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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Nov 20. 2020

엄마, 누가 더 좋아?

첫째는 21개월에 오빠가 되었고, 21개월 동안 오롯이 혼자 사랑을 받았다. 동생이 태어나서도 엄마의 염려 속에 둘째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둘째는 조금 크고 예뻐질 때쯤 어린이집에 가서 긴 시간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둘째는 언니가 되었다.


7년간의 육아를 돌아보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둘째가 예뻤던 아기 때 모습을 잘 기억 못 하는 거예요."


우리 둘째는 애교가 무척 많다. 태어날 때부터 웃으면 눈이 사라지듯 웃었다. 걸을 때는 한쪽 목과 어깨가 항상 붙어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면 둘째의 귀여운 표정과 몸짓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둘째가 두 살 때였다. 둘째와 내가 카페에 갔다. 둘째는 겁도 없이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가서 빈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 옆에 있던 분들이 까르르 웃으며 둘째를 보고 귀엽다고 케이크와 주스를 사주셨다.  


또 어떤 날은 둘째와 함께 놀이터를 갔었다. 어떤 분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과자가 한가득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주시며 "애기가 너무 귀여워요." 하고는 가셨다.


둘째를 업고 전통 장에 갔던 적이 있다. 둘째를 보는 사람들마다 귀엽다고 말하시며 천 원씩 용돈을 주시거나 공짜로 과자를 주셨다.


어떤 카페에서 다른 엄마들과 커피를 주문했는데, 퉁명스레 주문을 받으셨던 사장님이 커피를 주시다가 둘째를 보고 놀라시며

"어머나 이렇게 만화 주인공처럼 생긴 아기가 우리 가게에 온 줄 몰랐네! 아이고 귀여워"하며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셨다.


둘째는 진짜 귀여웠다.(그 귀여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예민한 첫째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너무 지쳐있었다. 둘째가 귀여운 것은 알지만 귀여움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둘째의 아기 때 기억이 내게 많이 없다. 둘째가 어떤 말을 했는지, 둘째가 언제 이가 났는지... 그런 기억이 희미하다.


다섯 살이 된 둘째는 자주 내게

"엄마, 엄마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라고 묻는다. 나는 그때마다 아이가 자신을 제일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에(엄마는 참 바라는 게 많다.)

"엄마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둘째는

"그다음에는 누가 좋아? 또 그다음에는?"이라고 물었다.


나는 단순히 둘째의 그 질문이 엄마가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다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에 둘째가 누가 제일 좋은지를 묻는 이유가, 엄마 입에서 "둘째가 제일 좋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라는 걸 알게 됐다.


또 어느 날 둘째가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오빠, 나, 동생 중에 누가 제일 좋아?"

"비밀인데, 오빠한테도 동생한테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사실 엄마는 둘째가 제일 좋아."

라고 내가 대답하자 둘째는 진짜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몇 분 동안 '히히히히'하며 들뜬 듯 웃어댔다. 둘째가 그렇게나 기뻐하며 웃는 모습은 엄마로서도 처음 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동생에게 양보를 하고,

오빠가 뭘 해도, 둘째입에 달고다니는 말인 "나는 왜  안 해? 나도 오빠랑 똑같이 할래"라는 말을 당분간 하지 않았다.


혼자서 잘 놀다가 갑자기 히죽거리며 달려와서는 내 귀에다가

"엄마가 나를 제일 좋아한다며? 그게 비밀이지?"

라고 말하고는 엄마를 꼭 안고 "히히히히" 하며 눈웃음쳤다.


둘째는 예민한 오빠 때문에 엄마에게 많이 안기지도 못했다. 오빠가 조금 크고 예민함이 사라졌을 때는 동생이 엄마 옆에 있었다. 첫째에게 밀리고 동생에게 치이고 있다는 것을 둘째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만 바라보는 사랑을 많이 경험 못한 둘째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세 명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양의 사랑을 주는 것이 엄마의 공평함이라 여겼다. 그러나 형식이 공평한 사랑은 둘째에게 불평등하게 여겨졌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사랑을 더 많이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애교쟁이 둘째가 엄마에게서 너무나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은 바로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오늘 산책 길에 둘째가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다은이(둘째의 절친)가  좋아? 내가 좋아?"

"당연히 네가 더 좋지."

"그럼 엄마, 엄마는 경찰차가 좋아? 내가 좋아?"

"당연히 네가 경찰차보다 백배, 아니 천배 더 좋지"

"히히히히히히"

하며 둘째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내게 은밀하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엄마, 엄마는 오빠보다 동생보다 내가 더 좋지? 그거 비밀이지?"

"응 엄마는 네가 제일 좋아."

둘째가 온몸으로 웃는다. 엄마는 그녀가 얼마나 귀여운지, 사랑스러운지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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