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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Oct 06. 2024

경영과 프로듀싱이 분리되면 일할 의미가 없다는 말.

프로덕트 매니저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이 글의 BGM으로는 뉴진스의 <ETA>를 권합니다.

낭비하지 마 네 시간은 은행
서둘러서 정리해 걔는 real bad
받아주면 안 돼 No you better trust me
답답해서 그래

- ETA 가사 中






3분기 회고.


이말년 작가님이 그린 벼룩의 한계 설명


3분기를 되돌아보면, 벼룩이 된 기분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2분기 회고> 때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나는 '내 가설이 얼마나 들어맞는가'가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3개월 간의 이번 분기 업무를 돌이켜보면 내가 찾은 문제와 가설, 전략과 솔루션 그대로 진행된 건이 정말... 딱 한 건이었다.


내가 발견하고 정의한 문제에는 공감을 했으나, 내가 제시한 솔루션과는 다르게 의사결정이 되어 의도했던 바를 온전히 실험해보질 못했다. 이미 2분기 때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기도 했다. 더 높게 뛰어오르고 싶은데 계속 위가 막힌 느낌이 들자 3분기는 더 이상 뛰고 싶지 않다는 무력감을 많이 느꼈고, 4분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 무기력한 감정은 번아웃과 다르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이 좋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불태워 일하고 싶다. 그동안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이런 류의 어려움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맡은 제품의 도메인에서 최소한의 권한은 있었다. 시킨 일을, 시킨 대로, 시킨 만큼, 시킨 일정 안에 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만 그게 너무 Comfort Zone 같달까... 나 같은 성취감 중독자는 안정적일수록 불안해지는 요상한 심리가 있다.




이런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민희진 전 대표님의 현대카드 강연을 보게됐다. 그녀는 SM엔터테인먼트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입사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찍어온 결과물에다 덧대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가져오는 그 결과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원판이 될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를 컨택하는 일부터 본인이 진행했고, 덕분에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사진작가와 일하게 되며 더 높은 퀄리티를 챙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팀) 또는 상황에 있어 의사결정권을 조금씩 갖게 되자, 몸은 힘들어도 주체적인 성장과 일의 기쁨을 많이 느낄 수 있었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그녀는 실무자로 일하면서 의사결정권자들이 본인의 전략과 다른 의사결정을 할 때면 많이 답답했다고 한다.

결과물에 대한 퀄리티를 책임질 수 있도록 작은 것이라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게 중요하고, 그게 뉴진스 업무를 맡는 데 있어서도 경영과 프로듀싱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대변하는 경험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경영(사업)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진행하는 일에 있어 의사결정을 하고 싶다'가 핵심 메시지였다.


근데 이게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프로덕트 매니저에게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비즈니스에 직접 관여하고 싶은 게 아니다. 시장 또는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한 사람이 생각한 전략과 가설, 가장 임팩트 있을거라 생각한 솔루션과 의견들이 반영되지 못했다. 주도적인 태도는 점점 사라져갔고, 시킨대로 만든 결과물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만든이가 쳐다도 보지 않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었다.





설득이 부족했을까, 환경이 부족했을까?

나의 고민들과 겹쳐보며 강연을 지켜보는데, 그녀의 경험담이 돌아왔다.


출처: f(x) - Pink Tape Art Film


크리스탈이 종이 먹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빼라는 거예요..
하.. 속으로는 뭘 안다고 ㅜㅜ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게 너무 빡쳐가지고

그래서 제가 막 장문으로
논문 쓰듯이 메일을 보내요.
있어야 한다고, 이유가 있다고.
제가 하도 막 지랄 맞게 계속 안된다
이거 해야 된다, 해야 된다 해가지고
그냥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나오게 됐죠.

그래서 솔직히 일하실 때
'윗사람들이랑 뭐 어떻게 해결하세요?'
이런 말 커뮤니티에 올리지 마세요.
해결 방법이라는 그 정석의 방법은 없어요.
 성격이 다 다르잖아요
그리고 여러분의 상사가 내 상사 같지도 않아요

왜 이렇게 다 쉽게 얻으려고 해요?
세상은 쉽게 얻어지는 게 한 개도 없거든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상사에 대한 파악이 필요해요
저분을 어떻게 해야 설득할 수 있나?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내 X밥 시절에 나를 거둬준 회사잖아.
나한테 기회를 줬거든.
나는 '가능성'이 있어요
가능성이 있지만 어렸을 때는 시행착오가 엄청나요
 
근데 이런 시행착오를 참아준 회사야
그걸 '배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당시에 힘들다 어쩐다
이런 사람들은 다 자기 손해예요

-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강연
<K-POP의 공식을 깨는 제작자> 中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는 생각


강연을 보며 너무 빡쳐서 잠이 오질 않아 논문급으로 메일을 썼다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공감이 갔다. 사실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는데, 리더쉽 만큼 팔로우쉽도 중요하다는 피드백을 들은 이후부터 목소리 자체를 잘 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후회가 될 수 있으니 나도 지랄 맞더라도 내가 해볼 수 있는 최선을 한번 다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끈질긴 설득은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필요한 스킬이니까, 나는 이걸 배우는 과정 중에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난 주 수요일에 4분기 액션 플래닝을 했는데,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프로젝트를 내가 맡게 되었다.

처음부터 내가 맡게 될 것 같았는데, 내가 직접 데이터를 보고 찾은 문제와 솔루션이 아니라서 처음엔 애정이 가질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공감과 신뢰가 가질 않았다. '잘 안될 것 같은데' 하는 의심의 싹이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기적인건가?)


근데 어찌 되었든 결국 나에게 왔다.

내가 맡게 되었으니 나에게 책임이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새로운 목표를 위해 잘 만들싶고, 그래서 4분기는 목소리를 내야하는 상황이 많을 것 같다.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 같다.



벼룩이 높이 뛰지 못하게 되는 순간은

'한계에 부딪혔을 때'가 아니라,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 포기할 때'임을 잊지 말자.


조금은 다시 열정을 되찾은

3분기 회고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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