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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셔널조그래픽 Jan 21. 2024

딸과의 첫 등산

2024년 조금 전 눈이 내렸던 광교산

산에 오를 때마다 가끔 어린이 등산객을 마주친다. 아이들은 몸이 가벼워서인지 그 누구보다 날렵하게 내 곁을 스쳐 간다. 그럴 때마다 집에서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을 딸 C가 생각난다. ‘같이 왔으면 좋을 텐데.’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몇 번의 설득 끝에 C는 아빠와의 등산을 허했다. 신난 나는 C가 신을 등산화와 아이젠부터 샀다. 첫 번째 도전할 산은 용인에 있는 광교산으로 정했다. 집에서 멀면 안 간다고 할까 봐.


도심과 가까이에 있고 주말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등산 코스가 워낙 다양하고 날씨까지 궂어서 그랬을까. 산을 오르는 내내 마주친 등산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장 짧은 광교체육공원 코스로 들어섰다. 들머리는 수지꿈학교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처음부터 엄청난 숫자의 계단에 C는 한숨부터 내뱉었다.


기온은 영상권이어서 얼어 있던 땅이 녹아 있었다. 초입 길은 질퍽했고 낙엽이 미끄러움을 더했다. C는 툴툴거렸지만, 생각보다 잘 올라갔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쉬엄쉬엄 물도 조금씩 마셔가며 숨을 돌렸다. 처음 움켜쥐고 짚는 스틱이 큰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걷다가 힘들면 스틱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지탱해 쉬곤 했다. 초딩의 창의력이란.


중턱에 오르자, 산의 기분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등산로 위에는 눈과 얼음이 엉겨 붙어 굳어져 있었다. 하늘에서도 눈이 소소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신발에 씌웠다. C는 아이젠의 고무 탄성을 이겨낼 만큼 아직 팔 힘이 있지 않았다. 아이젠을 쭉 잡아당겨 신발에 씌우고 뒤쪽을 위로 들어 올려 신발 바닥에 짱짱하게 붙였다. C는 더욱 씩씩하게 걸었다.


C는 올라가는 내내 스마트 워치에 표시된 고도를 물었다. 올라갈수록 투정은 없어졌다. 벤치 위에 쌓인 눈 위에 손바닥 도장을 찍으며 어린이의 영역 표시를 남기기 시작했다. 눈을 뭉치자 금세 얼음덩어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눈으로 묵직하게 덮인 앙상한 나무들이 만들어낸 장관을 감상하며 깊은숨을 몰아내자 어느새 수리봉이 보였다.


C는 그곳이 정상인 줄 알고 신나게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나는 그곳이 정상이 아니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용인시 마스코트인 조아용과 기념사진을 찍고 진짜 정상인 비로봉으로 향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아이젠이 찍어 누르는 얼음의 깊이가 더해갔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자, C는 벤치에 앉아 텀블러에 담아온 코코아부터 마셨다. 당이 떨어졌다고 했다. 


비로봉에는 다른 코스로 올라온 등산객들도 모였다. 그래도 주말 치고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다. 우리도 사진을 찍으며 정상에 오른 기분을 잠시 즐겼다. 내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동안 C는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 두 마리에 정신이 팔렸다. 나도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를 홀짝이며 이름 모를 새들을 이리저리 눈으로 쫓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곤줄박이, 쇠박새, 쇠유리새 등이었다.


하산도 쉽지 않았다. 중턱까지는 길이 얼어 있었고, 그 밑으로는 얼음이 녹아 진흙이었다. 미끄러질 법도 했는데 워낙 조심성이 많은 C는 스틱과 밧줄 등을 잘 의지해 무사히 내려왔다. 밧줄과의 마찰 때문에 장갑에 구멍이 나긴 했지만.


산을 오르며 올해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방학인 C는 물놀이가 하고 싶다고 답했다. 난 그걸 물은 게 아닌데. 수영은 배우기 싫다고 했다. 그냥 물놀이가 하고 싶다 했다. 우문현답 덕에 주말에 캐리비안 베이를 가기로 약속하고, 다음 등산의 약속도 받아냈다. 다만 등산은 일단 2주에 한 번씩 하기로. 아직은 감흥보다 힘듦이 더 강하게 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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