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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Feb 16. 2024

반짝이는 오타루의 밤

2018년 1월 홋카이도 로드트립 ep.4

예전에 어떤 선배가 쓴 책을 읽다 꼭 삿포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선배는 삿포로국제단편영화제 일로 삿포로에 갔었다. 스케줄이 끝나고 저녁에 취기가 올랐을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더니 눈이 고요하게 내려앉고 있더랬다. 그 느낌이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듯했다고 훗날 한 여행기를 통해 회상했다. 


삿포로는 아니었지만, 삿포로에서 차로 40~50분 거리에 있는 오타루에서 나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오타루 운하로 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무음의 눈이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지금껏 본 눈송이 중에 가장 가벼워 보였다. 가로등 아래에서 고개를 들자 시간은 갑자기 느려졌다. 다시 현실을 직시하니 저 멀리 운하 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게 보였다.


오타루 운하는 지금의 오타루 상황을 상징, 대변하는 듯 보였다. 오타루는 과거 홋카이도 개척의 본거지였다. 삿포로가 개발되기 전 하코다테에 이어 홋카이도 제2의 도시였다. 바다 근처 탄광이 있어 경제적 요충지였다. 도시 곳곳에 은행이 있던 흔적과 운하만 봐도 예상할 수 있다. 오타루상과대학은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로 손꼽는 대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다. 오타루는 현재 삿포로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는 위성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오타루의 운하에는 거룻배들이 석조 물류 창고와 해안에 정박한 배 사이를 활발히 오갔다. 홋카이도의 동맥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오타루 부두가 개발되면서 그 역할을 점점 잃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은 거룻배 대신 크루즈가 오가고 있고, 로맨틱한 가스등 아래로 전 세계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오타루 운하와 멀지 않은 곳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오르골당이 있다. 본관을 포함해 7곳의 숍이 있다. 본관에만 8만 점이 넘는 오르골을 판매 중이다. 본관에만 있어도 각양각색의 오르골에 취할 지경이다. 본관은 1915년에 지어져 건물 자체로 문화유산이다. 오타루 오르골당은 이보다 앞선 1898년에 문을 열었다.


본관 정문 앞에는 오타루 오르골당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증기 시계가 장승처럼 방문객을 맞이한다. 캐나다 밴쿠버에 다녀온 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이 증기 시계는 세계 최초로 증기 시계를 만든 레이몬드 샌더스가 만들었다. 밴쿠버에 있는 그 증기 시계와 같은 모양이다. 보일러가 만들어낸 증기가 15분마다 멜로디를 연주한다. 증기 오르골이랄까? 


안으로 들어가면 쓸어 담고 싶은 앙증맞은 오르골들이 지갑을 유혹한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유리 천사 오르골이었다. 실제로 오타루는 유리 공예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2층에는 마치 박물관처럼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오르골들이 있었다. 어떤 것은 수천만 원에 달하기도 했다. 3층의 ‘이지 오더’ 코너에서는 나만의 오르골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좋아하는 곡과 파트를 직접 골라 내가 원하는 오르골에 담을 수 있다. 오타루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념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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