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앱을 넘어 슈퍼앱으로
이 노래의 BGM으로는 한요한의 <1:00>를 권합니다.
대구 수성못에 가서 아무 데나 너와 누워 느껴봐
쏟아지는 차분함
나 너의 무엇이 좋은지 하나하나 생각하면
니 전부가 좋지
- 1:00 가사 中
보통 설날과 추석에만 대구를 가는 편인데, 한 번씩 방문할 때면 서울과 다른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하곤 한다. 지난 설의 발견은 카카오 T의 ‘공유 자전거’였다. 서울은 따릉이가 많은 편이고, 요즘 SWING사의 자전거도 간간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대구를 가면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카카오 T의 공유 자전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거의 독점에 가까울 정도로 카카오 T 자전거만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대구는 아직까지 지하철이 3호선까지 밖에 없다 보니 대중교통이 불편한 애매한 지점들을 공유 자전거로 편하게 오갈 수 있어 편했다.
처음 대구로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맛집마다 문 앞에 붙어있는 ‘대구로‘ 스티커 때문이었다. 보통 서울은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또는 ‘망고플레이트’ 스티커들을 볼 수 있는데, 의외로 대구는 다른 배달 서비스 스티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로 스티커가 가장 눈에 띄게 붙여져 있다.
대구시에서 운영하는 배달앱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주문량이 많고 순항하는 모양새였다.
마침 배달의민족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과 함께 방문한 터라 우리는 사장님께 궁금한 점들을 여쭤보았다.
사장님의 입장에서 배민은 가게배달과 배민1으로 나뉘게 되는데 이때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를 비교하면 지역앱이 더 저렴하고, 대구시의 ’ 아동급식카드‘ 결제가 가능해서 결식아동들이 가게에 방문하지 않고도 시에서 지원받은 배달비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호기심에 설치해봤다. 첫인상은 마치 배달의민족+타다+비마트+꾸까+캐치테이블+똑닥+대구 공식 블로그를 합친 슈퍼앱 같달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자.
전반적인 정보구조도와 UX 플로우가 배달의민족과 상당히 흡사하다. 익숙한 UXUI로 구성되어 있고, 대구로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동급식카드’ 결제가 된다는 점, 대구로에서 더 싸게 판매하는 매장에게 수여되는 ‘착한 매장‘ 배지, ‘식약처 인증’ 배지 등을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인구보다는 부모님 세대를 고려한 큼직한 아이콘과 폰트 크기도 눈에 띄었다. 또 대구에 위치한 가게만 있다 보니 ’ 골목상권‘, ’ 전통시장‘도 하나의 카테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였다.
하나의 시장 안에 각기 다른 가게들의 메뉴를 장바구니에 담아 한번에 결제 및 배송신청 할 수 있고, 심지어 온누리 상품권 충전 결제가 앱에서 가능하다. 유저들은 소상공인을 돕는 온누리 상품권을 통해 충전할 때도, 결제할 때도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앱을 통해 전통시장을 한 번이라도 더 써보게 되는 선순환이 그려진다. 심지어 음식점 예약도 된다. 원하는 음식점에 방문인원과 시간을 선택하면 간편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다만 대구로가 아직까진 배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식당 예약이 가능한 음식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택시호출 서비스의 경우 개인보다는 대구에 위치한 기업에서 임직원 거래/복지용으로 쓰거나, 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력을 맺는 등 B2B로 활발히 활용하고 있음을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대리운전을 해볼 일이 없어 잘 모르겠는데, 대구로에서는 ‘밀어서 대리 부르기’를 통해 앱에서 쉽게 대리운전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고, 안심메시지를 보낼 연락처를 미리 설정해 둘 수도 있었다. 택시와 대리의 경우 쿠폰과 마일리지까지 쌓을 수 있다. 시내버스와도 연결되어 있어 쉽게 버스 도착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버스가 없다면 바로 택시를 부를 수도 있다.
버스에서의 분실물을 한눈에 모아볼 수 있는 리스트와 신청 창구까지 연결해 단순한 앱 사용성의 편리함에 그치지 않고, 실용성까지 더했다. 게다가 '성서계대 쪽 구름이 멋있어요. 여유롭게 하늘 한번 봅시다', '토요일에도 근무하는 우리네 가장들 힘냅시다'와 같이 오픈채팅방까지 제공해지역 주민 간의 정보공유와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꽃이라는 상품 특성상 시들기 전에 빠르게 받아보는 것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입점된 가게들의 배송이 대구에서 출발하다 보니 훨씬 빠르게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꽃/화환 서비스에 장바구니 기능을 제공해서 ‘스승의 날’처럼 특별한 날 여러 군데 꽃을 선물해야 하는 날에 특히 유용해 보였다.
대구로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보니 1, 3, 5만 원의 상품권으로 원하는 생활 서비스에 쓸 수 있어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서비스들의 선물하기와 비슷하게 센스 있는 카드를 고를 수도 있고 메시지도 직접 남길 수 있어 좋았다. 결제수단으로는 신용/체크카드뿐만 아니라 네이버페이, 토스페이도 제공한다. 사용성이 편리하고 전반적으로 UX Writing도 깔끔하다고 생각되었다.
현재 진료 중인 가까운 병원부터 심야진료병원, 심야약국, 응급실 등을 빠르게 찾을 수 있어 좋았고 진료가 급하다면 바로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서비스 간의 연결성도 돋보여서 흥미로웠다. 아직까지는 베타버전이라 각 병원/약국들이 진료 중인지 문을 닫았는지만 확인할 수 있는데, 서울처럼 예약까지 가능하게 된다면 훨씬 편리해질 것 같다.
생활 서비스 외로는 대구시에서 발행하는 SNS 콘텐츠 및 공지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주로 대구에서 진행하는 행사 소식이 올라오는데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도 볼 수 있어 훈훈했다. 시에서 안내하는 정보들을 앱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강점이라고 생각된다. 앱에서는 목록만 살펴보고 자세한 내용은 웹뷰를 통해 해당 채널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대구시의 매체(블로그, 인스타)가 자연스럽게 홍보되기에도 좋아 보였다.
지역앱은 보통 연도별 예산에 맞게 외주개발로 운영되다 보니 기능 개선이나 업데이트의 주기가 잦기가 힘든데, 이번 글을 쓰려고 사용해 보면서 느낀 점이 약간 살아있는 서비스 같달까..? 그 느낌이 어디에서 오나 고민해 봤는데 각 서비스마다 다양한 이벤트페이지를 통해 쿠폰과 혜택을 제공하고, 배너가 계속 바뀌는 모습들에서 그러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바텀시트부터 모달배너, 슬라이드 배너 등 배너의 종류도 다양하고 배달/포장 영역만 하더라도 배너가 14개나 존재하고 있다. 보험회사와의 제휴 등 사업적으로 서로 시너지를 내는 경우들도 많았다.
대구로는 <인성데이타>라는 퀵서비스 운영 시스템 전문 개발사가 만들고 있다. 인성데이타는 대구 지역에서 창업한 기업 중 가장 많은 투자금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경의 <배달 플랫폼 생각대로 · 대구로 키운 20년 '물류 강자'> 사회 기사에 따르면 네이버로부터 400억 원, 신한은행으로부터 450억 원을 유치했다. 대구로는 대구시가 추진하는 스마트시티의 핵심 서비스이고, 실제로 대구로 서비스를 위해 약 50명의 개발, 운영 인력을 보강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네이버의 투자로 한 때 네이버가 대구로를 통해 배달시장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일기도 했으며, 실제로 대구로에 너무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냐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실 앱을 분석해 보면서도 느꼈던 게, 이렇게 실시간성을 요하는 복잡한 서비스들이 한데 엮여있는데도 안정적으로 유지보수 할 수 있는 게 사기업이 아니고서는 어려워 보이긴 했다.
생활 밀착형 서비스들을 한데 모아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혜택은 일반 사기업의 앱보다 더 크게 누릴 수 있고, 주민들과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까지 더해져 있어 흥미로웠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개발 운영도 안정적이다. 해당 지역에서만큼은 강력한 슈퍼앱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기분이랄까? 이 기세가 지속되고, 다른 지방들도 도입하게 된다면 기존 서비스들의 타격이 적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사용자 환경(UI)이 지적 재산으로 인정되기에 UXUI 표절은 민감한 이슈다. 최근 카카오손해보험과 삼성생명의 표절이슈에서 카카오손배보험 관계자분이 소비자들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 기획자들이 UI를 20번넘게 바꿔가며 최적의 절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인터뷰를 볼 수 있었는데, 사실 이건 배달의민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A/B 테스트 또는 여러 단계에 걸친 의사결정을 통해 배포된 결과물일 텐데 타이틀, 버튼명뿐만 아니라 알림 받기에 대한 설명문구들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디자인과 유사해진 것과 달리, 지역앱이 업계 1위 앱과 유사해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결과적으로 이 글을 쓴 목적은 대구로가 홍보되고, 더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지역앱이 활성화된다면 대구는 더 많은 IT 인재들이 필요해지고, 그로 인해 일자리 창출이 늘어나고, 지방에도 젊은 바람들이 다시 들어오는 선순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포항에 애플디벨롭퍼아카데미가 생기고 많은 iOS 예비 개발자들이 포항을 찾는 것처럼, 나는 <대구로>가 IT인재들이 대구를 고민하게 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대구로(인성데이타) 뿐만 아니라 다양한 IT 강소기업들이 생겨나,
나도 언젠간 다시 대구로 돌아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빅피처를 꿈꿔본다.
길고 길었던
대구자랑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