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긍정 Jul 11. 2021

하고 싶은 일 vs 해야 하는 일

Go with the flow

이 글의 BGM으로는 로꼬 X 우원재의 Balance를 권합니다.

적당한 거 말고 New Balance
성공이 반전이라면 끝까지 봐
예고대로 흘러간 적 없으니까
내 방식대로 Balance   

- 로꼬 X 우원재 Balance 가사 中





최근 내 글의 한 부분을 보시고 평소 관심 있던 다른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그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초심 가득한 첫 인턴 일기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

뽀시래기 인턴의 목표는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이다. 여기서 '찾는다'는 의미는 카테고리 분류와 검색, 필터 등을 고도화하거나 사용성을 개선해 정말 잘 찾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그만큼 다양한 클래스가 오픈될 수 있게 영업과 마케팅에 의견을 구하는 동료들을 돕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입사 후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한 첫 번째 일은 고객들이 최근 검색한 키워드 중 결과값이 없는 데이터의 원인을 파악해 백엔드 개발자와 동의어를 분류하고 처리한 작업이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지보수에 불과하다.

- 4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OO의 인턴으로 갑니다.  내용 中



이 글을 통해 검색 관련 업무를 맡을 PM으로 제안을 받았는데, 더 신기한 건 3개월 전 다짐처럼 진짜 위와 같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내 담당은 아니었다.) 동시에 안타까운 건 마지막 문장처럼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지보수에 불과하다는 것..


검색 개선만 맡아 제대로 Deep-dive 해보고 싶어서 회사에 여러 의견을 내보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일들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에 인턴기간 3개월 동안 많이 실행해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껏 하고 싶지만 못했던 일들이 다시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나 UX writing 하게 해준다며..)






 스테이시, 우리 사이드 프로젝트로 전시회 하는데 보러 올래?

하고 싶은 일 vs 해야 하는 일. 주어진 시간과 리소스는 한정적이다. 그럼 어떤 선택이 더 현명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근데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싶지 않은  아닌데?


하고 싶은 일도 하기 싫어질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더 잘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이건 어딜 가도 똑같이 겪는 과정일 테니, 되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또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곳인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담 클원은 이미 충분히 그런 회사인데?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옆자리 프로덕트 디자이너 동료가 한 초대장을 건넸다. 

우리 회사의 프로덕트, 브랜드 콘텐츠 디자이너분들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일하는데, 사이드 프로젝트라니! 심지어 굿즈뿐만 아니라 전시까지 준비했다는 걸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예고에서 일해보지 않았는가. 전시를 한다는 건, 규모와 상관없이 정말 큰 작업이다. 그래서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그들의 전시장으로 향했다.



구식 모텔을 개조한 전시장


해당 전시명은 [THREE POINT OF VIEW]로 세 디자이너의 시선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전시는 "What Is This Love? : 이 사랑은 무엇일까?"로 등장인물 '예빈'과 '민준'의 카카오톡 대화로 시작된다. 몽글몽글한 분위기 속 연락은 시작되고 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확실하게 마음을 표현하지만, 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답장이 늦어지고 심지어는 회의 핑계를 대며 장시간 잠수를 탄다. ^-^ ㅎ. (ssangnomsikki)



예빈과 민준의 사랑을 표현한 포스터, 전시중인 그들의 대화.

예빈의 마음은 서로 섞여있는, 끈이 풀린 구두와 함께 "What Is This Love?"라는 카피로,

민준의 마음은 셰이크 속 꽂혀있는 핫도그와 함께 "What Was This Love"라는 과거형 카피로 표현되었다. 시대 여관이 모텔촌을 개조한 전시장이라 그런지 빈티지함과 끈적함이 더해진,, 약간은 섹슈얼한 느낌의 전시였다.


10분간 카카오톡 대화 비디오를 다 보고 나면 예빈의 입장에서, 민준의 입장에서 제목을 지어 포스트잇을 붙이는 참여형 이벤트를 진행했다. 다들 "김긍정 작가님, 한 줄 적어주시죠!", "스테이시, UX writing 실력을 보여줘!" 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고민 끝에 나는 두 카피를 적어냈다.


"모든 사랑은 발자국을 남긴다"

"모든 사랑엔 유통기한이 있지."






두 번째는 "The inn [적] : 여관에 남은 흔적"으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시대 여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에 대한 전시였다. 같이 간 개발자와 해당 작가님의 디자인 포스터 속 영수증 목록을 함께 읽으며.. 어색해졌다.. ^^.. (멀찍) 위 전시는 거리두기 수칙을 준수합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을까?


달력을 찢거나 영수증 빌지에 도장을 찍으며 나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참여형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종이나 테이프마저도 공간과 잘 어울리는 빈티지한 소재였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작가님의 전시를 보며 우리는 일부러 흔적을 남겼지만, 해당 포스터 속 흔적은 자연스럽게 남겨진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어떤 흔적들을 남겼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 전시는 "Flow project : Just go with the flow"로 나와 같은 팀의 디자이너님이 준비한 전시였다.


젊음의 치열한 일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있는 힘껏 거슬러 오르기를 선택하기보다는 그냥 흐름을 따르는 것이 미학일 때도 있다.
유연하게 흘러가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물의 여러 가지 형태를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 작가 이영민


Go with the flow

'오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그녀만의 브랜드 flow와 사람형 er을 합쳐, 유연하게 흐름을 타는 사람들을 flower로 정의했다. 직접 만든 flow 칠링백에 느낌 가는 대로 마음에 드는 꽃과 리본 컬러를 고르면 끝! 예쁘게 꽃을 다듬을 동안 옆 코너에서 다양한 flow 굿즈들도 구경할 수 있다.



그녀의 전시를 통해 느낀 건, 물은 담겨있는 그릇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와인병에 담긴 물도, 칠링백에 담긴 물도, 그녀가 아크릴 공예로 표현한 물도 결국 물이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지만, 담기게 될 그릇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되물었다.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그릇은 어떠한가? 또 다른 그릇은 어떠한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어떤 모양과 크기의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실 그릇보다는 담아야 할 본질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 + 해야 하는 일

전시기간 내내 잠을 잘 못 잤다는 그녀의 눈은 되려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고 있던 고민처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 다 하면서 그 밸런스를 잘 맞춰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진짜 일을 잘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삶이 아닐까? 진정한 워라밸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날 그녀를 보고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또 곱씹은 하루였다.


배울 점 많은 동료들이 곁에 있고, 그들과 함께한 이곳에서 나 역시 많은 발걸음과 흔적들을 남겨왔다. 전시를 보고 쓴 글처럼 모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적어도 그 유통기한은 내 사랑이 식었을 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제야 회사 슬랙에 남아있는 수많은 pj 채널들의 존재 이유를 체감하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클원의 조직 구성은 pj로 시작해 tf를 거쳐 cell로 확장된다.) 그래서 여러 고민 끝에 나도 만들었다.






 #pj-검색-조지기

시스타가 부릅니다. 나 혼자.

참고로 나는 '조진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부신다'는 뭔가 부스러기가 남을 것만 같고, '뽀갠다'는 두 동강 나는 느낌이지만, 조진다는 진짜 싹 다 눌러 찍어 조져버린다는 의미로다가.. ㅎㅎㅎ (•̀ᴗ•́) و ̑̑



사실 유저는 '검색'하면 검색창만 떠올리겠지만 검색에는 자동 검색, 추천 검색, 인기 검색, 연관검색 등 다양한 기능들이 있고 그에 따른 노출 로직과 제외 기준, 결과 화면 등이 다 다르다. 또 검색 유입 대시보드나 내부 알림 등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위한 기능도 개선하고 싶다. 


그래서 개선/기획하고 싶은 기능들과 읽어보면 좋을 자료와 책, 오픈된 다른 회사 정책과 검색 PO나 검색 엔지니어 채용 공고 속 필수 자격 등 pj에 도움될 내용을 발견할 때마다 일단 올려놓고 있다. (클원은 기존 정책이나 스펙, 작업이 확정된 것들은 Jira와 Confluence, 논의가 필요한 것들은 Slack과 notion으로 관리한다.)



이제 이 글이 발행되면 친한 개발자 동료들이 바로 시작해보자고 할 것 같아 일단 채널 포스트 권한을 막아뒀다. ʕʘ‿ʘʔ 이건 아직 스테이시만 진행하고픈 pj다. 세 번째 전시에서 그릇에 대해 고민할 때 느낀 건, PM이면 내가 맡은 도메인이나 프로젝트를 목표에 맞게 잘 매니징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일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PO를 택했으니 전체에 초점을 두고 일해야 하며, 회사에는 이미 진행 중인 OKR과 로드맵이 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전체를 고려했을 때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뿐이다.

당연히 중요하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우선순위는 300명이 넘는 전체의 리소스와 팀의 진행상황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긴 시간 서로 머리를 맞대가며 정한 선택들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해가며 들어달라고 말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젠 '나 이런 일을 하고 싶어!'라고 말만 꺼내고 어리광만 피우는 게 아니라, 조금씩 시간 날 때마다 재밌게 공부하고 있다가


전체를 고려해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 왔을 때 '내가 준비된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게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둘 다 잘할 수 있는 방법이자 올바른 애티튜드가 아닐까?






 Go with the flow

이렇게 꽃 들면 기분이 조크든요.

그래서 전시 내용처럼 일도 내 삶도 있는 힘껏 거슬러 오르기보다, 유연하게 흘러가 보기로 결심했고 선택했다. 아까 말했듯 전체를 고려하니 내가 어리광 피우느라 미뤘던 일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내일은 진짜 진짜 진짜 일찍 일어나야지...  



뽀시래기 인턴 스테이시는 오늘도 성장 중입니다. 기나긴 고민 마침.

뭘 하든 똑같다면 긴말은 입 아퍼
그냥 내 거 하는 거지 what's your priority
live your life 그래 정해진 건 없고
내 방식대로 Balance

- 로꼬 X 우원재 Balance 가사 中
이전 23화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는 말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