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인턴 PO의 미생일기
이 글은 지난 포스팅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OO의 인턴으로 갑니다]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BGM으로는 국민가수 아이유의 <Celebrity>를 권합니다.
넌 모르지 떨군 고개 위
환한 빛 조명이 어딜 비추는지
느려도 좋으니 결국 알게 되길
The one and only, You're my celebrity
다들 입사 첫 날을 기억하는가? 나는 긴장한 나머지 엘리베이터에 우리 집 층수를 눌러버렸다 ^^,, 건물의 보안상 엘리베이터 밖에서 원하는 층을 누를 수 있는데, 첫 출근부터 길을 잃어 2분을 늦었다.
나 포함 개발자, QA, 일본 콘텐츠 PD, 출판 편집 등 여러 직무를 가진 13명의 동기들이 입사했고, 도착하자마자 본격적인 온보딩이 시작됐다.
클원이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인 만큼, [클둥학개론]이라는 직원 전용 입사 온보딩 클래스를 제공한다.
고객처럼 직접 수강하고, 미션 댓글을 작성하며 자연스럽게 서비스 사용 방법을 익힌다. 콘텐츠는 노션과 슬랙 툴 강의부터 5년차 고인물의 업무 브이로그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클둥학개론 수강이 입사 첫날 업무 중 하나라 나는 내 자리에 도착했고, 옆 자리 백엔드 개발자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가 내게 처음 한 말은 "모르는 거 있으면 다 물어봐도 돼, 스테이시!"였고, 나는 인턴 PO답게 [클둥학개론] 완강을 위한 첫 우선순위이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뉴비들을 위해 내가 알려준다,, 입사 전 미리 갤럭시북부터 맥북 프로나 아이맥 등 원하는 개인 장비를 고를 수 있고, LG 듀얼 모니터의 전원은 하단 중앙에 숨겨져 있으며, 아래에서 위로 눌러야 한다 ʕʘ‿ʘʔ . . .
의도치 않게 처음부터 아주 사소한 질문을 해버렸더니, 그 이후로는 모르는 걸 물어보거나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심지어 본인이 모르는 건 담당자에게 같이 찾아가 직접 물어봐주는 등 그는 내가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계속 챙겨주었다.
글의 편의상 그를 '미어캣'이라 부르려 한다. 내가 버그를 찾거나 모르는 게 생겨 "어?" 할 때마다 그는 미어캣처럼 내 모니터를 슉! 하고 0.1초 만에 바라본다 (ㅠㅋㅋㅋ) 실제로 미어캣은 영역과 전략을 중시하는 동물로,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 끝없이 땅을 파고든다. 그리고 나에겐 답을 찾기 위해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문제를 파고드는 그의 모습이 꽤 닮아보였다.
아무래도 비전공자라 IT 용어도 익숙치 않고 개발도 잘 모르다 보니, 서비스 기획을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헛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일을 하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입사할 때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은 바로 '개발자와의 소통'이었다.
이 날 새로 개업한 분식집을 점심으로 주문하려는데, 아직 배달 어플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본사 홈페이지를 보며 각자 메뉴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리김밥 홈페이지의 GNB가 뭉툭하게 내려와 있어서 스크롤을 내려도 자꾸 김밥을 가리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 그냥 지웠다.
어버버 한 내게 미어캣은 평소 쿠팡 웹에서도 광고를 다 지우고 쇼핑한다고 말했다. 당시 내가 메인페이지와 상세페이지를 개선하는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런 고객은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결국 구매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편한 UX도, 세련된 UI도, 센스있는 UX Writing도 아닌 김밥 속 재료와 가격임을 깨달았다.
우리의 클래스 김밥도 장인 크리에이터의 손맛과 그만의 비법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2000개가 넘는 다양한 메뉴를 잘 구분함과 동시에 입맛이 각기 다른 고객들을 짧은 시간 안에 설득하는 메뉴판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프로덕트 오너는 mini CEO다. 나는 3개월 인턴이니 초초초 초미니 ceo로서 (ㅠㅋㅋㅋ) 원조 클래스 맛집 클원이 심플하면서도 개개인에게 설득적인 메뉴판을 만들면 좋겠다. 그럼 신규 고객이 실패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내 입맛에 잘 맞네!' 하며 계속 방문하는 단골집이 되지 않을까? 그 날 허니치킨김밥을 먹으며 개발보다 고객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나의 1인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입사한 월요일에 피플팀이 목요일인 미어캣의 생일을 미리 축하한다며 작은 케잌을 주고 갔다.
그래서 월, 화, 수 동안 나는 그가 무엇을 좋아하거나 필요로 하는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알아냈다.
그리고 나는 입사 직전, 네이버 나우에서 아이유 팬클럽인 유애나 키트 4기 언박싱 방송을 진행한 바 있다. 유애나 한정 아이유 포토카드와 함께 나는 클래스101에 대한 애정과 인턴 PO로서의 진솔한 마음들을 손편지에 담았다. 그리고 그 다음주 월요일. 생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내 진심을 건넸다.
나는 개발을 잘 몰라서 앞으로 진짜 별 것 아닌 질문들을 많이 할 것 같은데, 그때마다 스테이시가 아니라 아이유가 질문한다 생각하고 쉽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서로 빵터짐 (ㅠㅋㅋㅋ) 비장의 소통 카드는 사실 별 것 없다. 그저 함께 잘 일해보고 싶은 내 진심과, 그가 좋아하는 아이유 포토카드였다.
그 이후 눈높이 설명과 더불어 왠지 모를 다정함이 추가되었다. 사실 나는 인턴이고,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줘서 늘 고마웠다.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고, 내가 빠르게 회사와 업무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도움이 컸다. 이 글을 빌어 매일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미어캣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넌 모르지 떨군 고개 위
환한 버그들이 어딜 비추는지
느려도 좋으니 결국 알게 되길
The one and only, You’re my back-end celebrity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스101 복지는 사내 도서관과 자사 콘텐츠 무제한 수강이다.
출근 전에는 클원의 명상 클래스를, 퇴근 후에는 도서관이나 라운지에서 UX/UI와 IT 지식 클래스를 듣고 있다. 지난주에는 프론트엔드 개발자 동료들의 위클리에 참석해 10분 세미나도 들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ㄴʕʘ‿ʘʔㄱ x랑 y 나올 때부터 졸렸던 나레기,,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결국 개발자도, 기획자도 서로 계속 질문하고 노력하며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최근 [비전공자를 위한 이해할 수 있는 IT 지식] 책을 쓰신 최원영 크리에이터님께서 클래스를 오픈하셔서 조금씩 듣고 있다. 수업 내용에 fn+F12 배워서 뚜껑 열었더니 개발자 채용공고 뜸 (ㅠㅋㅋㅋ) 미어캣을 도와줄 백엔드 개발자분들이 많이 지원해주셨으면 좋겠다. 모든 게 어렵지만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고, 나도 이제 리김밥의 GNB를 지울 수 있다!!!!!
솔직히 위축된 적 없다면, 상처받은 적 없다면 그건 거짓말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하는 일들이 재밌고, 함께하는 동료들 덕분에 행복하다. 크고 작은 별들이 각자의 빛을 내며 밤하늘을 수놓듯,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 자신이 가진 빛을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잊지 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
You are my celeb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