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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Oct 30. 2020

사랑의 정의

 요즘 막내는 아기변기를 쓰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막내는 내게

"쉬하고싶어"

라는 말은 잘 하지만, 막상 앉혀놓으면 쉬 안할때가 다반사. 그리고는 기저귀는 차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지라고 쓰고 고집이라 읽자)를 내비친다. 나는 설득할 기운도 없고, 그래 니 알아서 해라~라는 마음으로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바지만 입힌다. 그려면 꼭 10여분 뒤에 바지에 쉬를 한다. 운 좋게 욕실에서 놀다가 쉬하면 정말 감사하지만(사실 이럴 때가 별로 없음), 어떨 때는 장난감 위에, 어떨 때는 이불 위에 쉬를 하기도 한다. 


얘는 언제쯤 변기에 쉬를 하려나 싶었지만, 아이를 세번째 키워보니 이 아이의 속도대로(라고 쓰고 '되는대로'라고 읽자)...라는 마음이 내 안에 생겼다.


어제 저녁,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고 잠잘 준비를 했다. 나는 막내를 불러 기저귀를 갈았다. 그러다가 내 눈에 띈 아기 변기. 그 변기는 첫째 때 중고나라에서 구입했다. 아이가 변기를 무서워하지 않게 해줘야지!하는 정말 초보엄마다운 마음에, 고르고 고른... 소리가 나는 재미난 변기. 이제는 소리도 안나고(건전지를 더이상 갈지 않으니), 둘째보다 우리집에 더 오래 산 녀석이다. 그 녀석은  얌전지만 고집 센 첫째를 지나, 안 얌전하지만 고집 센 둘째를 만났고 이제는 안 얌전하고 엄청 고집 센 셋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고생하고 있다.


아무튼! 기저귀를 갈려다가 내 눈에 띈 그 변기. 나는 막내에게 

"변기에 앉아서 쉬할까?"

했더니 막내는 냉큼 앉는다. 막내는 변기에 앉는 것에 꺼리낌이 전혀 없으나, 한번도 변기에서 거사를 치뤄본 적이 없던터라, 나는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눈에 띄어 한번 해봤을 뿐.

그런데, 그런데, 변기에서

"쪼로로로로로로"

경쾌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막내가 처음으로 변기에 쉬를 했다. 너무 뜻밖이라, 나는 우리나라 국가대표가 월드컵에서 4강 진출 했을 때처럼 기뻐했다. 내가 박수치고 노래 부르니, 첫째 둘째도 엄마를 따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막내는 이게 뭔일인가 싶다가 엄마, 오빠, 언니가 노래 부르니 좋아했다. 한참 축하 파티를 하는데가족들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막내는 내게 짜증을 냈다. 그래.... 막내는 남다르다.



아이들에게 일상적에서 자주 하는 나의 말

빨리 준비해라.

얼른 밥 먹어라.

아직도 다 안씼었어?

옷 얼른 입어.

얼른 준비해야 밖에 나가지.


얼른, 빨리... 재촉하는 단어를 자주 쓰는 나를 발견한다. 언어는 나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쓰는 나의 단어를 보고 내 안에 조급함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의 조급함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이 된다. 미안함이 밀려온다. 


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나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을까?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싶다. 깊고 따스하게.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깊고 따스하게 사랑하고 있는가?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을 때마다 힘든 순간이 있다. 바로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를 수없이 직면하게 된다.


사랑이 무엇일까? 나는 꽤 오랫동안... 나쁜 점들은 개선시켜주고, 좋은 모습이 많이 생기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40년 가까이 살았다. 나의 그런 사랑은 나와 주변을 힘들게 만들었다. 나의 나쁜 모습이 너무나 싫고 용납할 수가 없었다.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나쁜 모습을 들키면 버려질 거라는 생각에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새 나는 사랑을 다시 정의하게 됐다. 내가 싫어하고, 없애버리고 싶은 그 모습까지 수용하는 것, 그사람의 속도를 인정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내 안에는 얼른 변화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조급함이 있다.  이제 더이상 그 조급함을 혼내고 싶지 않다. 조급함을 가진 나를 몰아부치고 싶지 않다. 내 안에 조급함도 인정해주고 싶다. 아이 셋을 키우며 정신없이 바쁜 엄마로 사는 나를, 나만은 인정해주고 토닥여주고 싶다. 


막내가 자기만의 속도로 변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속도로 깊고 따뜻한 사랑을 연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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