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힘든 swim 그럼에도 계속해서 Kill these waves now 다시 우아한 척 백조처럼 dive 난 black swan
- Swan Song 가사 中
파도 앞에서 힘없이 떠내려갈 때.
나는 살면서 세 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아찔했던 첫 기억은 내가 6살 정도일 때.
친척들과 떠난 여행에서 거센 파도 한 번에 나는 힘없이 바다에 빨려 들어갔다. 나를 구하러 필사적이던 사촌오빠들이 하나둘씩 다리에 힘이 풀려 나를 놓쳐가던 장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물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너무 살고 싶었다. 있는 힘껏 허우적대 혼자 먼저 바다를 빠져나왔다. 겁에 질려 목소리가 나질 않아 도움도 못 구하고, 그 자리에서 눈물만 줄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은 대학교 4학년 때.
계절학기로 떠난 미국 롱아일랜드의 해변에서 한 친구가 장난으로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겼고, 살면서 본 적 없는 엄청난 파도 앞에 우리는 함께 떠내려갔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911이 출동해 "Are you okay? Do you remember your name?" 하며 묻고 있었다.
미국에서 정신을 잃어갈 때, '여기서 죽으면 내 시체는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다. '롱아일랜드에 묻히면 가족들이 찾아오기 힘들 텐데', '내 저작권료는 누구한테 위임되나?' 등등.. 삶과 죽음의 경계는 한순간이었고, 그 앞에서 항상 인간은 나약한 존재였다.
작지만 기댈 수 있는 확실한 존재.
나는 위 사건들을 겪은 후, 내 인생에 파도에 맞서는 일은 다신 없을 것이라 장담했다. 휴가시즌이 오면 바다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호캉스를 떠난 한 호텔의 수영장 구석에서, 나는 한 부표를 발견하게 되었다.
출처: AK MALL 아레나 킥보드
상체를 기댈 수 있게 약간의 홈이 파진, 강렬한 색감의 아레나 부표였다. 나처럼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이 부표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처럼 훅훅 앞으로 나아가진 못해도, 물이라는 두려운 환경에서 용기 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약 2시간 동안 발버둥을 쳤고, 나도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쿠팡에 '부표'라고 검색하니 나오질 않았다. 정식 명칭으로는 '키판', '킥보드', '헬퍼' 등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헬퍼'라는 워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말 그대로 약간의 도움만 주는 것일 뿐, 결국 용기내고 행동해야 하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평생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몸을 내던져야 하는 수많은 환경을 만나게 될 텐데
이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결심, 노력 같은 게 아니라
작지만 기댈 수 있는 확실한 존재.
헬퍼가 아닐까?
당신의 커리어엔 '헬퍼'가 있습니까?
이번 4월이 감사하게도 '헬퍼'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한 달이었다. 오랜만에 세 지인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내 프로덕트 매니저 커리어에는 환경은 바뀌어도 '헬퍼'같은 존재들은 늘 있었다.
첫 번째 지인은 K-pop 작사가였던 나를, IT업계라는 새로운 바다로 이끌어준 부트캠프 멘토였다.
그는 내게 '스테이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아무 경력도, 경험도 없던 내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사람이자, 내가 처음으로 의지한 존재였다. '멘토', '선생님', '강사'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헬퍼'가 가장 적합한 것 같다. 그는 취업 기간은 물론 그 이후로도 내가 고민되는 지점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주며,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작지만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한 존재가 되어주었다.
두 번째 지인은 그렇게 입사한 첫 직장에서 내가 가장 '닮고 싶었던' 프로덕트 매니저였다.
사실 퇴사하고도 만날 수 있는 동료는 흔치 않고, 그중 의지할 수 있는 동료는 더더욱 흔치 않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지금의 직장생활에서 우연히 내 생각이 났다며 연락을 주었다.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금은 각자 달라진 환경에서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다 더 큰 환경에서 오래 이 일을 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몇 년 뒤의 나를 상상해 보게 되었다. 미래가 두렵지 않게 된 것 역시, 언제든 작지만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지인은 나도 잊고 있던 내 모습을 일깨워준 동료였다.
직전 직장에서의 취업사기 와 공과 사 구분 없이 자존감을 떨어트리던 말들은 내게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주었다. 일은 물론이고, 내가 좋아하던 글도 쓸 수가 없는 마음상태였다. 결국 출판 준비는 멈추었고, 유일한 취미였던 브런치 글도 쓸 수 없었고, 프로덕트 매니저도 그만두려 했었다.
당시에 만난 그녀는 정신 차리라며 내가 얼마나 책임감 있고 추진력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였는지, 얼마나 재밌게 글을 쓰고 또 글쓰기를 좋아하던 작가였는지를 선명히 일깨워주었다. 진심 어린 응원에 나는 힘을 내 이직을 하였고, 환경을 바꾸자 정말 바보 같은 고민이었단 사실을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헬퍼'일 수 있다면.
4월에 만난 사람이 단지 위 세 명일 뿐, 커리어를 돌아보면 나에게는 정말 수많은 헬퍼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PM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내게 인턴을 제안했던 CPO님도 떠오르고, 나의 원페이저를 코드리뷰 하듯 매번 큰 모니터를 함께 보며 늘 피드백해주었던 시니어 PO분도 떠오른다. 밤늦게까지 함께 일했던 PM, 디자이너, 개발자, QA, DA, CX 등 나는 항상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추억하고 있다.
이 글은 한 번씩 연락 주는 동료들이 "왜 요즘은 브런치 글을 안 써요?"라고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쓸 땐 몰랐는데 안 쓰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겐 그동안 헬퍼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에게 나도 헬퍼처럼 작지만 확실히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다가오는 5월의 목표는 다시 글쓰기를 내 삶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현 직장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배포 후 최소, 평균, 최대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눈으로 보이는 정량적 성과는 자신감 그리고 원래의 나를 되찾게 도와주었다. 매일 아침 내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일 생각으로 눈을 뜨고, 매일 밤 배운 것들을 얼른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는다. 아! 잃어버렸던 내 모습이었다. 예전의 나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대견하고 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