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느낀 온라인 플랫폼과 O2O 플랫폼의 차이
이 글의 BGM으로는 세븐틴의 "HIT"를 권합니다.
내일의 널 오늘이 만들 거야
Online Offline 모두 도배해
한계를 넘어선 우리는 HIGHER
거친 새벽을 끝없이 달려
- HIT 가사 中
이직 후, 주위에서 회사의 문화나 PO로서의 업무에 대해 많이들 물어봐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
내가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입사 후 가장 어렵게 배워나갔던 점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O2O 플랫폼. 즉 탐색 PO로서 각 유저의 오프라인 경험까지 고려하며 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온라인 플랫폼은 구매 - 배송 - 소장의 개념이고,
O2O 플랫폼은 예약 - 입실 - 대여의 개념이다.
처음엔 이 차이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 구매든 예약이든 결제하고 나면 유저가 자신의 상품을 소유(own)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구매를 소장으로, 예약을 대여로 대입하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때 한 개발자분이 나에게 기가 막힌 예시를 들어줬다. 클래스101(= 온라인 플랫폼)과 여기어때(= O2O 플랫폼). 둘 다 유명 셰프의 라면을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온라인 플랫폼은 편의점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구매가 가능하며, 원하면 내가 직접 이동할 필요 없이 집까지 직접 배송도 받아볼 수 있다. 결제하여 내 것이 되면 소장의 개념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끓여먹어도 되고, 냉장고(= 내 정보)에 넣어놓고 나중에 내 시간이 편할 때 꺼내 먹어도 된다. 수강 기한, 즉 상품의 유통기한만 지키면 된다.
대신 상품에 따라 다 넣고 끓이는 입문 난이도부터, 어떤 재료는 손질이 필요한 중급 난이도 등 조리(= 수강) 난이도에 차이가 있을 순 있다. 이러한 고려사항들을 고객이 잘 탐색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이렇듯 온라인 플랫폼은 탐색부터 구매, 소장(=수강) 및 등록과 판매에 있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반면 O2O 플랫폼은 레스토랑이다.
그래서 일단 플랫폼 입장에선 사장님과 매니저를 별도의 유저로 분류하고 권한 관리를 해야 한다. 또 공간의 운영 요일과 시작 및 종료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레스토랑을 이용할 수 있는 고객의 체크인-체크아웃 시간을 별도로 고려해야 하며, 중간에 공간 운영을 위한 브레이크 타임도 불가피하다. 그리고 공휴일이라는 변수도 있다.
게다가 레스토랑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착석할 수 있는 자리의 수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테이블의 회전율이 중요하다. 무한대에서 하나씩 sold-out 되는 방식으로 재고관리를 하던 온라인 플랫폼과는 달리, 앞선 고객(= 대실)이 라면을 다 먹고 그 자리를 비워줘야, 그다음 고객(= 숙박)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소장 대신 대여의 개념이며, 탐색에 있어 날짜와 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하나를 결제하더라도 상품의 개념으로는 똑같은 공간이라도 경치가 좋은 루프탑일 수도 있고, 화장실 바로 앞인 애매한 자리일 수도 있기 때문에 추가 옵션이 존재하게 된다. 또 1인이 아이일 수도 있고, 어른일 수도 있다. 일반 레스토랑이라면 어른 1인의 가격이 더 높겠지만, 키즈 레스토랑이라면 반대로 아이 1인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위치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는 레스토랑이라도 나와 관계없는 지역에 있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O2O 플랫폼은 날짜와 시간, 장소 그리고 인원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직하자마자 한동안 캘린더와 지도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탐색 UX의 변화였다.
날짜와 시간, 인원은 유저가 직접 선택할 수 있지만 장소는 앱 기기 접근 허용 권한을 받아야 한다. 지역의 위치에 기반해 분류할 수도 있지만, 반경을 기준으로 상품을 분류할 수도 있다. 수도권 페르소나와 지방 페르소나가 겪는 탐색 여정이 전혀 달라서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내게는 장소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고, 솔직히 전보다 일을 하는 게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기획할 때 더 힘들다 (ㅠㅋㅋㅋ) 그렇지만 오기도 생기고 재밌는 점도 분명 있다. 내가 이직할 때 고려하지 못했던 점이라, 내 구독자 분들은 취업이나 이직 시,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이 긴 글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직 후 여기어때에서 호스트를 위한 시간제 판매 등록 시스템과, 게스트를 위한 시간제 예약 시스템을 만들었다.
아직도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 원스토어에 심사요청을 보내고 완료되면서 업데이트되던 순간이 선명하다.
판매와 예약 시스템뿐만 아니라 내부 어드민, 시간 단위로 예약할 수 있게 되면서 변경되는 모든 탐색 영역들도 함께 개선했다. 탐색뿐만 아니라 결제와 정산에도 영향을 받는 피처라 꽤나 긴 호흡을 갖고 여러 유관부서와 협업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꽤 많은 성장과 성과를 이루었다.
사실 나는 여기어때에 UX Writer로 지원했었다.
전 직장을 다니면서 PO라는 직무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이 주 업무다 보니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일을 잘하면 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고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힘들고 외로운 직무 같다. 그래서 좀 더 메이킹에 집중할 수 있는 UX Writer를 꿈꿨고, 국내에선 채용이 별로 없기 때문에 기회가 열린 틈을 타 뱅크샐러드와 여기어때에 지원했다.
뱅크샐러드는 최종 면접에서 UX Writer 보다는 Product Manager가 더 잘 맞는 것 같다며, PM 업무를 권하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주셨다. 그땐 매니저에서 메이커가 되고픈 목적이 컸기 때문에 확실하게 거절했고 떨어졌다.
하지만 뒤이어 여기어때도 최종 면접에서 PO로 합류할 것을 제안 주셨고, 시니어분들이 보시기에 내가 PO로서 잠재력 있다는 제안은 꽤나.. 의외였다. 당시 면접관 분들이 내 브런치 글들 속 사고의 흐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주셨고, 합류 후 내가 일하게 될 팀과 업무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셨다.
과분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오퍼레터를 받고도 한 달 가까이 대답을 보류했다. 오랜 고민 끝에 아래 5가지 장점을 고려해 여기어때에 합류하게 되었다.
1. PO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개발, 영업, 마케팅 등 전 직무 시니어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환경인 점.
2. 흑자 전환 및 엔데믹 환경에서 앞으로 성장할 일만 남은 시장인 점.
3. 앱 기반 서비스라 기획부터 배포까지 새로운 프로덕트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점.
4. 연봉인상, 스톡옵션 제공뿐만 아니라 재택근무와 인센티브, 포인트 등 보상과 복지가 좋은 점.
5. 고도화뿐만 아니라 신규 프로덕트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는 점.
클래스101은 개개인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고, 도전과 실패를 통한 건강하고 솔직한 피드백 및 회고 문화가 잘 갖춰져 있다. 애자일하게 제품을 개발하고, Data-Driven이 가능한 환경이며 무엇보다도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내게 가장 재밌고도 적합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직 직후, 후회도 많이 했었다. 정말 못된 본성인 게, 있을 땐 몰랐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았달까? 클원에서 당연했던 장점들이 부재한 것에 대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어른으로서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나의 이상이 현실과 다를지라도 그 갭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어딜 가든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감사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The journey is the reward. 여정 그 자체가 보상이며,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하자 애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이 시작된 서두에서 두 회사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것이다. 각자 가진 강점이 다를 뿐, 둘 다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나의 시간들을 함께 했던 소중하고 감사한 일터이다. 더 많은 분들이 서비스의 행보와 채용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길고 길었던
이직 회고 마침.
사내추천에 관심 있는 PO & 개발 직군 분들은 브런치 작가에게 제안하기 기능을 통해 커피챗 신청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