마을로 시집오는 새색시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따로 연구를 한 건 아니지만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아이가 드문드문 생긴 거 같습니다. 


엄마는 큰 언니가 중학생일 때 저를 낳았습니다. 

어느 정도 생식의 메커니즘과 세상물정을 아는 큰 언니는

갓 태어난 막내 동생인 저를 아주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큰 언니는 학교에 제출하는 가정환경조사서에 

막내 언니와 저를 감쪽같이 들어내고 1남 2녀로 조작했습니다. 

동생들에게 애틋한 감정이 없던 큰 언니는 동생 뒷바라지를

둘째 언니에게 맡기고는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큰 언니는 가정환경조사서에서 동생 둘을 감쪽같이 들어내고 

마음까지 홀가분해졌는지 친구들과 그렇게 쏘다녔나봅니다. 

둘째 언니는 팔자에도 없는 맏이가 되어 

한 집안의 살림 밑천으로써 장녀 몫을 톡톡히 치러야만했습니다. 

동생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온 둘째 언니는 무슨 사주팔자를 타고 났는지

홀시어머니에 부모 잃은 시조카들까지 보살펴야 하는 집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둘째 언니는 아직도 저희 5남매의 맏이 타이틀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학교 갈 나이가 되고 머리가 굵어졌을 때 큰 언니와 같은 심정으로 

가정환경조사서에 첫째와 둘째 언니를 쏙 빼버리고 

오빠, 언니, 나 삼남매로 채웠습니다. 

부모님이 실패한 가족계획을 큰 언니와 제가 수습한 셈입니다.  


저는 큰 언니와 처음 만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가족과 얼굴이 닮은, 마땅히 이모나 고모로 불러야 할 거 같은 

다 큰 어른이 저의 친언니라고 했을 때 당황스러움이란.

어린 저는 비밀스러운 가족사에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어색함과 거리감에 꽤 오랫동안 큰 언니를 '언니' 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큰 언니에게 존댓말을 써서 갑분싸로 만들었습니다.


'어머 어머, 쟤가 나한테 존댓말 해.'


엄마한테도 안 했던 존댓말을 들은 큰 언니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존댓말 사건으로 사반세기 동안 일정한 마음의 거리가 유지되었습니다. 

이제 50대 중반이 된 큰 언니는 아직도 먼 친척처럼 느껴집니다. 

유년을 함께한 추억이 없다는 것은 피를 나눈 자매도 남처럼 느껴지게 하나봅니다. 

큰 언니는 주렁주렁 매주처럼 달린 어린 동생들을 내팽개치고 그렇게 놀러 다니더니, 

지금은 다 큰 자식들 뒷바라지에 징글징글하다며 오늘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때 안했던 동생들 뒷바라지를 복리 이자로 갚고 있는 셈인데 

딱해서 쌤통이라고 장난도 못 치겠습니다. 

조카들이 엄마의 노고를 알고 어여 철들어서 효도해야 될 텐데, 이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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