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열일곱의 나는 스물 일곱쯤 되면 삶의 방향에 대한 혼란을 정돈하고 차분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안정감 있는 어른이 될 줄로만 알았다. 열아홉에는 대학에 가면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을 줄 알았고, 졸업을 앞둔 스물 넷이 되었을 때는 직장을 가지면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마침내 스물 다섯에 교단에 섰을 때는 불안했던 삶이 비로소 무탈하게 안정권에 접어들 것이라 착각했다.
그토록 꿈꿔왔던 일의 현실에 닿았지만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과 허탈함을 느끼는 날들이 교차되어 오갔다. 불합리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 앞에 때론 무력해질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해사한 웃음을 마주하는 순간이 먼지쌓인 마음을 털어내곤 했다. 젊음을 다 바쳐 온종일 이 아이들과 부대끼며 희노애락을 나누는 것이 좋아서 하루 하루를 살아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직 더 자라고 싶은데, 더 성장하고 싶은데. 수업과 상담과 회의와 기숙학교라는 특성상 예측불허로 수시 발생하는 비상상황들이 진땀나게 엉켜진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업무 2막의 시작이었다. 2년간 퇴근 후 매일 최소 3시간 이상을 다음날 수업 준비에 쏟았다. 그리고 정신차려 보면 다음날을 위해 눈을 붙여야 할 시간.
교사로서의 정체성만 남았고, 개인의 삶은 사라졌다. 당장 눈 앞에 주어진 일들에 치여, 소중하게 골라 주문해 둔 책 한 권을 마음 편히 읽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내가 무엇을 꿈꾸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함을 느끼는지,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돌보는 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맡겨진 일들 앞에 부끄러움 없이 매일을 성실하게 살았으나, 밤마다 잠에 드는 순간까지 홀로 치열한 생각의 사투를 벌였다. 아직 능력도 경험도 부족해서 지치는 거겠지, 연차가 쌓여가면 일이 좀 더 손에 익고 편안해지겠지. 그때의 나는 여전히 지금처럼 성장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을까? 아니면 편안함에 잠식되어 흐르는 대로 살아가려 할까?
후자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이십대가 그렇게 흘러가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밤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양이와 고라니 울음소리의 합창을 들으며 이래저래 고민하다 잠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이 지나 첫 직장에, 인생 첫 사직서를 제출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자 발걸음을 떼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영어 시간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라는 시를 배운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어언 10년이 가까이 지난 시점에 두 갈래 길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 덕분일까. 이 시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다니곤 했었다. 결국엔 영어를 전공해 밥벌이를 하며 살았지만 그 시절에는 시에 나오는 단어들조차 다 알지 못해 사전을 찾아가며 이해했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인생에 대해 뭐 그리 깊이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내가 선택해 지나온 길이 있다면,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으나 결국 선택하지 않은 길들도 있다. 생각해 보면 선택에 중립이란 없는 것 같다. 시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하기에 다시 돌아오기에는 기회비용이 꽤나 크니까 말이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JTBC의 <비긴 어게인 코리아>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이 GOD의 '길'을 부르는 장면을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을 담아 부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인지 작은 실수를 한 헨리. 함께 목소리를 더하기로 했던 크러쉬는 한 음절도 떼지 못하고 목이 메어 있었고, 마침내 노래가 마쳤을 때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를 토닥이며 결국엔 함께 글썽이던 멤버들. 굳이 눈물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함께한 관객들,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바라보던 나에게까지도 지릿하게 전이된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정말 내게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예인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오, 지금 내가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GOD, <길>
왜 우리는 이 '길'이라는 키워드에 이토록 공감할까. 고작 한 음절의 단어를 마주했을 뿐인데 수많은 상념들이 스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선택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인생에 가지는 함의가 그만큼 크고 묵직하기 때문이겠지.
무탈하게 걸어가던 길 앞에 새로운 갈래 길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겠다고 선택했다. 보이지 않는 길의 끝을 어떻게든 멀리 바라다보려 애썼지만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나름대로 계획했던 방향들은 예상치 못한 전염병으로 인해 꼬이고 틀어져 버린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굴러가고 있다. 우당탕탕퉁탕, 부딪히고 찌그러지며 시행착오를 겪어도 어찌되었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길이 혹여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와 같다 해도 잘못 들어선 막다른 길만은 아니길.
끝이 바라다 보이지 않아도 이어져만 있다면, 그래서 계속 걸어갈 수만 있다면, 오늘도 오늘의 길 위에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