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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초 Joe Cho Feb 25. 2024

"악" 소리 났던 치악산

2023년 5월 잡념 털기 등산

어릴 때 KBS에서 방영한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를 놓치지 않고 봤었다. 그 중 ‘은혜 갚은 까치’ 에피소드를 떠올려보면,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사내가 구렁이에게 잡혀 먹을 뻔한 까치를 구했는데, 나중에 까치가 목숨을 던져 그 사내를 구렁이로부터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사실 원작의 전설을 보면 까치가 아닌 꿩이다. 또한,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치악산이다. 이 설화 때문에 이 산의 이름이 적악산에서 치(꿩을 뜻하는 雉)악산으로 바뀌었다. 여담으로 실제로 치악산에는 뱀이 많이 살고 특히, 까치살무사가 많다.


치악산은 그 자체로 국립공원일 정도로 범위가 매우 넓다. 국립공원 면적만 182.09㎢에 달하고 수많은 골짜기와 봉우리, 폭포 등을 품고 있다. 한때는 최대 76개의 사찰이 있을 정도로 스님들의 수련 맛집이기도 하다. 그만큼 산세도 험하고 그만큼 운치와 풍경도 근사하다. 5월의 치악산은 생명력이 요동치는 그린(Green) 그 자체였다.


들머리는 황골탐방지원센터로 잡았다. 잘 정돈된 주차장에 화장실, 음료수 자판기까지 갖췄다. 덕분에 등산의 시작과 마무리가 편리했다. 곧 여름으로 접어드는 봄이었다. 해가 점점 동쪽에서 벗어날수록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이 많아졌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올라가는 내내 손은 시렸다. 봄이 따뜻하다는 건 선입견이자 성급한 지역 일반화의 오류였다. 산 이름에 ‘악(岳)’이 들어가면 험하다는데 가히 맞는 말이다. “악” 소리 나는 초입부터 엄청난 오르막에 금세 반소매 티셔츠는 땀으로 젖어갔지만, 이상하게도 손은 시렸다.


입석사를 지나고 ‘황골탐방로’ 입구가 나오면 이때부터 본격적이다. 친절한 길이 끝나고 오프로드가 시작됐다. 배낭에서 스틱을 꺼냈다. 차나 사람이나 험지에서는 네 발이 편하다. 산에서는 네 발 달린 산짐승을 사람이 당해낼 수 없는 이유다. 두 다리와 두 팔에 로(Low) 기어를 넣고 천천히 비로봉으로 향했다. 오솔길과 무지막지한 계단 등을 지났다. 등산로는 온로드와 오프로드, 나무 데크, 계단 등이 적절히 뒤섞여 지루하지 않다. 정비가 잘 돼 있어 안전하다.


쥐너미재 정도에 오르자,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곧 여름이건만 나무들은 수줍게 봉오리를 닫았다. 이파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앙상한 겨울나무 같았다. 여긴 아직 이른 봄이었다. 쥐너미재는 이름 그대로 쥐 떼가 넘어간 고개라는 뜻이다. 옛날 어떤 절에 쥐가 너무 많아 스님들이 모두 떠났는데 이후 쥐들도 그 절을 떠났다. 그때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지어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쥐너미재에서 원주 시내가 흐릿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황장금표 표식이 보였다. 옛날에 왕실에 진상하는 누렇고 질 좋은 소나무를 황장목이라고 했는데, 이 소나무의 벌채를 금지하는 경고문을 황장금표라고 한다. 조선시대 때 이렇게 황장목 벌채를 금지한 산이 60곳 있었는데 치악산도 그중 하나였다.


비로봉에 가까워지자, 금강초롱꽃 자생지를 보호하는 철망이 보였다. 금강초롱꽃은 물두꺼비와 함께 치악산의 깃대종이다. 깃대종이란 특정 지역의 생태와 문화를 상징하는 야생 동식물을 일컫는다. 금강초롱꽃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고유 식물이다. 치악산 정상부 음지나 습도가 높은 바위틈에서 자란다. 꽃은 8~9월 사이에 핀다.


정상인 비로봉이 저 멀리 보였다. 이때 회사의 사무실도 이전해야 했고, 직원도 충원해야 했던 시기라 머릿속은 사실 엉망진창이었다. 이런저런 잡생각 끝에 정상에는 금방 오른 느낌이었다. 잡념을 정리하기에 이만한 운동이 없다.


주말이라 정상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표지석과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어느 정도 줄을 서야 했다. 사진을 다 찍은 이들은 미륵불탑 주변으로 흩어져 싸 온 간식을 먹으며 정상의 풍경을 즐겼다. 그런데 요즘 산에 올 때마다 날씨 운은 꽝이다. 정상에 올랐건만 구름이 꽉 차 주변은 뿌옇게 흐렸다. 한참 동안 기다리다 내려가려고 하니 구름이 걷히려 했다. 에라이. 치악산의 ‘악’은 하산 때 진가를 드러냈다. 이날 허벅지에 배긴 알이 일주일을 갔다. 하산해도 손은 역시 시려 운전대의 열선을 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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