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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Dec 01. 2020

한밤 중

어젯밤, 아이 셋의 일정하고 거친 숨소리를 확인한 나는 공중 부양하듯 방에서 빠져나왔다.  야근으로 늦는 남편이 먹을 밥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쌀을 씻었다. 쌀을 씻으며 계속 덜컹덜컹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문이 열렸나, 아이들이 몸부림으로 방문을 차나... 하며 몇 번이고 복도 끝 방문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 그려려니... 하고 쌀을 씻었다. 쌀을 씻고 전기밥솥에 취사 버튼을 누르자마자 남편이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문이 덜컹! 하고 간결하고 단호한 소리를 냈다. 아! 이건 아이 셋 중에 누구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다! 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럴 때마다 등골이 오싹. 미스터리 스릴러보다 더 긴장되는 순간이다.


복도 저 끝. 희고 동그랗고 통통한 생명체가 보인다. 우리의 눈치를 보는듯하다. 쭈뼛주뼛.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복도로 걸어오지 못하고 있다.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눈치를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어? 이리 와!"라는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도 끝에서 끝으로 걸어 나온다. 그의 실체가 드러난다.


혀를 내밀고는 양쪽 보조개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갈등을 많이 한 눈빛.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리는듯하다. 그 생물체의 모습이 가까워질수록... 진한 향기가 퍼져온다. 아... 이건 분명... 똥냄새다.


얘가 왜 그리 고민했는지, 왜 그리 쭈뼛거렸는지 알 것 같다. 잠자는 시간인데, 똥은 쌌고, 엄마에게 말해야 하나, 그냥 잠을 자야 하나, 똥을 싸니 찝찝해서 잠을 잘 수는 없고, 아빠 오는 소리는 들려서 아빠는 보고 싶고, 일어나고 싶은데 잠잘 시간이라 혼날 것 같고, 그래도 나가고 싶고....


똥 쌌어?라는 질문에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인다.

다시 한번

"똥 쌌어?"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다 옆으로 흔든다. 잠결에 싼 똥은 만 두 살에게 내적 혼란을 일으킨다. 기저귀를 갈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랑 잘래, 엄마랑 잘래?"

"어마 됴아! 아빠 됴아!!"

갑자기 자기 고백 타임인가...

"그래, 엄마도 이니(막내 애칭) 좋아해~ 그래서 엄마랑 잘래?"

"아빠랑 달래."

마음속으로 신나게 환호하는 나. 내 기분 탓이겠지만... 유독 울적해 보이는 남편...



아침에 이니를 뒷좌석에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운전하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어마됴아 아빠됴아!"

라고 외치는 이니. 어제 깊은 보조개, 갈등하는 혓바닥, 존재감 확실한 향기가 떠올라 웃음이 피식.

나도 너에게 크게 외친다.

"엄마도 이니 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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