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 May 30. 2023

나를 사랑하기까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와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잘 모를 때에는, 내가 내가 아닌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어떤 느낌을 많이 가지는지를 살펴보면 좋기때문입니다.


저는 최근에, '나와 아닌 사람들'에 나의 아이들을 제외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적잖히 놀랐습니다. 내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관계가 바로 "부모-자식"의 관계입니다.


예전에 저는 아이들은 내가 잘 키워야하는 대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은 고쳐야하는 대상, 발전해야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지요. 그건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과 매우 일치합니다.


예전에 저는 항상 저의 단점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야하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저는 이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하는 거 아냐?라고 말이죠.


단점에 초점을 맞춘 삶은 헛헛하고 불안하고 외로우며,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이제는 압니다.




제가 20대 초반, 나름 괜찮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 괜찮은 회사에 입사하고도 과도한 자기결핍과 자기비난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소를 찾아갔지요. 상담사선생님은 무척 인자하셨어요. 저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고, 내가 얼마나 좋지 않은 대학을 나왔는지(상담사선생님과 같은 대학이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좋지 않은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입사때 2000:1의 경쟁률이었습니다)에 대해 이야기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선생님은 당황하셨지요. 그리고 제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세요"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때 선생님께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도대체....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이십 대 초반, 마음 깊은 이 질문이 지금까지의 제 삶으로 이어주고 있습니다.




어릴 적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엄마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어요.

아빠도 친구 만나랴, 술마시랴 바쁜 사람이셨어요.


어릴 적 저를 떠올리면,

너른 벌판에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언제 혼날지 몰라 주변을 경계하고 있지요.


엄마는 긍정적인 관심보다 부정적인 관심에 많은 비율을 두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 말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는 엄마는 피하고 싶은 존재였어요. 엄마와 이야기를 하면 항상 혼이 나고, 제 마음에는 항상 억울함만 남았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4학년 즈음이었을 때, 엄마가 제게 설거지를 하라고 하시고 외출을 하셨습니다. 저는 설거지를 했죠. 집에 돌아온 엄마는 제가 설거지를 하다 싱크대에 튀긴 물을 보시고는

"싱크대에 물을 닦지 않으면 설거지를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라는 말을 하시며 혼을 내셨습니다.


저는 처음 알았어요. 싱크대에 물을 닦아야한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 깊이 억울함이 올라왔지만,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어요. 그 억울함을

"나는 설거지를 못한 사람이야."

"나는 잘 못하는 사람이야."

"더 잘하면, 내가 이런 말을 듣지 않겠을거야."

라는 말로 덮어버렸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모의고사를 치면, 수학을 뺀 다른 과목들은 거의 다 만점을 받았습니다. 수학학원을 다니고 싶었어요. 좋은 대학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어요. 좋은 대학에 가면, 내가 좋은 사람임을 인정받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IMF로 기울어진터라, 저는 학원을 다닐 수 없었어요.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엄마 바지 주머니에  "수학 학원 다니게 해주세요"라고 쪽지를 넣었지만 엄마로부터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학시절,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 힘든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에 엄마랑 다툼이 있었어요. 엄마가 제게

"니가 다니는 그깟 대학이 뭐 잘났다고 유세를 해?"

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충격이었어요. 나는 이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대학을 자랑스러워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오히려 내가 괜찮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엄마가, 이렇게 말을 하다니...


몇달 뒤, 재수를 하겠다고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너 참 이기적이네. 니 생각만 하고"




저는 타고 나길, 타인의 말과 시선에 예민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매우 큰 사람이죠. 그런 제가 우리 엄마를 만나, 그 성향이 더 강해지고 깊어졌을 거예요.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시절도 많습니다. 문득문득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다 엄마 때문이야"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오르기도 합니다.



내가 바라는 사랑을 주지 못한 엄마이지만,  

엄마는 엄마의 사랑을 제게 보내줬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저는 살아있을 수 있고,

엄마도 엄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람임을 되뇌입니다.



사랑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넌 이게 잘못됐으니 바꿔야해!는 사랑이 아님을.



저희 아이들이 설거지를 했는데 싱크대에 물이 뭍어있다면 저는 어떻게 말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머! 설거지했네? 설거지해줘서 고마워."

저는 싱크대에 물이 뭍어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집이 힘들어 학원을 보내줄 수 없는데, 학원을 보내달라는 아이의 쪽지를 받으면 어떻게 말할까?도 생각해봅니다.

"쪽지 잘 읽었어. 엄마한테 말하기 힘들었을텐데, 말해줘서 고마워.

공부를 잘하고 싶어하는 니 마음이 기특하고 대견했어. 너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니가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엄마가 형편이 어려워서 지금 당장 학원을 보내주는 건 힘들 것 같아... 너무 미안해.  마음이 아프다.

수학 공부가 어려워? 어떻게 하면 수학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엄마에게 바란 건,

부족하고 실수한 나에게

빙그레 웃어주는 미소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힘들 땐 내가 도와줄게...

이 두 말이 제 삶에 너무나 간절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깊은 사랑을 배우고 삶에서 실천하기"라는

제 삶의 과제를 더 잘 실현하기 위해

사랑에 민감한 제가 사랑에 둔감한 엄마를 선택했나봅니다.



덕분에 저는

나를 저주하고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등 돌렸던

나 자신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진실로 나를 사랑하고, 나의 편이 되는 법을 배우고

제 자신과 저의 아이들에게

"실수해도 괜찮아. 힘들 땐 내가 도와 줄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행동의 실수가, 존재의 실수로 여겨지 않는 것이 바로 진짜 사랑임을 배우고,

제 자신과 저의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법을 실천하는 기회를 가지게 됐습니다.




덕분에 저는

내가 바라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해준

엄마를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